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스탄에서 텐트 치기... 뭔가 잘못했음을 깨닫다

안사을 2023. 10. 1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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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이동 끝에 만난 천국같은 호수

이메일이 디지털 사진이라면 필름 사진은 손편지 정도로 여기며 천천히 세상을 담습니다. 여정 후 느린 사진 작업은 또 한 번의 여행이 됩니다. 수평 조절 등 최소한의 보정만으로 여행 당시의 공기와 필름의 질감을 소박하게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Kodak Ektar100 필름을 사용하였습니다. <기자말>

[안사을 기자]

(* 지난 기사 <'색감 죽이는' 곳, 흑백필름으로 촬영한 사연>에서 이어집니다. https://omn.kr/25u58 )

달리는 불구덩이

카자흐스탄에서 2박을 보내고 키르기스스탄으로 이동하기로 한 날이 밝았다. 여유를 부리고도 싶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가성비를 채우기 위해 타국의 보도블록을 부지런히 밟았다. 비슈케크에 일찍 도착하더라도 어차피 오후라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알마티에서 점심까지 먹고 가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다시 여정을 짜라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알마티에서 비슈케크(Бишкек)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사이란 버스터미널로 가야 한다. 버스는 대략 2시간마다 있고 예매도 가능하다고 하지만, 외국인들은 보통 직접 가서 표를 사는 듯했다. 우리도 각각 65리터, 85리터 배낭을 짊어지고 편리하고 친절한 택시 시스템인 '얀덱스고' 앱을 이용해 터미널로 향했다. 버스표를 사고 남은 시간 동안 근처에서 밥을 먹을 예정이었다.

버스는 예상했던 것보다 2시간 늦은 시각인 오후 2시 버스였다.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근처 맛집을 가지는 못했고 터미널 안쪽 식당에서 점심을 대충 해결하고 맥주와 콜라를 소비하며 죽치고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배낭을 짊어지고 다닐 수는 없었고 배낭을 맡아주는 비용이 생각보다 너무 비쌌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우리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충격적인 공기가 폐를 찔렀다. 누가 누가 오래 버티나 경쟁하고 있는 건식 사우나의 열기를 '흡~'하고 마신 것만 같았다. 실내온도가 족히 30℃는 되는 듯했다. 버스의 창문은 암막의 기능이 없는 붉은 커튼이 드리워있었는데 그 색채감이 체감온도를 한껏 높였다.
 
▲ 버스 안 (핸드폰) 국경을 넘는 버스 속은 무쇠 가마솥 같았다.
ⓒ 안사을
 
이날의 교훈을 통해 우리는 앞으로 대지가 달아오른 오후에는 절대로 이동을 하지 않기로 했다. 되도록 아침 시간을 이용하고 어쩔 수 없다면 최소한 창문이 열리는 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나마 큰 버스여서 열악하게나마 에어컨이라도 있었지, 소형 버스인 마슈르카나 보통의 택시들은 자연 바람이 달아오른 뺨을 식힐 유일한 수단이다(그나마 마슈르카 중간 좌석은 창문조차 열리지 않는다).

물론 이곳은 공기가 건조한 지역이라 그늘만 드리우면 열기가 쾌적함으로 순식간에 바뀌는 곳이다. 혹독함으로 따지자면 여름보다 겨울이 더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인지 얼음을 탄 음료도 찾기 어려웠고 시골 지역에는 에어컨이 달린 숙소도 드물었다.

'얼어 죽어도 아이스'를 찾는 한국인으로서 오히려 그런 부분이 힘들었다. 맥주도 미지근하고 콜라도 미지근하고 커피는 더더욱 그랬다. 아무리 불어오는 바람이 쾌청하다 해도 목구멍이 차갑지 못한 것은 못마땅했다. "아니, 대체 이 나라는 왜 얼음이 없는 거야!"라고 몇 번 외치기도 했다.

긴 이동 끝에 만난 천국같은 호수
 
▲ 이 세상이 아닌 듯 아침 햇살이 드리운 송쿨 호수의 모습
ⓒ 안사을
 
비슈케크에 도착한 건 오후 7시가 다 돼서였다. 육로로 국경을 넘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늘에서는 언제 넘었는지 모를 경계가 땅에서는 명확하니, 새로운 경험이었다. 버스에서 모든 짐을 다 꺼내어 심사대를 통과한 뒤 다시 버스를 찾아 걸어야 한다. 가이드도 없이 무작정 느낌을 따라 걸어야 하기에 다소 불안감이 있다.
환전은 이곳에서 하는 편이 낫다. 시내 환전소보다 환율이 더 나으면 나았지 나쁘지 않다. 버스 또한 국경을 통과하는 시간이 있으니 환전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상황이 처음이었기에 동행인은 버스를 놓칠까봐 전전긍긍하며, 나는 그에 못지않은 마음으로 망을 보며 달러를 솜(com, 키르기스스탄 화폐 단위)으로 바꿨다.
 
