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문 진심 합심] 켈리의 가을야구 데뷔전, 부담감을 지운 좋은 산만함

안희수 2023. 10. 16. 07: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늘 중요한 과제 발표를 앞두고 며칠 째 긴장하고 있는 여러분에게 당일 아침, 갑작스러운 집안일로 소란이 벌어진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당황스럽겠죠.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온 신경을 거기에 집중하는데 그걸 흩트려 놓으니까요. 잘 정돈되고 짜여진 상태와 모습으로 준비했는데 어수선해 지면서 방해받는 느낌일 겁니다. 계획했던 순서도 틀어지고 심리적으로 흔들립니다. 작은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 또한 느낍니다. 마음이 갈팡질팡할 겁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다들 한 번쯤 겪어 보셨죠. 어떻게 하셨나요. 그 때를 떠올리며 다음 이야기를 읽어 보시죠. 

메릴 켈리(Merrill Kelly)라는 투수가 한국 프로야구에 있었습니다.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에서 2015~2018년 4시즌을 뛰었습니다. 2019년 부터 메이저리그(MLB) 고향 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빅리그 기록이 없던 그는 한국 야구에서 실력을 쌓아 빅리그 데뷔에 성공합니다. '코리안 드림'의 대표적인 예 입니다.

켈리 선수가 앞서 말씀드린 그런 상황을 겪습니다. 지난 8일(한국시간) 켈리는 자신의 첫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경기에 나갑니다. 내셔널리그 디비전 시리즈(5전 3선승제)의 첫 번째 경기였습니다. 단기전에선 첫 판 승부가 전체 분위기를 좌우해 켈리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소속팀이 와일드카드 경기부터 치렀기에 다른 선발이 먼저 나갔고, 중요한 때 그의 차례가 왔습니다.

켈리 앞에 놓인 조건은 가혹합니다. 상대는 시즌 100승을 거둔 LA 다저스. 시즌 100타점을 넘긴 강타자도 4명이나 됩니다. 켈리의 팀은 이번 시즌 다저스를 상대로 5승 8패로 열세였습니다. 무엇보다 켈리 자신이 다저스에게 매우 약했습니다. 통산 16번을 만나 11패만 기록했습니다. 한 번도 승리투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켈리와 애리조나는 11-2로 크게 이깁니다. 켈리는 6과 3분의 1이닝 동안 3피안타·2볼넷·5삼진·무실점으로 상대를 완전히 틀어막고 포스트시즌 데뷔 첫 승을 거둡니다. 켈리는 1회 6점, 2회 3점을 뽑은 동료 타자들 도움을 받습니다. 다저스 선발 커쇼가 일찍 무너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켈리 역시 "9점 차 리드가 있어 좀 더 쉬웠다"라고 경기 후 인정합니다. 여기까진 싱거운 승부 같습니다. 그런데 이어진 그의 인터뷰가 재미있습니다.

"사실 오늘 아침 아버지가 LA로 오는 비행기를 놓쳤다. 내가 서둘러 그것부터 해결해야 했다. 그때는 좀 짜증이 났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좀 좋은 산만함(good distraction)이었던 것 같다. 경기 때 가능한 침착하게 하려고 했다. 잘 해낸 것 같다. (방송 카메라를 응시하며) 아버지, 공항에 일찍 나오지 않으셨던 게 고마워요."

'좋은 산만함'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여러 전문가들께 물었습니다. "경기에 몰두해 크게 긴장했는데 아버지 일로 경기라는 더 큰 이슈를 잠시 잊은 것 같다"라고 해석하네요. 마치 잔불을 놓아 큰불을 잡는 것이라고 할까요. 

켈리 선수는 본인 루틴에 엄격한 스타일이라고 합니다. 한국서도 정해진 대로 안되면 짜증을 내는, 특히 선발 당일에는 정도가 심했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오히려 이번 해프닝에서 큰 깨달음을 얻은 듯 합니다. 곤란했던 상황이 지난 뒤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깨달음을 찾아내는 켈리 선수의 성찰, 자기인식 능력도 돋보입니다.

산만하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습니다. 관심과 호기심이 다양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걱정, 불안을 관리하는 방법으로 산만함을 전략적으로 멘털 관리에 이용하기도 합니다. 현재 복잡하고 부정적인 감정에 쏠리는 에너지를 다른 대상으로 돌려놓아 마음과 몸이 진정할 시간을 주는 겁니다. 계속 고민하고 집중한다고 해도 주의력에는 한계가 있기에 근육을 풀듯 마음도 이완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걷기와 명상, 음악이나 영화 감상, 게임 등 놀이에 몰입, 가족 모임 등이 좋은 산만함의 방법입니다. 몰입의 방향을 전환시켜 줍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불안하고 걱정이 커진다면 잠시 멈춰도 괜찮습니다. 숨도 골라 보고, 엉뚱한 생각을 해보면서 말이죠. 마음이 놓이는 순간, 영감이 번득일지 모릅니다.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 김종문 coachjmoon 지메일

김종문은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2011~2021년 NC 다이노스 야구단 프런트로 활동했다. 2018년 말 '꼴찌'팀 단장을 맡아 2년 뒤 창단 첫 우승팀으로 이끌었다. 현재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KPC)다.

Copyright © 일간스포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