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학자 류영남 박사를 아십니까
[남해시대 한중봉]
지난 9일은 577돌 한글날이었다. 훈민정음(訓民正音) 곧 오늘의 한글을 창제해서 세상에 펴낸 것을 기념하고, 우리 글자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국경일이다. 1926년에 음력 9월 29일로 지정된 `가갸날`이 그 시초이며 1928년 `한글날`로 개칭되었다. 광복 후 양력 10월 9일 로 확정, 2006년부터 국경일로 지정되었다.
한글날을 앞둔 지난 9월 하순, 본지 논설위원장인 서관호 시조 시인으로부터 남해가 배출한 위대한 한글학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봄내`라는 아호를 쓰는 한글학자 류영남 박사였다. 류 박사는 한글날 576돌을 기해 지난해 10월 9일 <경사의 길 한글과 함께 60년>을 세상에 내놓았다.
서관호 시인은 류 박사를 "한글을 진정으로 사랑한 자랑스러운 남해인"이라고 소개하며 "우리 남해인이 기려야 할 표상"이라며 존경의 뜻을 나타냈다.
서관호 시인에게 류영남 박사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더니 지난 4일 류 박사께서 <남해시대> 신문사로 책을 보내왔다. 책 서두에는 "웃음 띤 세상 바라면서 보낸 3년 세월, 그 무료를 달래는 마음으로 나의 지나온 발자취를 엮어보았습니다. 옛정 그리며 변변찮은 책 한 권 보내오니 미소로 받아주시리라 믿습니다"란 인사말에 넉넉함이 담겨 있었다.
▲ 류영남 박사 |
ⓒ 남해시대 |
아호를 '봄내'라 쓰는 한글학자 류영남 박사는 1943년 서면 대정 마을에서 태어났다. 류 박사는 대서초와 남해중을 거쳐 진주사범학교 졸업 후 평생을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부산시 초·고등학교 교사, 중·고등학교 교감, 교장을 지냈다. 부산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부산교육연수원·부산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했다. 부산한글학회장, 부산국어 교육학회장을 지냈으며, 부산직할시 우리말 바로 쓰기 추진위원·부산경찰청 치안 행정 자문 위원으로 활동했다.
그의 한글사랑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메일(e-메일)을 '누리편지'라고 한 것에서도 느껴진다. 영어의 홈페이지(homepage)를 한글로 하면 누리집이다. 누리는 '세상'의 예스러운 말이다.
류 박사의 아호 '봄내'도 '봄의 시내'를 줄인 우리말이다. 가정 형편상 중학교를 졸업하고 진주사범학교를 진학하기 전 1년간 집안일을 도왔는데, 겨울 어느 날, 꽁꽁 언 개울에선 물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봄이 와 개울 물소리가 들릴 때면 나에게 진학의 길이 열릴 것이란 희망을 꿈꾸었다. 그때 희망을 준 시냇물의 의미를 담아 봄내라 했다.
류영남 박사의 흔적
<국제신문> 조봉권 기자는 지난해 12월 14일 자 '부산 한글 운동 대부 자서전 책 팔지 않음 붙인 까닭은?' 기사를 통해 류 박사의 한글 사랑과 그가 남긴 업적, 저서 <경사의 길 한글과 함께 60년>을 소개하며 "이 책에서 우리글·우리말을 바르게 쓰도록 돕는 사례는 일일이 세기 힘들 정도다. 136쪽에 고교 교사 시절 남긴 교재연구 자료 사진이 있는데 교육에 들인 그의 정성을 느끼게 한다. 지은이는 이 책을 비매품으로 냈다. 책 맨 뒤 비매품으로 쓸 자리에 이렇게 우리말로 풀어 썼다. '책 팔지 않음.' 1943년생 원로 학자 봄내 류영남의 우리말글 사랑은 끝없다"고 전했다.
류영남 선생은 학창 시절의 <우리글을 바르게>(1961)를 시작으로 <올바른 국어학습의 길잡이>(1967), <말글밭>(1994), <부산한글 50년>(2015) 등 책도 10여 권 펴냈다.
아울러 교문과 비석의 글씨를 썼다. 경남여고·금정고 등의 명판과 내성고·동래고 등의 교훈비, 청마 유치환 시비, 향파 이주홍 탄생 100주년 문학비, 최계락 시비에 새긴 글이 그의 글씨다.
그 과정에서 부산 중구 보수동에 검정다리 기념비를 세우려던 중구청의 뜻을 보완해 '검정 다리 추억비'라는 한결 친근한 이름을 지었다.(국제신문 기사 참조)
류 박사는 전통 한옥으로 유명한 서면 서호마을 회관 '호운각(湖雲閣)' 이름을 짓고, 대정마을 동리가를 썼으며, 정자 이름 느티정과 명명기를 지었다. 또 재부남해군서면향우회 <회지>(2010), 재부산남해군향우회 70년사 <회지>(2015) 편집위원으로 봉사하기도 했다.
류영남 박사와 문학회 〈길〉 동인으로 활동했던 김필규 시인은 블로그에 "그(류영남 박사)는 길거리를 가면서도 그냥 가지 않는다. 잘못된 말이나 맞춤법에 맞지 않는 말이 있으면 기어코 담당자에게 일러주고 가고, 어느 기관에서 나온 글에 잘못이 있으면 전화를 하거나 우편으로 글을 보내 바로잡는 고집도 대단하다"고 소개했다.
아울러 시인은 "선생은 한글 서예에도 대가로서 부산 곳곳에 그의 글씨가 돌에 새겨져 있다. 천성이 부지런하고 누가 글씨 부탁을 하면 거절하는 법이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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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남해시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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