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논란에도 강행하는 정율성 사업, 갈등의 씨앗만 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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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광주시 역사공원 대립 속 흉상 두 번째 훼손
새로 부각된 중공군 참전 전력 우려 모른 척 안 돼
음악가 정율성 기념사업을 둘러싼 갈등이 번지고 있다. 지난 14일엔 광주광역시 남구 정율성로에 있는 흉상이 두 번째로 바닥에 떨어져 훼손됐다. 지난 1일 동상을 파손해 재물손괴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윤모(56)씨가 재차 벌인 일이다.
윤씨가 처음 떨어뜨린 흉상을 두고 광주 남구청이 처리 방안을 고심해 왔는데, 그 사이 누군가 다시 흉상을 제자리로 옮겨놨다. 그러자 하루 만에 다시 밧줄을 걸어 차량으로 끌어내는 장면이 폐쇄회로(CC)TV 영상에 잡혔다. 정치권에서 격화한 논란이 시민 갈등으로 증폭되는 장면이다.
정율성 논란은 지난 8월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북한의 애국열사릉이라도 만들겠다는 것이냐”며 역사공원 사업 중단을 촉구하면서 불거졌다. 2020년 5월부터 동구의 정율성 생가 일대에 총사업비 48억원을 투입해 공원을 조성해 온 광주시는 강행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완공을 두 달 앞두고 충돌이 격해지는 양상이다. 박 장관은 지난 11일 광주시 등에 사업 중단과 흉상 철거를 권고했다. 행정안전부도 광주시와 남구에 ‘정율성로’의 도로명 시정권고를 내렸다.
논란의 중심에 선 정율성(1914~76년)은 광주에서 태어나 1939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해 ‘팔로군 행진곡’(중국 인민해방군 행진곡)을 작곡한 음악가다. 1949년 북한의 ‘조선인민군 행진곡’을 만들어 중국과 북한에서 영웅 대우를 받았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생가가 있는 광주시와 남구, 어린 시절 살았던 전남 화순에서 기념사업이 진행돼 왔다. 별로 주목받지 않던 사업에 여론이 급격히 악화한 이유는 그가 한국전쟁 때 중국인민지원군(중공군)으로 참전한 사실이 부각되면서다. 혼란의 해방 정국에서 중국과 북한에서 추앙받은 이력과 중공군으로 참전한 전력은 차원이 다르다. 보훈단체는 물론, 4·19와 5·18 관련 단체에서도 거센 항의가 나오는 이유다.
광주교육청 발간 중·고교 역사 교재에 “그의 북한 정권 및 중국인민지원군 참가 사실은 생략하거나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박용준 광주시 역사 교사·자유역사교육자모임 국장)는 주장도 제기된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시민들이 뜻을 모아서 해 왔던 일”이라며 반대 여론을 일축해 왔다. 준공이 임박한 공원을 완전히 되돌리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전 참전에 비판이 고조된 상황에서 음악가로서의 업적만 역설해서는 곤란하다. 기념 시설물과 표지판 하나에도 상반된 시각을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반대 목소리에 귀를 닫고 계속 밀어붙이면 정율성 기념사업은 두고두고 갈등의 씨앗만 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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