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한국인들의 나라 [김선걸 칼럼]

김선걸 기자(sungirl@mk.co.kr) 2023. 10. 16.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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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걸 주간국장
‘합계출산율 0.7’.

대한민국의 올해 2분기(4~6월) 전국 출산율 수치다. 3분기에는 0.7이 깨질 수도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출산율 하락 속도에 대한민국이 녹아내리는 느낌이다. 각종 출산 지원책도 수포로 돌아가자 이민을 받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런데 너무 서두르는 느낌도 든다. 우리나라는 한 번도 이민자들과 살아온 경험이 없는 나라다. 준비할 게 많다. 사람은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칼리프의 나라(KALIFAT)’라는 스웨덴 드라마가 있다. 실화 기반 넷플릭스 스릴러다.

한때 ‘복지 천국’으로 불렸던 스웨덴은 게르만계 백인들의 국가였다. 지난 2010년쯤부터 난민을 대폭 받아들였다. 인도주의도 실천하고, 동시에 부족한 인력도 공급하는 양수겸장이었다. 그 결과 이제 총인구의 25.9%가 외국 태생이다. 네 명 중 한 명은 이민자라는 뜻이다.

‘칼리프의 나라’는 평화로운 스웨덴과 극단주의 테러 조직 IS의 본거지인 시리아를 오가며 오버랩된다. 주인공은 스웨덴에서 수년 전 테러 조직의 꾐에 빠져 시리아 ‘라카’로 이주해 아이도 낳은 여인이다. 길거리 공개처형이 횡행하고 여성은 노예 취급을 당하는 실상에 절규한다. 우연히 얻게 된 핸드폰으로 스웨덴에서 테러를 수사하는 정보기관원과 통화한다. 죽음의 문턱을 오가며 실낱같은 탈출의 희망을 키운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 스토리와 별개로 필자는 다른 데 관심이 갔다. 스웨덴 슬럼가에 거주하는 이민자 가족이다. 이민 1세대인 부모는 진정한 이슬람교와 IS가 다르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경계한다. 그런데 스웨덴에서 태어난 딸들은 다르다. 엇나가는 사춘기에 인종 차별을 당한다고 생각한다. 파티에서 “칼리프의 나라 라카에서 신을 만나라”라는 꾐에 빠진다. 딸들은 변해간다. 갑자기 히잡을 쓰고 9·11 테러가 미국의 자작극이라는 영상을 보더니 부모에게 “더러운 이교도들”이라고 욕설을 뱉는다. 학교에선 “스웨덴에서 무스타파라는 성을 가진 경찰관을 본 적 있나요”라고 쏘아붙인다(무슬림은 경찰 같은 제도권 직업을 갖지 못한다는 주장). 결국 시리아로 떠난 딸들과 이를 뒤늦게 쫓는 아버지. 처절한 행로에 아버지는 울부짖는다.

실화를 근거로 한 드라마다. 2015년 영국 10대 소녀 3명이 ‘IS의 신부가 되겠다’고 시리아로 건너가 충격을 줬다. 이들도 런던 동부 슬럼가에 사는 방글라데시 등의 이민자 2세들이었다. 이민 2세들의 ‘주변인’적인 갈등을 풀려면 오랜 시간 동행과 사회적 인프라가 필요하다. 스웨덴은 2차 대전 중에도 중립으로 평화를 지킨 나라다. 이런 곳마저 이민 사회의 갈등이 폭탄처럼 커지고 있다.

우리도 이미 시작했다. 수도권에는 순혈 한국인보다 이민자 자녀가 더 많은 학교가 속속 늘고 있다.

이민자를 저급 인력으로만 보는 사람도 꽤 있다. 싼 인력을 빨리 들여와 돈 벌자는 속셈이다. 위험한 생각이다. 이민 2세를 한국인으로 키울 문화적, 물리적 인프라 없이는 후과가 클 것이다. 최근 외국인과의 사회 갈등도 이런 이유다.

‘칼리프의 나라’는 자살 폭탄 테러로 끝난다. 스웨덴의 맑은 영혼의 소녀가 폭탄 재킷을 입었다. 며칠 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관련 외국인들의 시위가 논란이 됐다. 이제 우리나라는 남의 나라 얘기를 광화문 앞에서 언쟁할 만큼 열린 나라다.

인력 부족보다 포용력 부족이 더 큰 문제다. 그리고 포용력은 감내할 만할 때나 생긴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0호 (2023.10.18~2023.10.2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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