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LNG선 2차 수주 "덤핑이다" 주장, 진실은
HD현대중공업이 최근 카타르 신규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17척을 건조하는 가계약을 맺었다. 공식 계약까지 따내면 올 하반기 카타르의 2차 LNG프로젝트 수주 1호 조선사가 될 전망이다. 그런데 한화오션이 발끈해 문제를 제기했다. 가격 협상을 더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는 상황에서 너무 서둘러 싼 가격에 계약해 시장 질서를 흐렸다는 것이다. 카타르 LNG프로젝트의 또 다른 계약 당사자 삼성중공업도 계약 가격을 높일 기회를 놓쳤다고 평가했다. 12조원 규모 카타르 2차 발주를 앞두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HD현대重, 지난달 카타르와 LNG운반선 건조 MOA…시장 예상보다 선가 낮고 물량은 많아
지난달 27일 국영에너지 회사인 카타르에너지는 HD현대중공업과 17만4000㎡ 규모 LNG운반선 17척을 총 39억달러(약 5조2800억원)에 건조하는 합의각서(MOA)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선박 1척당 가격은 2억2900만달러(약 3100억원). 최근 신조선가 2억6500만달러(약 3550억원)와 비교하면 13.6% 낮고 시장에서 예상한 금액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영수 삼성증권 연구원은 "선가가 시장 예상보다 다소 낮은 수준"이라고 했다. 반면 물량은 시장 예상보다 7척 많다.
MOA는 공식 계약이 아닌 상호 합의된 사항을 확인하는 합의서로 계약 조건 등은 향후 달라질 수 있다. 서울 모처에서 열린 체결식엔 가삼현 HD한국조선해양 부회장과 알 카비 카타르 에너지담당 국무장관 겸 카타르에너지 최고경영자(CEO) 등이 참석했다.
2020년 100여척 슬롯예약 계약…작년 1차 프로젝트, 韓 54척·中 12척 수주
국내 조선 3사는 2020년 6월 카타르 국영석유사 QP(카타르 페트롤리엄)와 2027년까지 100척 이상의 LNG운반선 건조공간(슬롯) 예약 계약을 맺었다. 23조6000억원이 넘는 사상 최대 규모다. 수주 절벽에 코로나19까지 터지면서 힘든 시기를 보내던 조선업계에 '단비'였다. 세계 최대 LNG 생산국인 카타르는 2027년까지 LNG 연간 생산량을 기존 7700만t에서 1억2600만t로 확 늘릴 계획이다. LNG 생산량이 늘면, 실어 나를 운반선도 더 필요하다.
작년 시작한 1차 프로젝트에서 카타르는 한국과 중국 조선사에 총 66척의 LNG운반선을 발주했다. 국내 조선사 수주량은 54척이다. 한화오션 19척, 삼성중공업 18척, HD한국조선해양 17척이다. 카타르는 현재 2차 프로젝트를 위해 한국과 중국 조선사들과 구매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LNG운반선 약 40척(12조원) 발주가 예상된다.
한화오션·삼성중공업 "급할 필요 없어…가격 더 올릴 수 있었다"
한화오션은 국내 다른 조선사들에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는 첫 계약가격을 HD현대중공업이 지나치게 낮게 잡았다고 토로한다. 서두를 필요 없이 조선사들이 카타르 측과 2차 발주 계약 데드라인 막판까지 가격협상을 끌고 가면서 선가를 더 올릴 수 있었는데, 그 여지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건조 물량이 없으면 이해하지만, 현재 조선 3사 슬롯(독·배를 만드는 공간)은 다 찼고 카타르 입장에서도 러시아발 LNG 수급 문제, LNG프로젝트 등으로 LNG운반선을 무조건 확보해놔야 한다"고 했다. "공급자인 조선 3사가 급한 상황이 아니다"라는 설명이다. 이어 "최고선가를 찍은 신조선 가격까지 맞추진 못해도 유리한 협상이 가능했는데 조기에 마무리해 아쉽다"고 설명했다.
