[글로벌 아이] 실크로드를 다시 생각한다
“내 고향 산시(陝西)는 옛 실크로드의 출발점에 자리한다. 여기서 역사를 돌아보면 내가 마치 산간에 메아리치는 낙타의 방울 소리를 듣는 듯하고, 사막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한 줄기 연기를 보는 듯하다.”
지난 7일 베이징 중국고고박물관에서 마주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실크로드 어록이다. 시 주석은 역사를 정치에 활용하는 데 능란하다. 지난 6월 2일에는 박물관이 자리한 중국역사연구원을 찾아 문화전승발전좌담회를 열었다. “마르크스주의를 중국의 구체적인 실제와 결합하고, 중화 우수 전통문화와 결합해야 한다”고 했다. 이른바 ‘두 개의 결합(兩個結合·양개결합)’이다. 첫 번째 결합인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는 마오쩌둥이 했으니 두 번째 결합을 자신이 이루겠다는 취지다. 당의 선전기구는 ‘새로운 문화 사명’이라는 캠페인으로 격상했다.
17일 제3회 일대일로(一帶一路) 국제협력 정상포럼이 역사연구원 옆 국가회의중심에서 개막한다. ‘실크로드 경제 벨트’와 ‘21세기 해상 실크로드’를 합쳐 ‘일대일로’로 이름 붙인 중국의 광역 경제권 구상 10년을 기념하는 행사다. 역사가 외교를 굽어보도록 행사장을 골랐다.
지난 11일 발간한 일대일로 백서는 “기원전 140년경 중국 한(漢)대 장건(張謇)이 장안(長安, 지금의 시안)에서 출발해 동방에서 서방으로 통하는 도로를 개통하는 ‘착공의 여행(鑿空之旅)’을 완성했다”며 “(실크로드가) 중국에 기원하지만 세계에 속한다”고 적었다.
중국은 역사 속 실크로드를 잘 활용했지만 주인공은 아니었다. 길을 오간 국제상인과 이들을 후원한 유목제국이 주역이었다. 중국은 경제·문화가 아닌 정치·군사적 목적으로 실크로드에 진출했다. 한 무제는 숙적 흉노를 제압하기 위한 군사동맹을 찾기 위해 장건을 보냈다. 당 태종과 고종은 돌궐을 무찌르기 위해 서역에 진출했다. 청의 신장(新疆) 정복 역시 준가르라는 유목국가 정복의 산물이었다. 역대 중국의 황제는 실크로드 교역이나 문화 교류에 무관심했다. 중국 상인은 해외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2년 전 미국의 철수로 아프가니스탄을 차지한 탈레반이 참가한다는 소식이다. 아프리카와 남미 정상도 베이징을 찾는다. 금세기 중엽까지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만들겠다는 전략에 실크로드를 활용한다. 과거 한 무제는 로마와 싸우지 않았다. 대신 흉노를 공격했다. 밀려간 흉노가 로마를 압박했다. 실크로드의 서쪽 유럽과 중동이 전운에 싸였다. 이번 역사의 도미노가 과연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시할 때다.
신경진 베이징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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