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달러가 어느 정도 인기냐면

이혁진 2023. 10. 16.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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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탈북 설송아 기자의 <사회주의 시장풍경> 북토크

[이혁진 기자]

지난 13일 강남에서 한반도평화연구원과 더브릿지가 공동주관한 탈북민 설송아 작가의 <사회주의 시장풍경, 시산맥(2022)> 북토크 현장을 다녀왔다. 더브릿지는 탈북민(북향민)의 취업과 창업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사단법인이다.
 
 설송아 작가가 북토크에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 이혁진
 
평안남도 순천 출신 설 작가는 '고난의 행군' 시작 무렵인 1995년부터 자본주의에 관심을 가지고 장마당에서 15년을 보냈다. 30대 후반 해외투자를 위해 중국에 들어갔다가 2011년 5월 한국에 들어왔다. 설 작가는 지난해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원, 교수, 기자 등 다양한 직종에서 활동하고 있다.  
    
<사회주의 시장풍경>은 설 작가가 탈북 이후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 기자로 활동하면서 쓴 북한이야기를 한데 모아 출간한 것이다. 주로 북한 내부 소식통을 빌려 북한경제 현실과 사회상을 취재한 것이다.
     
책에서 인용되는 내부 소식통은 과연 누구일까. 그리고 이들이 전하는 정보는 믿을 만 한가. 이에 대해 작가는 "분단체제상 북한 내부를 취재하는 것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에 주로 친인척과 이동통신전화를 이용해 안정성을 담보하고 있다"면서 "여기에는 달러 송금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장마당에서 활동하기 전 그는 당과 기업소에서 8년간 현장소식을 전하는 통신원 기자로 활동했다. 북한은 통신원들을 기업소별로 양성하는데 설 작가가 데일리NK에서 활동하게 된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  
     
북한 장마당은 인민들의 '피플파워'를 상징   
  
책 제목이 시사하듯 이날 북토크에서는 북한의 대표적인 시장풍경인 '장마당'이 화제였다. 관이 아니라 인민 스스로 조성한 장마당 30년은 북한 내부에 흐르는 도도한 '피플파워'를 상징한다.  
    
작가는 실제 1996년에 3명을 고용해 사기업을 하면서 하루에 5만 윈을 벌었다고 했다. 당시 4급 교사 남편의 월급 국돈(북한돈) 3천8백 원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이에 북한 주민들은 온통 돈 버는 생각뿐이며 당과 수령에 충성하는 인간에서 자본주의 인간으로 변했다. 작가는 "고난의 행군이 장마당의 단초를 마련했으며 그 시절은 자신에게 '로또' 같은 기회였다"라고 말했다.
     
작가에 따르면 북한사회의 시장화, 즉 장마당의 등장은 여성이 경제주도권을 잡는 계기를 마련했다. 장마당 이전의 북한 여성들은 김일성과 남편이라는 두 수령을 모시는 것이 오랜 전통이었으며 특히 배급제롤 통해 세대주 남편의 권위에 복종해야만 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배급제가 끊어지면서 무직이던 여성들이 집안 살림을 살리기 위해 장마당으로 진출하면서 여성의 목소리도 커졌다. 이에 가부장 남편의 권위가 떨어지고 여성이 남편을 받들거나 공대하는 문화도 차츰 줄어들었다. 여성을 바라보는 가치관도 단순히 성적대상에서 동반자라는 인식으로 변했다. 이러한 변화는 김정은 시대에 들어 특히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설 작가는 북한에 지금 세 종류의 남자가 있다고 한다. 남성의 종래 역할이 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첫째 여전히 당에 충성하며 공장과 기업소에 출근하는 가부장적 남자, 두 번째 국영공장에서 인정받아 '8.3 노동자'로서 돈 벌어 가정을 지키는 남자, 마지막으로 아예 역할을 바꿔 아내를 철저히 외조하는 남성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중 세 번째 남편이 북한 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유형이다.
     
여기서 8.3 노동자는 김정일이 1984년 8월 3일 취한 조치로서 공장에서 폐휴자재로 인민소비품을 생산, 판매하는 일을 인정받은 노동자를 일컫는 것으로 과외 활동을 지칭한다. 8.3돈(직장에 출근하지 않기 위해 바치는 돈), 8.3 부부(불륜부부), 8.3당 생활(1년 치 당비를 한꺼번에 납부하고 당생활에서 빠지는 것) 등 여러 표현들이 생겨났다.
     
북한을 이해하는데 매우 긴요한 정보들

장마당 출현은 국돈의 효용이 떨어지고 대신 달러 등 외화 선호로 이어졌다. 아래는 달러화의 인기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평안남도 소식통에 따르면, 평양시에서 개인택시를 이용할 때 지불하는 화폐가 달러이면 정상적인 요금을 내지만 국돈을 내면 5천 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 외화가 시장에서 기본적인 유통화폐가 되면서 국돈을 외화로 환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비용이 5천 원이다."

이어 "택시요금을 외화로 받으라는 규정은 없지만 국돈 가치가 떨어지면서 자연히 택시요금은 달러가 기본이고 위안화로 지불하기도 한다. 택시를 이용하는 평양시민들도 달러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택시 이용 전에 달러로 바꾸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주의 시장풍경 101~102쪽 참조)   
   
장마당이 통제범위를 벗어나 궁극적으로 북한체제를 붕괴시킬 우려에 대해 그는 되레 정권이 체제유지에 장마당을 활용하고 있으며 돈주들도 공채 발행에 협조하는 등 당에 충성심을 보여주며 시장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사회는 장마당으로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로 변화할 것이라 전망했다.
     
플로어에서 북한을 사업파트너로 혹은 통일 이후 사업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질문이 있었다. 이에 설 작가는 여성들의 심리상담소가 성황을 이룰 것으로 전망했다. 북한에서 여성은 여전히 남편을 앞세우고 살아야 하며 혼자 사는 여성을 안 좋게 보는 사회통념이 강한데 사회가 급변하고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그만큼 갈등과 고민을 많이 상담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부동산투자와 관리도 유망한 분야로 추천했다.
 
 설송아 작가가 북토크에서 자신의 책 <사회주의시장풍경>을 소개하고 있다. 왼쪽은 사회를 맡은 전순영 숭실평화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 이혁진
책은 '아카이브' 가치로도 손색이 없다. 작가는 "북한 사회주의의 여러 모습을 모두 살아있는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며 작가의 사명감을 강조했다. 이날 북토크 말미에는 작가의 또 다른 책 <태양을 훔친 여자>이 잠깐 소개됐다. 이 책은 작가 자신의 장마당 경험을 살려 고착된 북한성분사회에 도전하는 여성을 그린 자전적 장편소설이다. 두 권의 책이 장르는 다르지만 북한경제의 현실과 장마당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설 작가는 2011년 남한으로 넘어와 지금까지 치열하게 살아왔다. 북한학 학위를 취득하고 여러 권의 책도 출간했다. 내년에는 그의 삶을 에세이로 출간할 계획이다. 그는 북에 있을 때 자신의 경험과 경력을 살려 남한 정착에 성공한 전형적인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체구는 작지만 그의 말과 동작은 크고 활기찼다. 자신의 의견과 주장에도 거침이 없었다.  
    
끝으로 9부에 걸쳐 보여주는 다양한 시장풍경은 5년 전의 북한사회를 취재분석한 것이지만 지금의 북한을 이해하는데도 매우 긴요한 생생한 정보들이다. 김정은 시대의 급변하는 북한 사정에 궁금하거나 연구자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그러나 일부 오탈자 등 편집상 오류가 발견되는 것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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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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