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경제 뒤흔든 고금리 스트레스…불확실성 속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까지

명순영 매경이코노미 기자(msy@mk.co.kr) 2023. 10. 1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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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재를 악재로 막나…안갯속 거시경제

전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할 미국 금리가 안갯속에 싸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9월 통화 정책 회의에서 5.5%에 달하는 기준금리를 한동안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 같은 고금리 장기화 시그널에 국채 금리는 치솟았고 주가는 고꾸라졌다.

하지만 ‘악재를 악재로 막는’ 형국이 벌어졌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충돌이 ‘고금리 장기화’라는 피로감을 어느 정도 떨쳐낸 것. 중동 불안이라는 극한의 악재로 금융 불안이 커지면 연준이 강경 정책을 이어갈 수 없다는 기대감이 생긴 것이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거래되는 연방기금금리(미국 기준금리) 선물은 연준이 11월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0.25%포인트 금리 인상을 단행할 확률을 8%로 반영했다. 지난 9월 43%에서 급격히 떨어졌다. 여기에 “금리 인상을 자제해야 한다”는 미국 연은 총재들의 ‘비둘기’ 발언이 이어지며 고금리 불안감은 다소 진정되는 모양새다. 이런 논란에도 한 가지 확실한 점은 과거와 같은 초저금리 시대는 한동안 잊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금리를 더 올리지 않더라도 당분간 하락의 길로 방향을 전환할 가능성은 낮다. 지난해 레고 사태 이후 안정을 되찾던 채권 시장에 다시 긴장감이 돌고 있다는 점도 이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기업 재무팀도 이자비용을 줄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금리 인상이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를 보내며 국채 시장이 흔들렸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더 이상의 금리 인상은 어렵다는 ‘비둘기파’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AFP)
“미 채권 시장 대혼란, 끝나려면 멀었다.”

미국 국채 시장이 전례 없이 들썩인다. 그런데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아직 멀었다”고 선을 그었다. 장기채 금리가 계속 오를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필립 힐데브란트 블랙록 전략가는 4분기 투자 전망 보고서에서 “미국 채권 시장이 3년째 약세장을 겪고 있다”며 “그럼에도 투매는 끝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어 “꺾이지 않는 인플레이션, 고금리 장기화, 부채 증가 부담으로 채권 금리가 올라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월가에서는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5%까지 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ING는 최근 발간한 투자노트를 통해 10년물 국채 금리가 2007년 중반 이후 처음으로 5%에 닿을 것이라 예상했다. 채권왕 건들락이나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 등이 10년물 기준 5% 이상 금리를 우려하며 군중심리까지 더해졌다. 설상가상, 중국과 일본이 미 국채를 외면하며 금리는 상승세를 탔다.

이처럼 최근 글로벌 금융 시장은 ‘고금리’라는 단어에 무너졌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올릴 만큼 올렸다고 생각했는데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끝이 아니다’라는 신호를 강력하게 내보냈기 때문이다. 올해 한 차례 더 정책 금리를 인상하고, 내년에도 5%를 고수할 수 있다는 것. 이런 시그널은 미국 국채 금리 상승에 불을 지폈다.

물론 이 같은 분위기를 누그러뜨린 뜻밖의 사건이 있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분쟁이다.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중동에서 전쟁 위기가 증폭되자, ‘안전자산’인 미 국채로 투자금이 몰렸고 국채 금리 급락(가격 상승)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요약하면 ‘악재(고금리 장기화)를 더 극단의 악재(이-팔 전쟁)’로 막은 형국이다.

이에 일부 미국 연준 인사들은 추가 금리 인상이 쉽지 않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장기 금리가 계속 높아진다면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릴 필요성이 줄어들 수 있다(로리 로건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 “장기 국채 금리가 급등하며 경제에 부담이 되고 있다(필립 제퍼슨 연준 부의장)” “장기물 국채 금리가 오르며 금융 환경이 (기준금리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는 등 주요 인사들이 ‘비둘기파’ 대열에 합류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와의 전쟁은 금리 인상 기조를 누그러뜨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런 분석 속에 상승세를 탄 국채 금리도 전쟁 이후 떨어지기 시작했다. (EPA)
외국인 투자자, 원화 채권 외면

