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붉은 비단에 행복 기원 자수·금박…조선의 웨딩드레스 '활옷'

성선해 2023. 10. 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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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혼례 때 새색시가 입는 예복을 활옷이라 합니다. 우리나라의 전통 웨딩드레스라 할 수 있죠. 우리 민족은 언제부터 신부가 결혼식에서 활옷을 입기 시작했을까요. 그 기원을 알 수 있는 전시 ‘활옷 만개(滿開): 조선왕실 여성 혼례복’(이하 '활옷 만개')이 서울시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9월 15일부터 열리고 있어요. 공주·옹주·군부인(왕자의 부인) 등 왕실 여성들의 활옷 9점을 포함한 관련 유물 총 110여 점을 만나기 위해 오수아·이유민 학생기자가 전시를 찾았죠. 조지현·이승희·박지영 학예연구사는 1부에서는 왕실 여성들의 의례복·혼례복과 그에 관한 왕실 문화를, 2부에서는 활옷의 제작 과정과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소장 활옷의 보존 처리 과정 등을 살펴볼 수 있다고 소개했어요.

전통 혼례 때 새색시가 입는 예복인 활옷은 본래 조선 왕실의 공주·옹주를 위해 제작된 혼례복이 민간으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활옷은 조선의 공주·옹주·군부인 등이 전통 혼례의 여러 절차 중 오늘날 결혼식에 해당하는 동뢰연에서 입었던 혼례복이에요. 왕실의 혼례복으로 '대홍단자겹장삼'을 준비했다는 『세조실록』의 기록을 통해 조선 전기부터 홍장삼을 입었음을 확인할 수 있죠. 수아 학생기자가 "활옷에 대한 자료를 찾아봤는데 홍장삼(紅長衫)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하더라고요. 홍장삼이 활옷의 다른 이름인가요"라고 질문했어요. "활옷이란 명칭은 근대의 국문소설·신문기사 등에서 등장하지만, 조선 왕실 기록에는 나타나진 않아요. 왕실에서는 장삼·홍장삼이란 표현을 썼습니다. 장삼은 우리 고유의 복식 전통을 계승한 옷으로 긴 저고리라는 뜻이에요."(조)

현대에 우리가 자주 접하는 서양식 웨딩드레스가 대부분 흰색인 것과 달리, 활옷은 붉은색 바탕에 청색·황색 등 여러 색깔이 쓰인 매우 화려한 형태가 특징이에요. 장삼 중에서도 홍장삼이 활옷의 대명사처럼 인식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귀한 대홍색(붉은빛) 비단 위에 행복을 기원하는 각종 길상무늬를 수놓았죠. 대홍색은 주로 왕실에서 사용했던 색이에요.

순조의 둘째 딸 복온공주의 활옷은 현재까지 전하는 활옷 중 유일하게 착용한 사람과 제작 시기가 밝혀진 사례다. 국립고궁박물관


미국 브루클린 박물관 소장 활옷을 유심히 살피던 유민 학생기자가 "활옷에 쓰인 여러 색에도 각자 의미가 있나요?"라고 궁금해했어요. 활옷을 비롯한 조선왕실 복식에 사용한 색들은 저마다 의미가 있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활옷의 몸통 부분에 해당하는 앞길·뒷길과 팔 부분인 소매의 겉감 바탕은 홍색이고, 안감은 청색인데요. 이러한 청홍의 대비는 양과 음, 즉 남녀의 결합을 뜻해요. 색깔뿐 아니라 활옷에 장식된 자수와 금박에도 각각 의미가 있죠.

박 학예연구사가 '활옷 만개'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유물 중 하나로 1830년 제작된 복온공주 홍장삼을 꼽았어요. 순조의 둘째 딸인 복온공주가 혼례에 착용했던 활옷인데요. 부마 김병주의 집안에서 대대로 잘 보관해왔기 때문에 현전하는 활옷 중 유일하게 제작 시기와 착용자가 명확하게 밝혀진 사례죠. 복온공주 활옷에는 모란·연꽃을 비롯한 다양한 화초를 가득 수놓았어요. 모란은 부귀를, 연밥을 품은 연꽃은 자손의 번창을 의미하죠. 또 장수를 의미하는 복숭아·영지, 부부의 화목을 의미하는 짝지어 날아다니는 새 등도 활옷에서 자주 보이는 자수 문양이에요. 궁중 자수는 왕실 소속 화원이 자수의 밑그림을 제작하고, 바느질·자수를 하는 장인인 침선장·침선비가 그 도안을 바탕으로 자수를 놓아 제작했죠. 복온공주의 활옷은 천연 염색의 자연스러운 빛깔이 담긴 여러 색실을 이용해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자수가 특징이에요.

