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했던 교권침해, 나를 일으켜세운 것은...”

최경식 2023. 10. 16.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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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칸타타] 좋은교사운동 위기학생연구회 최경희 대표
좋은교사운동 위기학생연구회 ‘마음친구’ 대표인 최경희 교사가 지난달 21일 경기도 수원 탑동초등학교에서 교권침해와 어려움을 신앙으로 극복한 경험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교권 추락’.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극단적 선택 이후 교육계는 물론 우리 사회 전체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슈다. 그동안 수많은 교사들이 교권을 침해당하는 경험을 했지만 이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절망의 심연으로 빠져버렸다. 그러나 신앙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온전한 교권 및 교육을 세워나가는 교사가 있다. 바로 좋은교사운동 위기학생연구회 ‘마음친구’ 대표인 최경희(51·사진) 교사다.

부산의 한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최 교사는 어릴 때부터 교회, 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집안 사정이 녹록지 않았지만 굳은 신앙으로 어려움을 이겨나갔다. 그림 그리기에 남다른 소질이 있어 교대 미술교육과에 입학했고, 교사의 길로 나아갔다.

한 초등학교 1학년 학급을 맡은 최 교사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이 마냥 좋았다. 가만히 쳐다보면 과거 동심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만 같았다. 누구보다 아이들을 잘 가르쳐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중무장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만은 않았다. 최 교사의 학급에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겪는 아이가 2명 있었다. 그들은 분노 조절을 잘하지 못해 틈만 나면 소리를 지르고 주먹질을 하고 몸부림을 치기 일쑤였다. 이 같은 행동은 수업시간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할 때도 적지 않았다.

최 교사는 최선을 다해 문제 학생들을 지도했다. 적절한 때에 그들을 다른 학생들과 분리시키기도 했고, 칭찬을 하며 교화를 도모하기도 했다. 어느 정도 효과는 있었다. 그들은 분노 표출이 많이 줄었고 행동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그러나 불미스러운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종업식을 3주 앞둔 중간놀이 시간. ADHD를 겪는 A학생이 다른 학생들과 블록놀이를 하다 갈등이 빚어졌고, 결국 그 학생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크게 화를 냈다.

“A학생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자 교실 바닥에 드러누워 ‘내 잘못 없어, 나만 왕따 시켜, 나쁜 놈들 죽어’ 하며 소리쳤어요. 이 과정에서 다른 학생들을 향해 책상을 발로 밀기도 하고 갑자기 일어나 앉아있던 의자를 번쩍 들어 학생들 쪽으로 던지기도 했어요. 저는 부모가 아이의 문제행동을 직접 보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렇게라도 해서 아이에게 자극이 필요하다는 교육적 판단 하에 어머니에게 전화해 A를 데려가라고 했어요. 부모와 저 사이에 상호신뢰가 형성돼 있었기에 충분히 이해하실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해당 학부모는 아이가 얼굴을 다쳤다며 사진을 찍고 정신적으로 충격을 입었다며 심리검사를 받았다. 아동학대로 의심된다며 신고하기까지 했다.

최 교사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A 학생의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 학생의 부모는 되레 온갖 횡포를 부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교육청에 민원제기를 했고 교장실을 방문해 모욕적인 언사와 고성을 내뿜었다. 학교 측에서는 별다른 방어를 하지 못했다. 다른 학부모들까지 합세해 공격을 가하기도 했다. 결국 최 교사는 경찰 조사까지 받게 됐고, 심신이 지쳐 병가를 내고 말았다.

“그 학부모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했지만, 저는 공론화해서 억울함을 말할 수 있는 장이 어디에도 없었어요. 이런 불합리하고 원통한 경우가 어디 있는지. 분통이 터져 죽을 것만 같았죠. 2~3주의 폭풍이 지나가는 동안 마치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것처럼 하루하루가 두렵고 떨렸어요. 다시 교단에 설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죠.”

이런 암담한 상황에서 최 교사가 의지한 것은 ‘신앙’이었다. 믿음의 경주, 교회 공동체, 지인들의 중보기도 등이 큰 힘이 됐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했다. 최 교사는 그동안 교사라는 역할에 얽매여 잠시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되찾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끔찍한 교권침해를 당하고도 살 수 있었던 것은 세상을 보는 기준과 해석이 주님의 말씀에 서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삶은 그 자체로 은혜라는 사실. 고난의 시간은 진정 믿음으로 사는 게 무엇인지 일깨워주는 시간이었어요.”

최 교사는 교육 현장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학교 교육활동 과정에서 벌어진 일은 교육 주체가 모여 교육 논리로 풀어야 하고 경찰 등 외부의 개입은 그 다음이라고 했다. 교사 보호 시스템 구축도 필수라고 말했다.

“의사들은 의료 행위를 할 때 병원의 보호를 받아요. 교사도 교육 행위를 할 때 일이 생기면 학교 또는 교육청이 책임을 지고 상대해줘야 합니다. 학부모 등으로부터 소송 대상이 됐을 때 적극 지원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야 학부모도 조심하게 되고 부모로서의 양육 책임도 함께 물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수원=글·사진 최경식 기자 ks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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