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많이 벌어 부자 되자" 탈북 여성이 마주한 혹독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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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탈북민 한영(이설)은 중국어를 배웠다.
한영은 한국에 태어났더라면 역마살 꼈을지 모른다는 아픈 말도 들었다.
고물가, 고령화 시대 생존을 발버둥 치는 청춘의 고단한 얼굴까지 겹치자, 한영의 문제는 탈북민이어서가 아닌 평범한 청춘이라 힘들다는 인상이 짙어진다.
영화 속 한영의 북한 말투가 서서히 옅어지는 것은 한국 사회에 적응했다는 증거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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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령 기자]
▲ 영화 <믿을 수 있는 사람> 스틸 |
ⓒ 찬란 |
2015년 탈북민 한영(이설)은 중국어를 배웠다. 한국에서 관광 통역안내사가 되어 새 삶을 꾸리려 한다. 돈을 많이 벌어서 엄마도 데려오고 싶었지만 얼마 후 사드 배치로 중국인 대상 관광업이 완전히 죽어버렸다. 브로커는 더 많은 수수료를 원하지, 방황하는 동생 인혁(전봉석)은 며칠씩 연락이 안 돼 속상하기만 하다.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고 지쳐만 간다.
시간은 흘러 한영은 때때로 아르바이트하거나 불법이지만 자격증을 빌려주며 근근이 살아간다. 향수병에 걸려 월북을 시도했던 인혁도 다행히 잘 해결되었다. 하지만 유일한 탈북민 친구 정미(오경화)까지 이민으로 곁을 뜨자 쓸쓸하고 헛헛한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와중에 보호 경찰의 의무를 친절로 오해해 쓸쓸한 성탄절을 보낸다.
한영은 한국에 태어났더라면 역마살 꼈을지 모른다는 아픈 말도 들었다. 떠나지 못해 갇혀 있는 느낌은 북한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중국인을 상대로 가이드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유명 관광지 한 번 못 가본 서글픈 처지다. 한국을 처음 찾은 관광객을 친절히 가이드해주지만 본인은 길을 찾지 못해 이질적인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
▲ 영화 <믿을 수 있는 사람> 스틸컷 |
ⓒ 찬란 |
영화는 탈북민의 전형을 탈피하고 난민, 이방인처럼 묘사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디아스포라, 성공하고 싶다는 열망이 부딪히는 아픈 현실이 유유히 흐른다.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혼자만 다른 외로움과 고독을 담담하게 연출했다. 여행, 유학, 이민이나 전학, 전근, 이사 등에서 느낄 수 있는 소외감과 고립감을 세밀하게 그렸다. 고물가, 고령화 시대 생존을 발버둥 치는 청춘의 고단한 얼굴까지 겹치자, 한영의 문제는 탈북민이어서가 아닌 평범한 청춘이라 힘들다는 인상이 짙어진다.
한영이 의도와 다르게 궁핍해지고 어딜 가나 믿음을 주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탈북민 출신이란 꼬리표는 따라다녀 직장, 보호관찰관, 브로커, 가족에게 믿을 수 없는 사람, 그저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이방인일 뿐이었다.
주변에 있을 법한 인물 한영을 연기한 이설의 북한 사투리와 중국어가 어색하지 않아 놀랐다. 드라마 <옥란면옥>에서도 탈북민을 연기해 자연스러운 북한 말투를 보여준다. 한국에 살며 점차 옅어지는 미묘한 억양과 흰 피부, 검은 머리, 빨간 입술, 파란 목도리가 대비되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이 작품을 통해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배우상을 받기도 했다.
▲ 영화 <믿을 수 있는 사람> 스틸컷 |
ⓒ 찬란 |
여행이 아닌 관광을 가보면 안다. 그 나라의 좋은 것만 보고 듣는다. 일상적인 모습이나 추하고 더러운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살지 않고 잠깐 겉핥기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며칠 여행을 해보면 다르다. 그 나라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피부로 느낀다.
영화 속 한영의 북한 말투가 서서히 옅어지는 것은 한국 사회에 적응했다는 증거로 해석된다. 눈칫밥을 먹고 한국인의 일상에 동화되어 가고 있다는 말이다. 돈 많이 벌어 부자가 될 거라는 순수한 환상은 사라져가고 혹독한 현실과 마주하게 될 미래다. 부초처럼 정처 없이 떠돌다 만난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고, 정착하고자 했지만 쉽지 않은 시행착오를 반복할 것이다.
한국이 아니더라도 어딜 가나 이와 같은 과정은 반복된다. 그래서일까. 공항에서 만난 한영의 희미한 웃음은 의미심장함을 넘어 후련함을 남긴다. 도착지를 정한 건지, 무엇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없어 불안해 보여도 어디든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것만 같다. 나 자신을 첫 번째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고 싶은 한영의 뒷모습을 자꾸만 응원하고 싶어진다. "한영아! 어딜 가도 잘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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