조지현(맨 오른쪽) 학예연구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활옷의 개념·역사·제작과정과 손상된 활옷의 보존 과정 등을 설명했다.


활옷에는 자수 장식 외에도 금박으로 무늬를 찍는 부금(付金) 장식이 들어가기도 했어요. 현재까지 전하는 활옷 중 복온공주 홍장삼과 해외 기관 소장 활옷 두 점에서 원앙·봉황·문자무늬 등의 부금 장식이 발견됐죠. 일반적으로 부금은 옷을 다 지은 뒤 가장 마지막에 이뤄지는 공정인데요. 금색실로 무늬를 만드는 직금(織金)보다 내구성은 약하지만, 제작 방식이 비교적 수월하면서도 직금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죠.

복온공주 활옷의 화려한 표면을 살펴보던 수아 학생기자가 "하나의 활옷을 제작하려면 대략 얼마큼의 시간이 소요되나요. 활옷만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장인이 있었는지도 궁금해요"라고 말했어요. "하나의 활옷을 제작할 때 소요되는 시간을 알긴 어려워요. 다만 『세조실록』에 세조가 상의원에 당시 조카였던 구성군 이준이 결혼하니 신부를 위해 예복인 노의와 장삼을 만들라 명한 내용이 있어요. 왕실의 의복은 모두 상의원에서 만들었고, 재료의 조달·제작·공급에 다양한 관청이 관여했어요. 또 실 제작부터, 염색·빨래·옷감 손질·바느질·자수·금박 등 여러 분야를 담당하는 장인들이 세분됐죠. 즉, 활옷은 여러 전문가의 손길로 정성스레 만들어진 옷입니다."(조)

왕실에서 하나의 활옷이 제작되려면 상의원 등 여러 관청과 장인을 중심으로 재료 조달과 각 작업의 세분화 과정이 필요했다.


복식 규제가 엄격했던 조선에서 공주의 혼례복인 활옷은 원칙적으로는 민가에서 입을 수 없는 귀한 옷이에요. 하지만 조선시대 혼례에서는 자신의 신분보다 높은 예(禮)를 사용하여 존귀한 예식임을 보이는 '섭성(攝盛)'이란 풍습이 있었죠. 섭성에 따라 왕실의 일원이 아닌 백성들도 중요한 의례인 혼롓날만큼은 값비싼 장식을 착용하고, 높은 신분의 예복을 입을 수 있었죠. 여기에 점차 사치풍조까지 더해져, 공주의 활옷은 백성의 결혼 예복으로 자리 잡았어요.

하지만 엄연한 형태와 품질의 차이는 존재해요. 왕실에서 정해진 법식에 따라 최고의 재료와 기술로 제작된 공주의 활옷과는 달리, 민간의 활옷은 신분과 형편에 따라 그 형태와 품질이 제각기 달랐죠. 또한 제작이 까다롭고 값도 비싸서 마을의 관아나 혼인·장사 때 쓰는 물건을 빌려주던 가게인 세물전(貰物廛), 전통 혼례에서 신부의 단장 및 그 밖의 일을 곁에서 도와주던 수모(手母)를 중심으로 혼례용품을 대여하는 관습이 이어졌어요. 이로써 많은 이들이 활옷을 향유하게 됐지만, 각 활옷의 착용자가 누구인지 추정하기는 어렵게 됐죠.

소중 학생기자단이 이승희(맨 왼쪽)·박지영(맨 왼쪽에서 두 번째)·조지현(맨 오른쪽) 학예연구사와 함께 '조선시대 웨딩드레스' 활옷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알아봤다.

오늘날까지 전해져 온 활옷은 복온공주 홍장삼을 비롯해 국내 30여 점, 국외 20여 점이에요. '활옷 만개'에서는 미국 필드박물관, 브루클린박물관, 클리블랜드미술관,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을 비롯한 국외 소장 활옷 6점이 전시됐죠. 유민 학생기자가 "왜 우리나라 활옷이 해외 박물관에 소장돼 있나요"라고 궁금해했어요. 이 학예연구사가 "소장 경로를 보면 주로 조선이 문호를 개방한 후 유명한 수집가들이 구입한 경우가 많아요. 우리 눈에 아름다운 활옷은 외국인들 눈에도 아름다워 보였나 봐요. 예를 들어 아까 본 필드박물관 소장 활옷은 독일의 유명한 수집가인 움라우프 가문에서 구입한 것을 필드박물관에서 1899년에 재구입한 겁니다. 오랜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것이죠"라고 설명했어요.

