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기업들 10년간 32조 풀었다…美조지아주는 어떻게 ‘K-제조’ 터전됐나

오현길 2023. 10. 16.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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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SKC 첫 진출 韓 기업과 인연
전기차-배터리 등 북미 생산 거점 부상
부지선정 지원·세제혜택로 투자 유치
인구 증가 등 지역 사회 성장으로 연결

한국에서 직항 비행기로 가장 최장 거리 도시는 바로 조지아주(州) 애틀랜타다. 북태평양과 미국 본토를 가로질러 가는데 길이만 1만2547㎞로 비행시간만 13시 50분이 걸리는 먼 지역이다. 미국 동남부에 자리한 조지아주는 그 별칭이 '피치 스테이트(Peach State)', 글자 그대로 '복숭아의 주'다. 품질 좋은 복숭아가 많이 자라 미국에서 이름을 날리면서 주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자동차 번호판에도 복숭아가 그려져 있을 정도다.

멀고도 먼 이 달콤한 복숭아의 고향을 우리는 조만간 'K-제조업의 홈그라운드'라 불러야 할 수도 있다. 전기차와 배터리, 태양광과 반도체 소재와 같은 우리 첨단산업 기업들이 북미 사업의 요충지로 잇따라 조지아주를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이 지난 10년간 조지아주에 투자한 금액만 230억달러, 한화로 약 32조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미국 전체 투자액 1560억달러의 15%에 육박한다. 투자 규모는 더 늘어날 예정이다. 현대차는 2025년까지 조지아주 최초 전기차 전용 제조시설에 55억달러를 투자한다. 또 SK온과 LG에너지솔루션은 각각 현대차와 6조5000억원, 2조6500억원을 투자해 배터리 합작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차우키 압달라 조지아공과대학교 연구담당 수석 부총장(왼쪽부터), 앙헬 카브레라 조지아공과대학교 총장, 소니 퍼듀 조지아주 공립대학 협의회 의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장재훈 현대자동차 사장, 호세 무뇨스 현대자동차 사장이 산학협력 양해각서 체결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현대자동차그룹)

복숭아 산지가 'K-제조'의 심장이 됐다

조지아주와 국내 기업의 인연이 처음 시작된 것은 1999년. SKC가 비디오테이프 공장(현재 PET필름 공장)을 조지아에 건설했다. 현재 SKC는 이곳에 반도체 글라스 기판 공장을 건설 중으로 연내 가동을 앞두고 있다. SKC와 반도체 글라스 기판 자회사 앱솔릭스는 조지아에 2억4000만달러(3700억원)를 투자했다.

한국 기업이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시점은 2009년 기아차 공장이 들어서고부터다. 부품소재의 현지 생산이 중요해지며 협력업체들도 동반 진출했고, 이어 금호타이어(2016년)나 현대모비스(2022년)처럼 대기업들도 잇따라 현지에 생산 시설을 갖추면서 현재 진출 기업 수는 140여개에 달한다.

특히 최근 조지아는 미국 내 한국 전기차와 배터리 생산의 핵심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 첨단 산업 대표 기업들이 대거 미국 동남부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조지아주 정부에서 소개하는 최근 전기차 산업 개발현황을 보면 SK온 배터리 공장을 포함해 배터리 소재 기업인 엔켐의 전해액 설비, 덕양산업의 배터리 모듈과 에너지 저장 시스템 설비 등이 포함됐다. 또 성일하이텍의 폐배터리 재활용 설비 투자까지 전기차와 배터리를 아우르는 공급망을 한국 기업들 손으로 만들고 있다. 조지아주는 전기차와 배터리 공급망을 완성하면 미국 전기차 산업의 허브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 조지아주 경제개발부는 지난 9월 20일(현지시간)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코리아 소사이어티 연례만찬에서 한국무역협회와 공동으로 밴 플리트 상을 받았다.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오른쪽)와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이 수상 후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한국무역협회 제공)

조지아주는 지난달 20일(현지시각) 한미관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벤 플리트상'을 받기도 했다. 밴 플리트상은 미8군 사령관으로 한국전쟁에 참여한 뒤 1957년 코리아소사이어티를 창립한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을 기리기 위해 1995년 제정됐다.

브라이언 캠프 조지아주지사는 "조지아와 한국 사이의 강력하고 지속적인 동반자 관계는 혁신과 노력이라는 공유된 가치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특히 지난 3년 동안 한국 기업은 다른 어떤 외국 직접투자보다 조지아에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평가했다.

10년 연속 '기업하기 좋은 주 1위'

조지아주 경제개발부(GDEcD)는 지난 3일 미국 투자입지 전문지 '에이리어 디벨롭먼트(Area Development)'가 선정하는 기업 하기 좋은 주에서 2014년 이후 10년 연속 종합순위 1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사업 비용과 경쟁적인 노동환경, 인력개발 프로그램, 사용 가능한 부동산, 주 정부 협조 정도 등 7개 항목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러한 이점에 조지아주는 미국 내 포춘 500대 기업의 본사가 세 번째로 많은 지역이 됐고, 그중에 18개 기업 본사가 주도(州都)인 애틀랜타에 있다.

이는 천혜의 환경에 더해 주 정부의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 때문이다. 조지아주 정부는 부지 선정에서부터 사업 허가, 기반시설 회사와 연계, 투자 인센티브 등을 패키지 형태로 제공한다.

조지아주 경제개발부(GDEcD)는 지난 3일(현지시간) 10년 동안의 사업 우수성으로 '에이리어 디벨롭먼트'지로부터 10년 연속 사업 부문 1위를 차지하는 전례 없는 대기록을 달성했다고 발표했다.(사진 조자이주 경제개발부)

대표적인 것이 신속한 부지 선정을 돕기 위해 '신속한 개발을 위한 준비(GRAD, Georgia Ready for Accelerated Development)' 프로그램이다.

기업이 원하는 시기에 맞춰 공장이나 사무실 설립이 가능한 산업용 용지 정보를 제공한다. 환경평가나 문화재·멸종위기 동식물 조사 등 부지 선정에 필수적인 조사를 사전에 실시하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로부터 최종 승인받은 부지를 제공하기 때문에 별도의 추가 조사가 필요 없다. 또 조지아주를 바둑판처럼 12개 구역으로 구분해 지역별 프로젝트 매니저를 배치해 진출 기업을 밀착 지원하기도 한다.

투자 유치를 위한 세금 감면 혜택도 매력적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세금 혜택으로 고용 세액공제와 우수 고용 세액공제를 지원하며, 지역 경제 발전과 관련해 조지아주 항만을 이용하는 기업이나 조지아에서 신제품 및 신규 서비스를 개발하는 기업에 별도 세액공제를 제공한다.

적극적인 기업 투자 유치는 지역 사회의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년간(2010~2020년) 조지아주 평균 인구 증가율은 10.6%로 미국 평균 인구 증가율인 7.4%를 앞섰다. 2021년 기준 최근 5년간 조지아주로 이동한 인구는 46만명에 달했다. 평균 연령은 36.4세로 미국 전체와 비교하면 4%나 젊다. 도시가 젊어지니 지역 사회는 활력이 넘친다. 인구가 줄고, 지방이 소멸하고 있는 한국에게 좋은 본보기다.

애틀랜타=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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