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내 편만 만족시키는 '혐오발언'의 무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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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개표방송을 보던 기자는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소리를 들었다.
개표 결과가 한쪽으로 심하게 쏠리자 분노한 한 여성이 고성을 지르며 개표장을 소란케 하는 장면이었다.
개표장에 한 번이라도 가 본 사람이라면 바로 알 수 있다.
적이기 때문에 아무 거리낌 없이 공공장소, 그것도 모든 국민의 이목이 쏠린 보궐선거 개표장에서 당당하게 지역비하 발언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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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가 다 해 처먹어! 세상이 전라도야!"
지난 11일 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개표방송을 보던 기자는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소리를 들었다. 개표 결과가 한쪽으로 심하게 쏠리자 분노한 한 여성이 고성을 지르며 개표장을 소란케 하는 장면이었다. 기자로선 이번 선거에서 가장 헛웃음이 나는 촌극의 순간이자, 우리나라의 지역 대립 정치 상황을 보여주는 해프닝이라 마음이 무거웠다.
이 여성은 선거에 패배한 김태우 후보 측 관계자였을까. 강서구 선거관리위원회는 "아직 파악되는 것이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하지만 지지자일지는 모르겠지만 캠프 관계자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개표장에 한 번이라도 가 본 사람이라면 바로 알 수 있다. 개표장에는 개표 담당 인원을 제외하고 참관인, 관람인 그리고 기자 정도가 개표 상황을 지켜보게 된다. 이 중 참관인은 후보자가 선정한 사람이다. 또한 공직선거법 182조에 따라 일반인은 누구든지 각급 선관위에서 발행하는 관람증을 받아 지정된 장소에서 관람이 가능하다. 공정한 선거라는 것을 확인해 주기 위해 개표 과정을 공개하는 것이다.
선거 운동을 하는 모습은 자주 볼 수 있지만, 개표장에서 개표하는 모습을 직접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개표는 선거 운동보다 더 치열한 분위기에서 진행된다. 특히 접전지역에서는 한표 한표가 승패를 가르기 때문에 캠프에서 파견한 참관인들이 기표가 애매한 표가 나오면 몇 시간씩 논쟁을 벌이는 일이 흔하다. 이 때문에 핵심 참관인의 경우 각 캠프에서 선거에 대해 잘 아는 경험자나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선발해 보낸다. 불리한 상황이 벌어지면 후보를 대신해 적극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장선상에서 참관인들은 소속 정당이 달라도 크게 사이가 나쁘지 않다. 지역에서 정당활동을 하거나, 선거와 개표를 잘 아는 사람, 상식적인 선에서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핵심 인력은 반복해 참관인으로 선발되고 자연스럽게 서로의 얼굴을 잘 안다. 특히 판세가 한쪽으로 심하게 기운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논쟁해도 당락을 뒤바꿀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서로 위로하기도 한다.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같은 전장에 있었기 때문에 정서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이런 여러 정황을 보면 소리를 친 여성은 특정 정당과는 관계가 없는 일반 관람인으로 보인다.
물론 이 여성의 발언이 특정 계층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한 줌에 불과한 극단적 생각을 가진 이의 돌발적인 발언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혐오 발언이 공공장소에서 나온다는 것은 건전한 정치 발전에 도움되지 않는다.
이 해프닝은 내 편, 내 진영만 만족시키면 되는 ‘팬덤정치’의 어두운 부분을 잘 보여준다. 합리적 대화와 타협보다는 상대를 타도해야 할 적으로 보는 것이다. 적이기 때문에 아무 거리낌 없이 공공장소, 그것도 모든 국민의 이목이 쏠린 보궐선거 개표장에서 당당하게 지역비하 발언을 한 것이다. 적을 만들어 우리 편을 결속시키는 정치는 파멸을 불러온다. "해 처먹어"라는 비속어는 지난 총선에도 나왔다. 세월호 유가족을 향해 "징하게 해 처먹어"라는 말을 한 후보는 반복된 혐오발언으로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고, 상대 당에 180석 승리를 안겼다. 국민의 심판이 무섭다면 상식에 어긋나는 혐오 발언은 자제해야 한다.
성기호 사회부 차장 kihoyey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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