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일... 핸드폰 없이 원룸 화장실에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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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정 기자]
거두절미하고 얘기하겠다. 나는 며칠 전 우리 집 화장실에 갇혔다. 갇힌 시간은 대략 2시간이었지만 정말이지 식은땀 나는 순간이었다.
화장실에 들어간 건 오후 2시 반 경이었다. 자격증 공부를 위해 간 도서관에서 집중이 안 되어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중, '이럴 거면 차라리 집에 가서 청소나 하고 씻고 낮잠이라도 자자' 하면서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온 터였다.
갇혔다
▲ 부서진 문고리 잔해 |
ⓒ 박유정 |
그리고 손을 다 씻고 문고리를 다시 잡았을 때 나는 곧장 그 선택을 후회했다.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이다. L자 모양 문고리를 위로도 돌려보고, 아래로도 돌려보고, 밀면서 돌리고, 당기면서 돌려도 문은 열릴 생각을 안 했다. 문틈 사이를 보니 문고리를 돌릴 때마다 들어갔다 나오던 잠금장치가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수십 번 문고리를 돌리다가 나는 깨달았다. 이 문은 지금 내가 평소와 같은 방법으로 열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일단 핸드폰을 찾았다. 인터넷에는 별의별 상황에 대한 해결책이 제시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 힘을 빌리는 것이 합당했다.
그러나 핸드폰은 문 밖에 벗어 놓은 겉옷 안에 있었다. 나는 나의 바보같은 행동에 머리를 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문득 화장실에 갇힌 사람이 핸드폰 음성 AI 빅스비를 불러 탈출에 성공했다는 뉴스를 봤던 것이 떠올라 나도 얼른 "하이 빅스비!" 하고 불러보았다.
그리고는 몇 달 전 아빠 휴대폰을 물려받은 이후로 음성 빅스비 기능을 켜놓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이제는 식은땀이 아니라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결국 나는 문을 부수기로 결정한다.
한 번도 문을 부숴본 적은 없었지만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달려가 어깨로 문을 쉽게 부수고 들어갔기 때문에 나도 노력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뛰기에는 원룸 화장실이 매우 협소했고, 난 그냥 보통 사람일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 어깨가 아픈 화장실에 갇힌 사람이 되었다.
다음 방법으로는 문고리를 부수거나 문고리로 움직이는 잠금장치를 밀어넣어 문을 여는 방법을 시도해봤다. 결과는 실패. 당연했다. 애초에 화장실에 문고리를 부술만큼 단단한 물건이 있었다면 그냥 나무합판으로 만들어진 문을 부수고 나갔을 것이다. 그런 건 없었다. 후자의 경우도 문틈 사이에 들어갈 만큼 얇은 물건은 없었다.
여기까지 시도했을 때 나는 이미 땀에 흠뻑 젖어 있었고 '갇힌 김에 샤워나 할까?' 하고 생각할 만큼 지쳐 있었다. 그래서 결국 마지막 방법을 시도해보기로 한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창문으로 구조요청을 하는 것이었다.
외쳤다
일단 우리집은 1층이었고 지대가 낮은 편이라 창문이 보통보다 위쪽으로 붙어 있었다. 구조요청을 하려면 변기 위에 올라가 외쳐야 했다. 그런데 우리집 화장실 창문은 골목 뒷쪽으로 나 있어 평소 지나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이사를 올 때는 분명 장점이었는데 갇힌 입장이 되니 이만한 단점이 없었다. 하지만 물불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변기를 밟고 올라가 "저기요!", "도와주세요!"를 연신 외쳤다. 하지만 평일 낮시간에 지름길도 아닌 골목 뒷길을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소리를 쳤을까? 남성분 한 분과 여성분 한 분께서 길을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도와주세요! 지금 지나가시는 분! 여자분! 남자분!" 이렇게 소리를 쳤고 두 분은 내가 있는 창문가로 오셔서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하는 표정으로 나에게 이유를 물었다.
나는 두 분 핸드폰에 공동현관문 번호와 호수, 집 비밀번호를 적어드리고 문을 열어주실 것을 부탁드렸다. 곧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이때 밖에서 문고리를 돌리면 문이 열릴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소망과는 달리 문은 꿈쩍을 안 했고, 두 분이서 몸으로 문을 부수려했지만 불가능했다.
▲ 구조 요청을 한 창문 |
ⓒ 박유정 |
▲ 구조 요청 중 받은 물 |
ⓒ 박유정 |
신고가 끝나고 남성 분은 나에게 물이 필요하냐고 물어보셨고, 나는 그럴 정신도 없어 괜찮다고 너무 감사하다고 이제 가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변기 위에서 연신 고개를 숙였다.
두 분이 사라지고 난 화장실 바닥에 앉아 구급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창문으로 페트병 하나가 올라왔다. 밖을 내다보니 두 분께서 물을 가져와 나에게 올려주신 것이었다. 정말 이때는 너무나 감사해서 죄송스럽기까지 하였다.
▲ 결국 부순 문고리 |
ⓒ 박유정 |
곧 구급대가 도착하고 장비로 문고리를 부숴 나를 구해주셨다. 문이 열리고 나간 우리집 좁은 현관에는 건장한 소방대원분들이 땀을 흘리며 다닥다닥 서 계셨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게 너무 죄송스러웠다. 도움은 못 돼도 민폐는 끼치지 말고 살자는 게 내 신조였는데, 나 하나로 얼마나 많은 분들께 민폐를 끼친 건지.
문이 열리고 내가 나오자 구급대원분께서는 내 이름과 나이 전화번호를 적어서 다시 돌아가셨다. 문고리는 다시 사서 달면 된다는 친절한 설명도 함께였다.
이때가 오후 4시 반이었으니 2시간을 갇혀 있던 셈이다. 나는 나가는 길까지 계속 감사 인사를 전하고 나를 신고해주신 두 분을 찾아 밖으로 나갔지만 사라지고 안 계셨다. 계속 서성이다 남성 분은 만나 감사 인사를 짧게 전했지만 사례를 하지 못한 것과 여성분께 감사 인사를 드리지 못한 것이 신경쓰였다.
그래서 물병을 들고 인근 편의점들을 찾아가 이 물을 사가신 분이 없었냐고 찾아다녔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아직도 세상이 너무 따뜻하다는 것을 알려주신 두 분, 정말 너무너무 감사드린다. 내 마음 속 올해의 성인 두 분이시다.
끝으로 나와 같은 상황을 겪지 않기 바라는 마음에서 당부한다. 평상시 원룸 화장실 문고리 점검을 수시로 해두고 혼자 사는 집에서는 휴대폰을 들고 화장실에 가는 습관을 들이자. 또 망치 등 유사시에 자신을 보호하거나 문을 부술 수 있는 장비들을 갖추고 있는 것이 좋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나와 같은 상황을 겪지 않길 바람에서 한 번씩은 문고리가 헐겁지 않은지 돌려보시길 추천드리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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