신조선가란 새로 건조되는 선박 가격을 말한다. 삼성중공업도 이번 HD현대중공업의 MOA 체결 선가는 매우 낮은 수주라는 입장이다. 장기간 미래를 내다보고 맺은 대규모 장기계약을 감안하더라도 신조선가(2억6500만달러)보다 3000만달러 이상 낮은 선가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삼성중공업은 경쟁사의 낮은 선가 합의로 가격 인상 협상 원동력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다.
글로벌 LNG 수요 증가로 LNG운반선 시장은 전례 없는 호황을 맞고 있다. 영국 해운 조사기관 클락슨리서치 자료를 보면 LNG운반선 신조선가는 올해 7월 2억6100만달러를 기록하며 1991년(2억6000만달러) 이후 최고 선가를 새로 썼다. 이어 올해 8월과 9월 각 2억6500만달러(약 3500억원)로 최고치를 경신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 8월 아프리카 소재 선사로부터 역대 최고 금액인 2억6500만달러를 받고 LNG운반선을 수주하기도 했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작년과 재작년보다 올해 전체 선박 발주량이 줄었는데 선가는 계속 오르고 있다"며 "수요가 감소하는데도 가격이 오르는 것은 조선사들이 일감을 이미 몇해 치 확보해 가격 협상에서 우위에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HD현대중공업 "대량 건조 디스카운트 발생…각사 내부 전략에 달린 것"
HD현대중공업은 신조선가를 맞추지 못한 이유를 대량 건조로 인한 디스카운트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일 설계를 통한 반복 건조 과정에서 자재 가격 등 비용 절감이 가능해 선가가 낮아진다"며 “대량 수주하는 다른 일반적인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최광식 다올투자증권 연구원도 “이번 계약으로 HD현대중공업이 반복 건조하는 배가 20여척에서 30척으로 늘었다. 계약선가가 낮은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수주를 따내는 시기와 계약금액은 각사 내부 전략과 영업 능력에 달려있다”고도 했다. 조선사마다 선가를 올릴 수 있는 상한선을 2020년 슬롯 계약 당시 일정 수준으로 정해놨기 때문에 그에 맞춰 선가를 정하는 것이지 저가 수주란 말은 틀렸다는 것이다.
작년 1차 프로젝트 때도 신조선가보다 낮지만 기존 계약선가 보다는 높은 가격으로 계약했다. 2020년 슬롯 계약 당시 조선 3사와 카타르는 LNG운반선 1척당 가격을 2019년 수준인 1억9000만달러로 정했다. 작년 2분기 1차 발주 시작 즈음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조선용 후판 가격이 폭등했고 LNG운반선 신조선가도 계속 올라 2억4000만달러대를 기록했다. 결국 국내 조선사들은 카타르와 지속적인 추가 협의를 거쳐 기존 계약선가에서 2억1500만달러로 13% 올렸다.
과거 저가 수주 경쟁과 달라…"재도약 위한 건전한 싸움"
최근 조선 3사의 수주 경쟁은 과거 저가 수주전과는 다른 양상이다. 국내 조선업체들은 2010년대 초반 시작된 수주 가뭄과 중국 조선사 저가 공세 속에서 일감 확보를 위해 ‘제 살 깎기’식 공격 영업을 벌였다. 선사에 경쟁적으로 가격을 깎아주면서 저가 계약을 따냈고 이는 장기적인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다.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조선업은 10여년 만에 슈퍼 사이클(초호황기)에 올라탔고 3~4년 치 일감을 확보했다. 독이 꽉 찼다. 선사들보다 가격 협상 측면에서 우위에 있다는 의미다. 시장에서는 올해 3분기 국내 조선 3사가 11년 만에 동시 흑자로 전환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카타르 수주전에 중국 조선사가 끼어 있으니 HD현대중공업이 가격을 더 올리기 힘든 점도 있었겠지만, 물가가 급등하는 동안 다른 제품에 비해 오르지 않은 품목 중 하나가 선박 가격”이라며 “가격을 더 받기 위해 국내 조선사들이 현재 벌이는 분쟁은 좋은 시기 재도약을 위한 건전한 싸움”이라고 했다.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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