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의심했지만 지체없이 직진, 독일의 놀라운 '기후정치'
녹색전환연구소는 2주간(9월 10일~25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후 급변하고 있는 유럽사회의 에너지·기후 관련 현장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지역과 마을 단위로 전환의 과정과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다양한 도시와 장소, 연구기관, 의회 등을 방문합니다. 이를 통해 실제로 유럽사회의 성과와 여전히 남은 과제와 한계에 대해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김혜미]
▲ 지난 15일(현지시간) 0시를 기해 독일은 남아있던 세개의 원자력 발전소 가동을 멈췄다. 사진은 독일 니더작센에 있는 엠스란트 원전의 모습. 2023.4.15 |
ⓒ 연합뉴스 |
독일의 연합정부(이하 연정)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대연정이라 말할 수 있는 연합정부는 1965년 기독민주당(이하 기민당)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이 예산 문제로 파트너십에 균열이 발생하며 기민당이 사회민주당(이하 사민당)과 정부를 함께 구성한 것이다. 그전에도 독일은 여러 정당이 참여한 좌파/우파 정부가 늘 탄생했다. 그렇기에 정치학자들은 독일의 민주주의를 '정당 민주주의'라 자주 칭한다.
물론 독일에서도 정당이 늘 호평받아 왔던 것도, 받는 것도 아니다. 정당 민주주의에 대한 긍정적 평가 역시 2차 세계대전 이후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나치 정권이 '민주주의' 체제에서, '민주적'으로 수립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보다 정당이 강한 대의 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기 시작했고, 다원주의적 정당 체제를 전체주의, 권위주의를 방지하고 대항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독일 사회에서 정당의 역할은 '의원내각제' '혼합형 선거제도'와 연계되어 발전했다.
지금도 독일은 사민당과 녹색당, 자민당이 정부를 수립하여 운영하는 일명 '신호등 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내각의 중심인 총리는 사민당 소속의 올라프 숄츠가 맡고, 녹색당의 로베르트 하벡이 부총리와 기후경제부 장관을 겸임, 자민당의 크리스티안 린트너가 재무부 장관을 한다. 이 내각 수립 후 3개 정당은 2개월 동안 177쪽짜리 '연정 합의서'를 만들고 '더 많은 진보를 감행하다(Mehr Fortschritt Wagen)'라고 이름 붙였다.
2045년 기후 중립, 독일 신호등 정치는 준비 되었나
그러나 최근 신호등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많이 꺾이고 있다. 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은 '에너지 전환 정책'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고, 물가가 불안정해지면서 유럽은 상상 이상의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독일은 가스 가격이 최대 3~4배까지 올랐고, 현재는 많이 완화되었으나 유럽은 물가가 6%까지 상승했다. 이에 대한 백래시(Backlash)로 유럽에서 전반적으로 극우정당 지지율이 상승했다.
이 현상을 보며 독일 정당 민주주의가 휘청하고 있다는 평가도 많지만 이 신호등 정부는 2045년 기후 중립을 목표로 항해 중이다. 증거가 바로 독일이 올해 4월 '계획대로' 탈원전을 진행했다는 점이다. 다들 의심했으나, 지체없이 직진했다. 원전을 중단할 수 있었던 주요 동력은 끈질기게 싸워온 '반핵운동'이었지만 그 전부터 독일 사회에서는 완전 처리가 불가한 '원전 폐기물' 이슈가 부상하면서 더 다양한 반핵 정치 구호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원전 건설 반대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가 커지면서 원전 에너지를 대체할 더 확실하고 분명한 '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 결과 독일은 모든 원전을 중단할 수 있었고, 독일의 마지막 원전인 '네카베스트하임 원자력 발전소'가 중단하기 직전, 원전이 생산한 전력에너지는 전체 전력량의 6%가 전부였다. 그에 비해 태양광과 풍력 등을 활용해 만든 재생에너지 비율은 절반에 가까웠다. 이미 원전이 주요 에너지원은 아니었던 셈이다.