▲ 국경 길게 늘어선 차량 사이로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걸었다.
ⓒ 안사을
   
 국경 환전소
ⓒ 안사을
 
비슈케크 서부 터미널 근처의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를 묵고, 또 다른 나라에 왔다는 느낌을 만끽할 새도 없이 곧바로 이동을 시작했다. 이곳에서의 첫 번째 목적지는 송쿨(Соң-Көл)이었는데, 그곳에 이르기 위해서는 코치코르(Кочкор)라는 시골 마을을 기착지로 삼아야 한다. 러시아 말도, 키르기스어도 인사말밖에 못 하는 상황에서 그곳으로 갈 일이 막막했는데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서자마자 그 걱정은 사라졌다.

"코치코오르! 코치코오르!"
"발릭취! 발릭취!"

승객을 부르는 굵고 거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선글라스를 쓴 구릿빛 피부의 털북숭이 아저씨들이 우리를 에워싸며 연신 코치코르와 발릭치를 외쳐댔다. 잠시 주눅이 들었다가 조심스럽게 우리도 "코치코르?"라고 말을 건넸다.

미니버스인 마슈르카를 타면 500솜(약 7500원)에 이동이 가능하지만 전날 달리는 불구덩이에 데인 놀라움이 채 가시지 않은지라 에어컨도, 창문도 없는 그 녀석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다른 승객 없이 우리만 타기로 하고 코치코르까지 3000솜(약 4만5000원)에 흥정을 마쳤다. 역시 무섭게 생겼지만 순박한 기사님이 모는 택시였다.

시내를 벗어난 택시는 신나게도 달렸다. 에어컨이 없으니 창문을 활짝 열어야 했고 속도계보다 체감속도가 훨씬 높았다. 전면 유리창은 잘 맞춘 퍼즐처럼 예쁘게 금이 가 있었는데, 비단 우리 차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도시를 잇는 도로는 포장이 잘 되어있지만 그 외에는 비포장도로가 많기에 대부분의 차량은 금 간 전면 유리를 복식(服飾)처럼 달고 있었다.
 
▲ 비슈케크에서 송쿨까지의 경로 파란 선이 비슈케크-코치코르, 빨간 선이 송쿨까지의 길
ⓒ 구글지도캡쳐
  
▲ 코치코르 작은 마을이지만 송쿨로 가는 기착지여서 숙소가 제법 많은 곳
ⓒ 안사을
 
코치코르에서 또 하루를 보냈다. 별점이 높은 식당에서 저녁을 맛있게 먹었고 하룻밤에 한국 돈으로 2만5000원 정도 하는 숙소에서 편하게 잤다. 그곳에서 제공해준 조식을 감사히 먹고 다시 택시를 잡으러 거리로 나섰다. 여행자를 위해 교통편이나 유르트(유목민의 이동식 집) 숙박을 저렴하게 알선해주는 센터도 있었는데, 그곳 덕분에 예전에 비해 지역민의 바가지가 사라지면서 다양한 선택지가 생겼다.

센터에서 알려준 가격은 편도 5000솜, 왕복 8000솜이었다. 거리의 택시 기사들도 얼추 비슷한 가격이었는데 4000솜까지 해준다는 청년 기사도 있었다. 우리는 운이 좋게도 같은 목적지로 향하는 호주인 부부, 한국인 청년 한 명을 각각 길에서 우연히 만나 합승했다. 화기애애한 대화도 함께.

6명이서 개인당 1000솜에 송쿨로 갈 수 있게 됐다. 물가가 싼 나라에서 한 번에 9만 원에 가까운 택시비를 지불해야 하는 게 꽤 비싸게 느껴졌지만 그 생각은 이동하는 중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오히려 그 가격이 싸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3시간이 넘게 이동하는데 비포장이 대부분이고 3800미터의 고지인 깔막아수(Калмак-Ашуу)를 넘어가는 고난도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올라온 길
ⓒ 안사을
   
 가야할 길
ⓒ 안사을
 
전날 같은 숙소 다른 방에 묵었던 독일 젊은 여성은 말을 이용해서 송쿨을 간다고 했다. 말을 타보지도 않은 사람이었는데 그 결정을 들을 때는 '대단하다' '재미있겠다' 정도의 생각만 들었다. 그런데 택시로 이 길을 와보니 그 사람은 과연 이 험난한 길을 알고서 떠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로 온다면 2박 3일은 족히 걸릴 길이었다.

깔막아수패스에 이르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딱 봐도 한국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함께 차에 있던 호주인 부부 중 남자도 그리고 택시 기사도 그들이 한국 사람임을 한눈에 알아차리는 것이 아닌가. 대화를 번역해보면 이렇다.

"한국 사람들이네요."
"맞아요! 그런데 어떻게 아세요?"
"화려한 등산복과 큰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대부분 한국 사람이에요."
"하하하. 그런가요? 그러고보니 저도 등산복 차림에 큰 카메라를 가지고 있군요!"

패스, 그러니까 한국말로 하면 '령' 정도나 되려나. 미시령보다 훨씬 높은 '깔막아수령'에서 사방을 잠시 굽어본 후 다시 택시에 올라타면 이제 내리막을 1시간여 달린다. 우리는 호수의 북쪽으로 향했는데 그러기를 참 잘했다. 첫날밤 호수의 남쪽 하늘에서는 엄청난 번개가 번쩍였다.

