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충돌 확전 양상… 세계 경제성장 발목 잡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무력 충돌이 확전 양상을 보이면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다시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충돌이 다른 중동 지역으로 확산할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태가 악화되면 올해와 내년 한국뿐 아니라 세계경제 성장률은 하향 조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시장에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국제유가 변동이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배럴당 전 거래일보다 4.78달러(5.8%) 오른 87.69달러에 마감했다. 이날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11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도 전 거래일 대비 4.89달러(5.7%) 오른 배럴당 90.89달러에 장을 마쳤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 지상군 투입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영향을 끼쳤다. 브렌트유의 경우 이달 초 배럴당 90달러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90달러 선까지 올라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원유 생산국은 아니다. 이런 이유로 국제유가가 지난 9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침공 영향으로 4%대로 급등했다가 다시 하락세를 나타내기도 했다. 문제는 확전 가능성이다. 이스라엘 뒤에 있는 미국과 하마스의 배후로 지목된 이란이 대리전 양상으로 부닥칠 경우 전쟁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수 있다. 확전 상황에서 국제유가 변동성은 한층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은 지난 12일 이란의 원유 수출 대금 60억 달러(약 8조원)를 재동결했다. 하마스를 지원했다는 의혹이 영향을 미쳤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진입을 앞두고 가자지구 북쪽에 있는 가자시티 주민에게 24시간 내 남쪽으로 이동하라는 대피령도 내렸다. 이에 이란은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될 수 있다”고 이스라엘을 압박하는 등 사태는 예측불허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만약 이란을 포함해 중동 산유국까지 이번 충돌에 개입할 경우 원유 공급 차질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는 이란이 개입해 이스라엘과 전면전에 나서게 되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란이 주요 원유 수송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카드를 꺼낼 수도 있다. 미국의 이란 석유 수출 제재도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블룸버그는 만약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 선까지 치솟게 되면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1.7%로 기존보다 1% 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1조 달러(약 1350조원) 규모의 전 세계의 생산이 증발하게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해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갈등으로 인한 석유 공급 차질 위험은 제한적”이라면서도 “필요하다면 시장 개입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IEA는 서방 선진국을 중심으로 하는 31개국과 비축유 방출 여부 등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국제유가가 오르면 인플레이션을 자극해 세계 경제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크리슈나 스리니바산 IMF 아시아·태평양국장은 “만약 유가가 10% 상승한다면 글로벌 생산량이 그다음 해 0.15% 하락하고 인플레이션은 0.4% 포인트 상승한다”고 말했다.
국제유가 상승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올라간 물가를 잡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은 금리 인상 압력을 받게 된다. 고금리 긴축 기조가 지속된다면 이자 부담이 늘어 기업의 투자 위축과 가계의 소비 감소 등이 뒤따르게 된다. 유가 상승, 물가 상승, 금리 인상, 경기 둔화 등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악순환의 고리’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12일 IMF와 세계은행(WB) 연차총회에서 “유가가 80달러 중반이 될 것이라고 가정해서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을 2.2%로 보고 있다”며 “하지만 유가가 더 오르면 아마도 성장률을 수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무력 충돌로 인한 국제유가 상승이 당장 기준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급등한 가계 및 기업 부채를 고려해야 할 뿐 아니라 전쟁의 양상을 일단 지켜봐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피에르-올리비에 고린차스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의 유가 상승이 지속할지 판단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지난 15일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다음 달 1일로 예정된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예상됐다. CME 트레이더 93.8%는 현 수준(5.25~5.50%)의 기준금리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0.25% 포인트 인상 예상은 6.2%에 그쳤다. 지난 12일 발표된 9월 근원물가 상승률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 오른 것으로 나타나며 시장 예상치에 부합했다는 평가를 받은 점 등이 영향을 미쳤다.
오는 19일 10월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있는 한은도 기준금리를 현재의 연 3.5%로 동결할 공산이 크다. 한은이 시장 전망대로 금리를 현 수준으로 동결하면 지난 1월 0.25% 포인트 인상 이후 6연속 동결을 기록하게 된다. 한국의 성장 동력인 수출이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소비 둔화 등으로 국내 경기 회복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은이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광수 기자 g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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