오랫동안 여러 사람의 손길을 거친 활옷은 손상이나 변형이 일어난 경우가 많아요. 이런 경우 보존 처리를 하기도 합니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국외에 있는 우리 문화유산의 안전한 보존·관리를 위해 '국외문화재 보존·복원 및 활용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제2전시실에 전시된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 소장 활옷은 최근 이런 노력으로 되살아난 사례죠. 이 활옷은 2022년 10월 국내로 돌아와 5개월간 보존처리가 이뤄졌어요. 활옷 제작에 사용된 섬유·실 등 재료와 제작 방법을 꼼꼼히 확인해 표면 오염물·구김 제거와 손상직물 보강 등 보존 처리를 진행했죠. 그 과정도 전시돼 소중 학생기자단이 꼼꼼히 살펴봤습니다. 전시에 앞서 인기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멤버 RM이 해당 활옷 보존처리에 후원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어요.

이유민(왼쪽)·오수아 학생기자가 '활옷 만개' 전시에서 출발점은 왕실의 예복이었으나 조선 백성의 웨딩드레스로 변화한 활옷의 다양한 면모를 살폈다.


지금까지 왕실에서 만든 혼례복인 활옷이 어떻게 최근까지 민간에서 혼례복으로 사용될 수 있었는지, 화려한 활옷의 제작과정과 활옷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지를 알아봤어요. 활옷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활옷 만개'에서 만나보세요.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자부심은 물론, 활옷에 담긴 신부의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이 뿜어내는 좋은 기운까지 느낄 수 있을 거예요.

「 '활옷 만개: 조선왕실 여성 혼례복'

기간 12월 13일(수)까지

장소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수·토요일은 오후 9시까지), 1시간 전 입장 마감

관람료 무료

■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 우리나라 웨딩드레스, 활옷은 서양식 웨딩드레스와 달리 알록달록하고 선명한 색을 자랑해요. 또 모란·포도·복숭아·석류를 비롯한 각종 식물문과 사슴·소나무·학 등의 십장생문, 이성지합을 상징하는 나비 등 다양한 문양이 장식됐죠. 이렇게 활옷에 장식된 다양한 무늬는 각자 다른 뜻을 지니고 있어 더욱 특별하고 멋진 웨딩드레스인 것 같아요. '활옷 만개' 전시에서 복온공주의 활옷도 관람했어요. 주인을 알 수 있는 활옷은 복온공주의 홍장삼밖에 없다는 말에 왠지 더 특별하게 느껴졌죠. 그리고 활옷을 예전의 모습 그대로 깨끗하게 전시하기 위해 열심히 보존해 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우리나라 활옷의 전통과 아름다움을 깨달을 수 있는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활옷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 좋은 경험이 된 것 같아요.

오수아(경기도 하랑초 5) 학생기자

국립고궁박물관은 이번에 처음 방문했어요. 왕실 문화에 대해 알 수 있는 여러 유물이 전시된 곳이죠. 이번 취재에서는 고궁박물관에서 특별전시 중인 활옷에 대해 알아봤어요. 왕실에서는 계급에 따라 혼례에서 다른 예복을 입었으며, 활옷이라 부르지만 장삼·홍장삼이라는 이름이 있다는 것이 가장 신기했어요. 조지현 학예사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활옷을 보니 더욱 특별하게 보였어요. 다양한 색깔과 무늬를 가진 화려한 활옷들을 저도 입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죠. 또한 역사·의미 등을 알고 보니 활옷이 더욱 빛나는 것 같았습니다. 현재 활옷 여러 점이 수집가 등에 의해 해외 여러 박물관에서 소장 중이에요. 활옷의 디자인과 색깔 등이 다른 나라 사람도 감탄할 만큼 아름답다는 것이 자랑스러웠고, 그 활옷을 직접 볼 수 있어 정말 의미 있는 취재였어요. 해외 기관 소장 활옷들은 전시가 끝나면 다시 외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하는데 벌써 활옷들이 그리워지네요. 12월까지 특별전시 중인 활옷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만나보세요.

이유민(서울 대모초 4) 학생기자

글=성선해 기자 sung.sunhae@joongang.co.kr,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국립고궁박물관, 동행취재=오수아(경기도 하랑초 5)·이유민(서울 대모초 4)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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