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회숙의 음악으로 읽는 세상] 권위에 도전한 천재
옛날 서양 가톨릭 교회에서 치르는 고난 주간 의식 중에 ‘르송 드 테네브르’가 있었다. 고난 주간 의식은 제단 앞에 나뭇가지 모양의 촛대에 촛불 15개를 켜놓고 시편을 한 편씩 낭송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시편 한 편이 끝날 때마다 촛불을 하나씩 꺼나가는데, 마지막 촛불이 꺼지면 어둠 속에서 성가대가 ‘르송 드 테네브르’를 불렀다.
‘르송 드 테네브르’는 ‘어둠 속의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노래가 너무나 아름다워 감동을 주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 알레그리의 ‘미제레레 메이’다.
‘미제레레 메이’는 로마 교황청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해마다 성주간 동안 불렸다. 촛불이 모두 꺼진 어둠 속에서 교황과 추기경이 무릎을 꿇으면 성가대가 높은 하늘에서 울리는 천사의 노래처럼 높은 음으로 장식음을 넣은 ‘미제레레 메이’를 불렀다. 어둠 속에서 울리는 합창소리가 그렇게 신비로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 신비로운 경험을 독점하고 싶었기 때문일까. 교황은 ‘미제레레 메이’ 악보를 시스티나 예배당 밖으로 반출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래서 한동안 ‘미제레레 메이’는 교황청에서만 독점적으로 연주되었다. 이 곡을 듣고 싶은 사람은 일부러 바티칸까지 찾아와야 했는데, 그중에는 독일의 문호 괴테도 있었다.
많은 사람이 로마에 와서 이 곡을 듣고 기억에만 의존해 음악을 옮겨 적으려고 시도했다. 그중에 아버지와 연주 여행차 로마를 방문한 열네 살 음악천재 모차르트도 있었다. 모차르트는 복잡한 성부로 이루어진 이 곡을 단 두 번 듣고 단숨에 악보로 옮겨 적었다고 한다. 이로써 이 곡을 독점하려던 교황청의 의도는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열네 살 어린 소년이 교황청의 권위에 도전하다니 역시 신이 내린 천재는 뭐가 달라도 다른 것 같다.
진회숙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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