저 멀리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흐린 하늘 속에서도 은혜롭게 내려오는 햇빛에 송쿨 호수의 수면이 응답하는 모습이었다. 변화무쌍한 하늘 만큼이나 노출 차가 커서 사진에 다 담기지 않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셔터를 눌렀다. 사람의 눈으로는 사진보다 훨씬 명암이 잘 식별된다.
 
▲ 멀리 보이는 호수 해발 3천미터가 넘는 곳에서 저렇게 큰 호수를 바라보고있자니 멀리 여행왔음을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다.
ⓒ 안사을
 
우리는 유르트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에 내렸다. 눈으로 보이기엔 호수의 건너편이 보이지만 사실 그곳은 가장 짧은 거리의 반대편일 뿐이다. 대청댐이나 용담댐처럼 물길이 굽이굽이 연결되는 호수가 아니라, 원형의 모양을 가지고 있지만 한 곳에 서서 눈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은 호수의 10분의 1이나 될 것이다. 이식쿨 호수는 이곳의 수십 배의 면적이니 얼마나 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땅이 넒어서 오히려 텐트를 어디에 쳐야 할지 갈팡질팡했다. 유르트와 호수 사이에 길이 있는데, 그 길과 호수의 사이에 최대한 경사가 없는 땅을 골라 텐트를 쳤다. 오후 6시가 넘어가고 있는 시간이었기에 우리를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사실 그곳은 야영이 금지된 구역이었다. 
 
▲ 첫날 텐트를 친 곳 노출차가 커서 조금이라도 역광이 발생하면 여지없이 화이트홀이 생긴다.
ⓒ 안사을
 
▲ 저녁에서 밤으로 해변만큼 화려한 노을은 아니었지만 고산지대의 평원에서 펼쳐진 하늘은 충분히 압도적이었다.
ⓒ 안사을
 
다음날 오후가 돼서야 금지된 구역임을 알 수 있었다. 오전에도 한 노인이 오셔서 뭔가 말씀을 하셨는데 번역기도 소용없을 정도의 지역색이 강한 키르기스어여서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분은 우리가 있는 땅을 가리키며 손으로 엑스를 표했고 길 너머 유르트를 손짓하기를 반복했다.
우리 말고도 그 근처에서 야영을 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금지됐다는 말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더구나 그분은 (아마도) '잘 곳이 없으면 우리 유르트로 오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였다. '하룻밤에 300솜을 내면 우리 마당을 쓰게 해주겠다'는 느낌의 몸짓으로 금액도 제시했기 때문이었다.
 
▲ 호수와 반영 물 위에도 구름이 떴다.
ⓒ 안사을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며 먼 곳을 가리키는 또 하나의 몸짓을 우리는 오후가 돼서 알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한가로이 햇살을 쬐고 있을 때, 군복을 입은 한 사람이 우리에게 와서 텐트를 옮길 것을 요청했다. 그는 서툰 영어로 길 너머는 무엇을 해도 좋다고 설명했다. 그제야 우리는 "아하!"라고 탄성을 내지르고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린 뒤 서둘러 텐트를 옮겼다. 
옮기고 나서야 유르트들의 배치가 눈에 들어왔다. 호숫가에 난 길과 호수 사이에는 텐트뿐 아니라 어떠한 물체들도 없었다. 울타리는 없지만 그곳은 자동차나 텐트, 유르트가 들어갈 수 없는 구역인 듯했다. 온전히 동물을 위한 공간이었을까? 수질 보호를 위한 정책이었을까? 호수를 신성시하는 민간신앙 때문이었을까?
 
▲ 호수와 말 평화롭게 물을 마시는 송쿨의 말들
ⓒ 안사을
  
▲ 새로운 보금자리 햇살은 역시 따가웠지만 지대가 높아서 기온은 10도 안팍이었다.
ⓒ 안사을
 
사진으로 보이는 고즈넉한 만큼 우리의 밤이 평화롭지는 않았다. 중앙아시아에 와서 4일 만에 찾아온 고산증, 패스에서 만났던 한국인들이 스피커까지 동원해 만들어냈던 엄청난 소음, 다시 코치코르로 나갈 때 마땅한 차량이 없어서 망연자실했던 일 등등. 하지만 당황스러움은 추억으로 남았고 아름다운 풍경은 잔잔한 미소로 남았다.

이번 야영은 3박 4일로 계획해놓은 '알틴아라샨-알라쿨호수' 백패킹(배낭에 야영 짐을 넣고 등산 등을 하는 행위)를 위한 연습이기도 했다. 배낭에서 뭘 빼야 할지, 고산에서 뭘 조심해야 할지 등에 대한 것들이 피부로 와닿는 시간이었다.

*송쿨에서의 나머지 이야기, 다시 코치코르-촐폰아타-카라콜로 이동하여 출발한 알틴아라샨에서의 첫날밤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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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여행은 지난 7월 23일부터 8월 9일까지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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