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한 한국 여성이 캐나다 시 예술위 수장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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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욱래 기자]
▲ 런던시를 움직이는 사람들과 함께 이은주(오른쪽 두번째)씨가 세미나에 참석한 Josh Morgan(왼쪽 세번째) 런던시장, Cheryl Finn(왼쪽 두번째) 런던관광공사 사장, Graham Henderson(맨 오른쪽) 런던상공회의소장 등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 이은주 |
한국에서 배우로 활동하다 캐나다 한 중견 도시의 공공단체 최고관리자로 활약 중인 한인이 있다.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이은주(40)씨는 런던시 예술위원회(London Art Council)의 최고관리자(Executive Director)로 오늘도 문화예술인 발굴에 여념이 없다.
그는 지난달 추진한 '런던시 아츠 라이브 거리공연 프로그램(London Arts Live)'에서 웨스턴대 박사과정 허선화 피아니스트와 수묵화로 유명한 최병관 작가 등 2명의 한인 예술가를 참여시켜 한국문화 전파에도 힘을 보탰다.
토론토에서 남서쪽으로 2시간 거리인 런던시는 문화와 교육이 발달한 도시로 '숲의 도시'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가졌다. 거주한인은 약 9천 명.
런던시청의 전문 협력기관인 런던예술위원회는 매년 150만 달러의 예산을 운용하며 300여명의 예술가를 관리·후원한다. 공공예술·예술교육·거리공연 사업 등을 통해 일자리도 창출하는 등 런던 지역의 문화와 예술 발전을 책임지는 단체다.
인턴에서 최고관리자까지... 계속된 새로운 도전이 이끈 기회
2012년 인턴으로 취직한 그가 근무 9년 만에, 그것도 40세에 불과한 나이에 CEO와 같은 최고관리자 직위까지 오른 비결은 무엇일까. 일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탐구정신, 그리고 무엇보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추진력이 지금의 그를 이끌었다.
"웨스턴대학교에서 문화예술 경영기획 과정 공부를 시작했을 때, 언어 장벽도 큰 시련이었지만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왕따를 당한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12명의 학생 중 아시아계는 나 혼자였다. 둘이 만날 땐 친한 친구처럼 대화하던 학우가 나의 성공적인 프리젠테이션으로 교수님이 극찬을 이어갈 때, 그의 썩은 미소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는 덧붙였다.
"캐나다에는 백인 주류사회와 비주류사회 간 보이지 않는 벽이 여전히 존재한다. 존중이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지만 물방울처럼 떨어져 존재하는 느낌이다. 나 자신도 물 위에 떠 있는 기름처럼 사회 중심에 동화되지 못한 주변인 같다고 느낄 때가 적지 않았다."
수많은 난관을 헤치고 해당 과정을 최고 성적으로 졸업한 이씨는 런던예술위원회에 인턴으로 취직하는데 성공했다. 길을 걷다 우연히 본 모집광고가 그의 인생을 바꿨다고.
▲ "새로운 도전, 두렵지 않아요" 한국에서 배우를 하다 캐나다로 이민해 공공단체 최고 수장의 직위까지 오른 이은주씨가 자신의 인생 철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 이은주 |
작년 겨울부터는 런던시의 대형 컨벤션센터인 'RBC 플레이스 런던(RBC Place London)'의 관리위원회(Governance Committee) 이사직에도 올라 활발히 활동 중이다. 런던 시장과 시의원, 시청 국장 등이 이사로 참여하는 이 위원회는 컨벤션 센터의 운영과 경영·회계 등 중요사업을 결정한다.
▲ 런던에서 펼친 행위 예술 이은주씨가 붓글씨로 한글을 쓰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
ⓒ 이은주 |
모든 이민 1세대가 겪는 것처럼 이씨도 영어 소통이 사회생활의 큰 장벽이었으나, '무대포 정신'으로 극복했다고 그는 말했다.
"어려서 외국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이민 전에도 영어 실력이 괜찮은 수준이라고 생각했지만 큰 오산이었다. 캐나다에 왔을 땐 영어실력이 마치 어린이로 돌아간 것처럼 굴욕의 연속이었다. 그 이후론 영어를 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을 일부러 만들었다."
"회의를 할 때는 사람들의 대화 패턴과 표현을 주의깊게 관찰, 기억했다가 연습하기를 반복했다. 영어는 문장 전체로 듣는 것은 도움이 안되고 단어하나를 음식을 씹듯이 의미를 이해하고 인식해야 한다."
한국에서 경성대학교 연극영화학부를 졸업한 그는 한국에서 캐네디언 남편을 만나 2009년 온주 런던으로 이주했다.
01학번으로 영화배우 조진웅 선배와 학교를 같이 다녔다는 그는 20여편의 연극과 영화 등에 출연해 문화예술 분야에 경험을 쌓았다. 캐나다에선 교회 공연 등에서 연출·기획·연기까지 1인3역을 해냈고, 런던한인회 등 한인행사의 사회나 나레이션 요청이 들어오면 기꺼이 봉사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2018년 뮤지엄 런던에서 한국의 사계절을 춤으로 표현한 퍼포먼스다.
그는 한국과 캐나다의 차이점을 설명하며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캐나다는 인권감수성과 공동체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법과 제도가 촘촘히 잘 구축된 사회이며 그 사회적 규범 안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매뉴얼대로 진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보다 나은 제도를 도입하거나 불필요한 제도를 개선할 때에는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단점이 있다."
"한국이 빠르게 변화하며 발전하는 사회이자 탁월한 대중문화·예술에 대한 감각으로 국제사회의 유행을 선도하는 장점이 있으나, 일제강점기와 전쟁, 군사독재 등 암울한 역사 속에 잉태된 불의한 잔재의 그늘이 아직 남아 있다. 인권 침해와 경시 문화, 부패한 리더십, 집단 이기주의 등이 한국 사회를 병들게 한다."
평생 근무할 수 있는 '꿈의 직장'에 있어 안주할 법도 한데, 그는 다음의 인생 계획조차도 새로운 도전으로 꽉 들어차 있었다.
"나는 직관에 의존한다. 내 삶이 시간적 프레임에 갇혀 움직이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민생활을 하다보면 경험과 지식이 많은 위인이나 주변인에게 의지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 역시 주관적 판단일 뿐, 절대적 인생 지침이 될 수 없다. 그냥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에 충분히 귀를 기울이면서 내 삶을 당당히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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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캐나다 한국일보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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