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두려워한 랩터 공개…F-22∙B-52 한반도 띄운 美 속내
세계 최강의 전투기로 평가되는 F-22 스텔스 전투기 ‘랩터’가 16일 수도권 상공에 떴다. 핵 투발이 가능한 전략폭격기 B-52의 비행도 17일 일반에 공개된다. 미국이 자랑하는 핵심 공중전력이 나란히 한반도에서 이 같은 행보에 나서는 건 이례적이란 평가다. 우크라이나에 이어 이스라엘로 전장이 확장되는 상황에서 북한의 도발 우려를 특별 관리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날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서울 ADEX 2023) 프레스데이에서 랩터는 화려한 기동을 뽐냈다. 폭발적인 엔진출력으로 100m가 채 되지 않는 활주 거리로 이륙한 뒤 급상승과 급선회를 반복했다. 특히 하늘로 치솟을 때는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관람객의 탄성을 자아냈다.
이후 랩터만 가능한 기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순간 선회가 대표적이다. U턴을 하는 데 2~3초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그만큼 턴의 반경도 작았다. 랩터라서 견뎌낼 수 있는 중력가속도였다.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처럼 속도 변화를 자유자재로 한 점도 눈길을 끌었다. 장내 아나운서는 랩터의 속도가 90노트(시속 166㎞)에서 순간적으로 600노트(시속 1111㎞)까지 치솟았다고 설명했다. 하늘 속 점이 될 때까지 상승하던 랩터는 관람객을 향해 추락하듯 떨어지더니 다시 기수를 꺾어 수평 비행을 하기도 했다. 랩터는 이밖에 제자리 회전 등 지켜보는 이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기동을 선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공군 관계자는 “랩터가 공대공 공중전의 최강자로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상에 전시된 랩터 1대는 50m 울타리 밖에서 관람객을 맞았다. 미국이 아끼는 자산인 만큼 스텔스 도료, 무장 등의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 보였다.
랩터가 직전에 한국에 온 건 지난해 12월 한·미 공중 연합훈련 때였다. 당시 군산기지에 착륙한 후 기상 악화로 훈련을 벌이진 못했지만 4년 만의 한반도 전개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이전 ADEX에선 2015년 일반에 공개된 적이 있다. 랩터의 등장 자체가 흔치 않은 일로 여겨지는 이유다. 미국 입장에선 한·미 동맹 70주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대북 억제력을 끌어올릴 필요가 상당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랩터는 탁월한 스텔스 기능을 갖춰 김정은 정권이 두려워하는 자산으로 꼽힌다. 가정적 상황이지만 평양 상공으로 몰래 들어가 김정은의 집무실을 타격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과거 군 당국은 랩터가 한반도에 출격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한동안 공개 활동을 자제하며 벙커에 은신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랩터를 수도권 상공에 띄운 것 자체가 북한을 향해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인 셈이다.
B-52의 17일 개회식 참가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찰스 캐머런 대령(ADEX 미군지원단장)은 이날 미디어 데이 브리핑에서 “B-52는 지상에 전시되지는 않고 계획된 시간에 ‘플라이 바이(Fly-by·근접경로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B-52는 6400㎞를 날아가 전술핵 등 사거리가 200㎞에 이르는 32t의 폭탄을 떨어뜨릴 수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전략핵잠수함(SSBN)과 함께 미국의 '3대 핵전력'으로 꼽히는 이유다. B-52을 통해 유사시 언제든 북한에 핵 투발이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이 탄도미사일 도발에 나서는 등 한반도 상황이 엄중해질 때 B-52 한반도 출격 카드를 꺼내들곤 했다.
미국은 B-52의 국내 공군기지 착륙을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할 계획이라고 한다. 훈련을 위해 종종 한국을 찾은 B-52는 훈련 후 바로 괌 등 미군 기지로 복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엔 착륙 사실을 널리 알리려는 건 대북 경고 메시지를 더욱 명확히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군 안팎에선 미국이 이례적으로 랩터와 B-52의 한반도 출격을 동시에 알린 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상황과도 연관돼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미국은 2개의 전장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 틈을 타 북한이 도발에 나설 가능성을 우려, 대북 억제력의 건재함을 과시했다는 것이다.
17일부터 엿새간 열리는 이번 ADEX에 미국은 MQ-1C '그레이이글' 무인 공격기, EA-18G '그라울러' 전자전기 등 공중전력은 물론 M270 MLRS(다연장로켓시스템) 등 지상 장비도 처음 전시한다. 또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의 실물 기체가 일반에 처음 공개되고 시범비행도 이뤄진다. ADEX 관계자는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리는 이번 ADEX를 계기로 앞으로 프랑스 파리 에어쇼, 영국 판버러 에어쇼에 버금가는 3대 에어쇼로 행사를 키워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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