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tage]선우예권, 라흐마니노프 새 앨범 '달빛에 빈 간절함을 담아…'

박병희 2023. 10. 16.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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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예술의전당에서 발매 기념 독주회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은 "달빛이 물에 비친 풍경을 좋아한다"고 했다.

지난달 12일 발매된 새 앨범의 제목을 '라흐마니노프, 리플렉션(Rachmaninoff, A Reflection)'으로 정한 이유 중 하나다. 6월 초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음반을 녹음하던 첫 날, 유독 통영 앞바다를 환하게 비추는 달빛을 봤다.

선우예권은 "이틀을 녹음했다. 도착한 날 밤에 연습하고 호텔로 돌아오는데 달빛이 굉장히 둥글게, 거의 보름달처럼 꽉 차 있었는데 그때 간절한 소망을 되새겼다"고 했다. 당시 되새긴 간절한 소망은 앨범 속 자필로 쓴 글에 담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더 끌어올릴 수 있기를…'

선우예권이 오는 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독주회에서 간절한 마음을 담아 녹음한 라흐마니노프(1873~1943)의 곡들을 연주한다. 바흐와 브람스의 곡으로 채운 1부 공연 뒤 2부 공연에서 라흐마니노프의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쇼팽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들려준다. 새 앨범에 담긴 곡들이다.

[사진 제공= 유니버설뮤직]

그에게 러시아 작곡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곡은 특별하다. 그가 2017년 6월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 결선에서 연주한 곡 중 하나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었다. 이후 선우예권에게는 한국인 최초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라는 수식어가 훈장처럼 따라붙는다. 선우예권은 라흐마니노프를 "감정적으로 가슴을 들끓게 만드는 작곡가"라고 표현했다.

올해 라흐마니노프 탄생 150주년을 맞아 전 세계에서 라흐마니노프 앨범이 잇달아 발매되고 있다. 라흐마니노프는 BBC 뮤직 매거진이 레코딩 시대 가장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선정할 만큼 연주 실력이 뛰어났다.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라흐마니노프의 곡은 피아노 협주곡이지만 선우예권은 변주곡을 택했다. 그는 변주곡이 라흐마니노프라는 작곡가를 보여주기에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라흐마니노프는 198㎝의 큰 키만큼이나 손도 컸다. 남들보다 피아노 연주에 유리한 큰 손 때문에 라흐마니노프의 곡들은 연주가 까다로운 곡으로 통한다. 변주곡이 한껏 기교를 부릴 수 있는 형태의 곡이기 때문에 어쩌면 라흐마니노프의 색깔이 가장 잘 드러날 수도 있다.

선우예권은 "변주곡은 작곡가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모두 담아서 여러 가지 형태로 꾸며내는 곡이다. 그렇기 때문에 라흐마니노프라는 작곡가를 보여주고 들려주기 위해 변주곡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처음 공부한 라흐마니노프의 곡이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었다는 점도 앨범 수록곡으로 선택한 계기가 됐다. 그는 미국 유학을 가서 2~3년이 지났을 무렵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처음 공부했다고 기억했다.

"15살에 미국 유학을 갔고 17~18살 쯤에 라흐마니노프의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처음 공부했던 것 같다. 그때 배웠던 (세이무어) 립킨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고 선생님이 연주하시던 선율이 아직도 귀에 남아있다. 그렇게 표현력을 키우고 성장해 나갔던 것 같다."

[사진 제공= 유니버설뮤직]

라흐마니노프의 곡으로 한국인 최초 반 클라이번 우승이라는 훈장을 얻었으니 라흐마니노프는 오늘날 선우예권의 존재를 만들어준 인물이기도 하다. 라흐마니노프의 곡들로 채워진 이번 앨범의 제목인 리플렉션이 된 또 다른 이유다. 선우예권도 이번 앨범이 자신을 투영한 음반이라고 설명했다. "이 앨범으로 거울을 바라보듯이 제 자신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싶었다. 거울을 보고 싶을 때도 있지만 바라보기 싫을 때도 있는데 그 또한 본인의 모습이기 때문에 그 본연의 모습을 바라보고 직면하고 싶었다."

통영에서의 녹음 때 간절함이 컸던 이유는 몸 상태가 완전치 않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미뤄온 동원 예비군 훈련과 뉴욕 연주 일정 때문에 출국을 해야 하는 빡빡한 일정 사이 이틀간 이뤄진 녹음이었다. 예비군 훈련 중 병원을 갔다 와야 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고 녹음 당시에도 완전히 회복한 상태는 아니었다. 선우예권은 "몸 상태를 제대로 관리 못 한 것은 잘못이지만, 녹음하는 순간에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최대한 모든 것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집중하려 했다"며 "극한에 몰린 순간에 특별한 것이 많이 나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우예권은 지난달 23일 경기도 화성을 시작으로 새 앨범 발매 기념 전국 투어를 하고 있다. 오는 18일 예술의전당에 이어 20일 여수 공연을 끝으로 한 달 가까운 전국 투어를 마무리한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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