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영화만 흥한다? "젊은 여성 티켓 파워↑"

[한국경제TV 박근아 기자]

중국의 경기 침체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은 가운데 영화관들만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CNN 방송이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특히 젊은 여성 관객들이 자국 영화를 보러 몰려든 덕분이다.

CNN이 취재한 홍콩 금융계 종사자이자 젊은 여성인 펜시 펭은 자신들의 삶이 우울한 상황에 있다며 "집이나 자동차 같은 것들은 우리에게 너무 멀리 떨어져 있거나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는 값이 싸고 잠시라도 고민을 잊게 해준다"고 털어놨다.

방송에 따르면 중국영화 박스오피스 자료 제공사이트들인 덩타(燈塔)와 마오얀(猫眼)의 자료를 보면 지난 6월부터 9월까지 4개월 동안 박스오피스 수입은 총 234억4천만 위안(4조3천5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같은 기간 역사상 최대 규모다.

이 기간에 5억7천만 명 이상이 영화관을 찾았고,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또 다른 흥행 요인은 여름철 무더위였다. 전통적인 성수기인 6월부터 8월까지 입장권 판매량은 206억 위안(3조8천억원)으로 치솟아, 같은 기간 최고치인 지난 2019년 178억 위안(3조3천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알리바바픽처스 산하 덩타에 따르면 관객 수 상위 5대 영화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61%로, 역대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 또 관객의 절반가량은 20세에서 29세 사이였다.

중국의 소비력이 모멘텀을 잃은 점을 고려할 때, 이번 박스오피스 기록은 보기 드물게 중국 경제의 밝은 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CNN은 평가했다. 또 영화가 상대적으로 큰 비용을 요구하지 않고 현실 도피를 제공하는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흥행에 성공하는 경향이 있다는 통설을 증명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 미국-중국연구소의 스탠리 로젠 교수는 "(중국에서는) 주택이나 자동차와 같은 소비가 많이 감소했다"며 "그러나 영화 보러 갈 여유가 있고, 이는 일부 우울감을 해소해준다"라고 말했다.

로젠 교수는 1930년대 대공황 당시 미국에서도 사람들이 돈은 없었지만, 스타 배우인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가 출연하는 영화의 흥행 수익은 엄청났다고 덧붙였다.

영화 '바비'와 '오펜하이머'가 최근 몇 달간 글로벌 박스오피스를 장악한 것과 달리, 중국의 흥행 영화는 범죄 스릴러로 올여름 최대작인 '노 모어 베츠'(No More Bets), 로맨틱 미스터리 '로스트 인 더 스타스'(Lost in the Stars) 등 모두 자국산이었다.

펜시 펭의 언니로 중국 상하이의 한 갤러리에서 일하는 페리 펭(23)은 미국과 유럽 영화의 열렬한 팬이었으나 지난 여름에 본 중국 영화의 퀄리티에 "놀랐다"며 자국 영화에 눈을 돌린 이유를 설명했다.

페리 펭은 또 "우리는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현재에 살고 싶다"며 "우리 일부는 사회보장연금조차 내고 싶지 않아 하며, 우리는 할 수 있을 때 인생을 즐기고 하루를 즐기고 싶다"라고 말했다.

여름철 영화 흥행을 여성이 주도한 가운데 페미니즘적 메시지를 담고 실제 사건을 영화화한 '로스트 인 더 스타스'의 경우 여성 관객 비율이 67%에 달했다.

반면 할리우드 영화는 중국 시장에서 밀리는 상황이다. 덩타 자료를 기반으로 한 CNN의 계산에 따르면 올해 들어 현재까지 미국 영화가 세계 2대 시장인 중국 박스오피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14%에 불과하다. 현 추세가 올해 말까지 지속하면 할리우드의 연간 점유율은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고 10여년 만에 가장 낮게 된다.

할리우드의 중국 점유율은 검열 강화, 양국 관계 악화, 민족주의 정서 고조, 중국 영화와의 경쟁으로 인해 최근 수년간 점차 감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근아기자 twilight1093@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