메르켈과 보낸 "잃어버린 10년" 그리고 기후 싱크탱크들의 냉랭한 평가
재생에너지 확대를 매우 기원하는 입장에서 '50%'라는 숫자는 필자에겐 꿈만 같은 것이지만 여전히 독일과 유럽의 기후 싱크탱크들은 냉정한 평가를 쏟아낸다. 전력에너지 생산량 '52%'를 도달했음에도(2023년 9월 기준) 기후 중립을 위해선 "여전히 아주 부족하다"는 것이다. 건물과 난방, 수송 부문에서는 여전히 멀었다는 지적이다.
9월에 직접 만난 독일의 기후 싱크탱크들은 에너지 부문뿐만 아니라 수송·건물·산업 등 부문별·분야별 기후 중립 목표를 아주 치밀하게 계획하며 진단과 함께 로드맵을 그리는 중이었다.
정치인에 대한 평가야 다양한 각도에서 저마다 다를 수 있지만, 기후 문제에 천착한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은 메르켈이 총리로 지낸 시간을 "잃어버린 10년"이라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의 소극적인 기후정치로 인해 건물과 수송, 산업 부문에서 에너지 전환이 늦어졌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만난 독일의 쇠나우 전력회사의 대표는 메르켈이 더 적극적으로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에너지를 전환하는 정치를 펼쳤다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충격도 덜했을 것이라 강조했다.
쇠나우 대표 외에도 정치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독일의 싱크탱크인 아고라 에네르기벤데, 아델피, 부퍼탈 연구소도 비슷한 말을 했다. 이러한 토론과 논쟁 자체가 가능하다는 것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 독일 기민당 소속 베를린 시의원 대니 프레이마크 |
ⓒ 녹색전환연구소 |
기민당 소속의 베를린 시의원 대니 프레이마크는 녹색당에 대해 '환경밖에 모르는 정당'이라고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독일 기후정치는 더 가속화 되어야 한다고 인정한다. 그것이 베를린에 더 필요한 고민이라고 판단하는 점이 한국의 보수 정치와 많이 달랐다.
또한 그는 기후 중립 베를린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역시 가지고 있었다. 베를린에서 준비하고 있는 100억짜리 기후예산을 지지하며, 이 예산을 통해 건물과 난방 에너지 전환을 위한 가정용 히트펌프 설치를 확대하고, 기후 적응을 위한 슈프레강 중심의 물관리 정책(일명 스펀지 시티)을 진행중이었다.
또 기후정치에 적대적인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이하 AfD)'에 대한 비판도 이어갔다. AfD는 기후 위기를 믿지 않아 기후정책이 없는 정당, 직접 민주주의를 강령으로 채택한 정당으로 유명한데, 대니 프레이마크는 그들의 정치 방식과 주장을 경계하며 자신은 꾸준히 지역에서부터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시민들에게 설득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과 주장을 듣자면 한국의 전통적인 보수정당, 보수정치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기민당 정치인이었다.
유럽은 괜찮냐는 말, 그럼 아시아는?
이러한 흐름엔 유럽연합(이하 EU)도 한몫했다. EU는 이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후 'REPower EU'를 제정하고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2030년까지 42.5%까지 달성하겠다는 공동의 목표를 설정했다. 2021년에도 'Fit for 55'를 통해 이미 재생에너지 32% 확대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다졌으나, 1년 후인 2022년에 더 강화된 에너지 전환 정책을 약속한 것이다. 게다가 EU가 세운 이 목표는 전체 에너지 소비(수송, 건설, 난방 등)에서 차지하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의미한다.
이 목표가 실제로 달성될 것이라고 보는 예측은 적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럽은 괜찮냐?' '프랑스는 여전히 원전을 가동하지 않냐'라는 말이 솔솔 나온다. 그러나 자전거 수송분담률 36%(한국 1.6%)에 빛나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이미 수송 부문에선 2030 탄소중립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프랑스 파리의 경우 올림픽을 앞두고도 자전거 도로 대폭 확장, 공공주택 확대를 통해 에너지 전환 문제를 푸는 것에 열을 올리고 있다. 독일과 유럽은 그 어려운 일을 '거의' 해낼지도 모른다.