은행채 발행 제한 풀며 ‘쏠림’ 우려

하지만 한국은 예민하게 고금리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두 가지 악재(고금리 장기화·이-팔 전쟁)가 서로 완충 작용을 하는 게 아니라 더 큰 악재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금리 국면은 그대로 이어지고, 이-팔 전쟁으로 물가까지 급등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특히 한국 채권 시장은 고금리 장기화 흐름에 뒤흔들리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의 월별 원화채권 순매수액은 하반기 들어 최근 3개월 연속 9조원대를 밑돈다. 올해 2월부터 원화채권 순매수세를 보여온 외국인은 3월(12조9000억원), 4월(9조1000억원), 5월(17조6000억원), 6월(14조30000억원) 등 2분기까지 대량 순매수를 이어왔다. 그러나 7월(8조3000억원), 8월(8조7000억원), 9월(8조4000억원) 등 3분기 매수 강도가 약화했다.

외국인이 주로 투자하는 국고채와 통안증권의 경우 2분기 외국인 순매수액은 각각 21조2500억원, 11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국고채 순매수액은 서울 채권 시장이 외국인에게 개방된 이래 분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3분기 들어서며 외국인의 국고채 순매수액은 14조4000억원, 통안증권은 4조7000억원에 그쳤다. 2분기 대비 각각 32%, 58% 감소한 수준이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미국 국채 금리 급등으로 한국 국고채 시장이 상당한 약세 압력을 받는 가운데, 외국인과 같은 주요 매수 주체가 사라지면 시장은 더욱 흔들린다”고 말했다. 채권 시장에서 또 다른 불안 요소는 은행채와 공사채 등 우량물 발행이다. 금융당국은 4분기부터 만기 도래분의 125%였던 은행채 발행 제한을 풀었다. 은행채 발행 한도에 막혀 필요한 자금을 채우지 못한 은행들이 4%대 초반 높은 금리에 양도성예금증서(CD)를 발행하며 단기 자금 시장이 불안정한 양상을 보였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은행채 발행 한도 폐지는 단기 자금 시장이 빡빡한 상황에서 CD 발행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다만 채권 시장에서 초우량물인 은행채가 4분기에도 순발행을 이어갈 경우 자금 쏠림에 대한 우려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4분기(10~12월) 만기가 도래하는 은행채는 46조2900억원 수준이다. 여기에 미국 국채 금리 급등에 따라 미 국채와 동조화 현상을 보이는 국고채 금리가 크게 올랐다. 크레디트 스프레드(회사채·국고채 간 금리차)도 확대됐다. 크레디트 스프레드가 벌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이 회사채의 위험 부담을 크게 평가한다는 의미다. 안전자산인 국채 금리가 크게 오르면 비우량 회사채 투자 매력은 감소해 금리차가 확대된다. 고금리가 ‘뉴노멀’이 된 상황에서 기업들이 더 이상 자금 조달을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하면 회사채 시장 약세는 불가피하다.

정윤정 교보증권 애널리스트는 “기업들이 은행 대출을 통한 자금 조달을 선호하며 회사채 발행량은 감소했다. 다만 고금리 장기화 전망이 우세해 빠른 금리 하향 안정화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고 기업들이 자금 조달을 내년까지 이연시킬 유인이 줄어들었다. 어느 모로 보나 단기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은 환경”이라고 분석했다.

기업뿐 아니라 개인 대출자 근심도 깊어졌다. 고금리 추세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금융권에 이자 부담을 줄이라고 주문해왔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 회복 기대로 5대 은행 주담대 잔액이 2년 만에 최대폭으로 늘어나는 등 가계대출 증가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5대 은행의 지난 9월 말 가계대출 잔액은 682조3294억원으로 전월보다 1조5174억원 늘어 5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특히 주담대 잔액이 517조8588억원으로 한 달 만에 2조8591억원 늘어나 가계대출 증가세를 견인했다.

그러자 금융당국이 가계대출을 조이는 방향으로 선회하며 시중은행이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대출 금리 인상에 들어갔다. 일례로, KB국민은행은 10월 11일 주택담보대출 혼합형 금리를 0.1%포인트, 신규코픽스·신잔액코픽스 기준 변동금리(6개월 신규)를 0.2%포인트 인상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내려 보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0호 (2023.10.18~2023.10.2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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