한국이 포함된 대륙, 아시아는 어떨까. 지구상에서 가장 넓고, 인구가 많다는 이 대륙에선 기후를 위해 공동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찾기 어렵다.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기후 문제를 국제적으로 다루는 IPCC에 가입되어 있고, 유럽과 무역을 하며 여러 '제제'를 받게 된다.
기후가 경제와 외교 질서와 경로를 획기적으로 변경하고 있는데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정부들은 과연 얼마나 준비가 되었을까. 이런 측면에서 앞으로 생각보다 빠른 시일 안에 아시아에서 외교 능력은 기후 문제를 다루는 능숙함에 달릴지도 모른다.
양당정치의 한계에 정지된 한국의 기후정치
한국을 좀 더 들여다 볼까. 독일에 있는 동안 한국의 정치뉴스 주요 키워드는 '단식'과 '가결' 이었다. 하다못해 경제나 국정감사와 관련된 뉴스조차 찾기 어려웠다. 그렇게 기후정치가 실종된 한국 사회에 최근 서울시에서 '기후동행카드'를 시행하겠다고 하여 반짝 이슈가 된 것은 퍽 반가운 일이었다. 교통정책을 기후 문제와 결합하는 일은 최근 몇몇 지역에서 작은 규모로 나타나고 있다. 부산의 동백패스가 시작이었고, 이후 몇몇 지자체와 함께 교통혼잡의 끝판왕인 서울에서 이를 시작하겠다는 선언은 더 주목받아야 마땅했다.
하지만 경기도와 인천이 허락하지 않으면 무용하다는 뉴스가 주로 반복되고 있다. 경기와 인천의 결단을 요구하는 언론의 목소리나 정치권, 시민사회의 움직임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서울시가 올해 10월부터 공공교통요금을 대대적으로 인상하며 '기후동행카드'를 하겠다 말한 데에는 기만적인 면도 있다. 그러나 서울시를 비롯한 경기와 인천의 온실가스 배출의 대부분이 건물과 운송 부문(서울의 건물과 운송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 88%)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공공교통 완전 공영제⋅이동권 확대를 전제로 교통정책을 기후정책과 연결하는 일은 꼭 필요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 독일 녹색당 소속 연방의원 슈테판 겔프하르 |
ⓒ 녹색전환연구소 |
특히 이 과정에서 49유로 패스의 전신으로 알려진 9유로 패스는 사회정책이었다고 녹색당 연방의원인 슈테판 겔프하르는 평가한다. 당시 난방 요금 인상을 비롯해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독일 시민들을 위한 민생 정책으로 9유로 패스를 도입했다는 것이다. 교통부 장관을 자민당이 맡고 있는 사실에 기반하면 놀라운 결정이기도 하다.
정치가 덜 양극화되었을 때 볼 수 있는 장면이라 생각된다. 이 정책에 대해 독일 시민들은 환영했고, 이후 가능 지역과 교통수단을 대대적으로 확대하며 49유로 패스로 전환하였고, 이는 경제적 부담을 완화할 뿐만 아니라 독일에서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주요한 정책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기후 정치는 계속되어야만 한다
독일과 유럽 답사를 통해 가슴에 남은 것은 '그래도 기후정치'이다. 결국 독일과 유럽이 그러했던 것처럼 한국과 아시아도 설득과 합의 그리고 양적⋅질적 다원성을 함유한 민주주의를 통해 길을 내야 한다. 기후 위기를 민주주의로 해결하는 일은 가끔 요원해 보일 때가 있다. 2050년이라는 생각보다 길지 않은 시간이 그어진 상태에서 '바꾸자'라는 말을 하는 것은 꽤나 용기가 필요한 용감한 일이다. 특히 지금처럼 많은 것이 악화되는 시대에서 말이다.
그럼에도 "성취 가능성이 있는 욕구는 희망이라 말하고, 성취 가능성이 없는 욕구는 절망이라 한다"라는 토마스 홉스의 말을 빌린다면, 정치가 여전히 희망을 주기 위해선 기후 위기를 해결하는 것을 가능한 한 온 힘을 다해, '성취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 9.23 기후정의행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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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혜미 기자는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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