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장 3명 억울하게 만든 검찰 특수활동비
3년 5개월여의 끈질긴 추적. 검찰 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 등에 대한 정보공개소송을 벌여온 하승수 변호사의 '추적기'를 가감없이 전합니다. <편집자말>
[하승수]
▲ 국정감사 증인 선서하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2017년 10월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검 및 산하 지검ㆍ지청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석해 선서를 하고 있다. |
ⓒ 유성호 |
2017년 가을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을 맡고 있던 시절, 검찰은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에 대한 수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 전직 국가정보원장 3명이 구속되었고, 3명 모두 실형을 선고받는다. 2021년 7월 8일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확정된 형은 남재준 징역 1년 6개월, 이병기 징역 3년, 이병호 징역 3년 6개월이었다.
전임 국정원장 3명이 감옥에 가게 된 이유
전임 국정원장 3명이 감옥으로 가게 된 사안은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청와대에 상납한 사안 때문이었다.
그러나 재판과정에서 전임 국정원장들은 청와대에 전달된 돈도 결국 국정운영을 위해 사용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원장들이 개인적으로 유용한 것은 아니고, 국정운영을 위해서 쓰인 것은 맞다는 취지의 주장이었다. 업무상 횡령이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가법')'상 국고손실죄로 처벌받는 것을 피하려는 주장이었다.
특히 특가법상 국고손실죄는 손실액이 1억 이상이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 5억 이상이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게 되어 있는 중대범죄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여기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쓴 것이다.
그러나 전임 국정원장들의 주장은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설사 국정운영을 위해서 쓰였다고 해도 업무상 횡령이고 국고손실죄가 성립한다고 본 것이다. 왜 그럴까?
▲ 2017년 11월 '국고손실' 등의 혐의로 검찰이 발부한 구속영장 실질 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하는 남재준,이병호, 이병기 전 국정원장 (왼쪽부터) |
ⓒ 최윤석 |
법원은 '특수활동비'라고 하는 엄격하게 용도가 정해진 국민세금을 다른 용도에 사용하면 그 자체로 '업무상 횡령'이 되고, 그 액수가 1억 원 이상이면 특가법상 국고손실죄가 성립된다고 보았다.
물론 이것은 법원의 판단이기도 하고, 전임 국정원장들을 기소한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찰의 논리이기도 했을 것이다.
정해진 용도에서 벗어나서 사용하면 업무상 횡령이나 국고손실죄가 성립된다는 법원의 판단을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이렇다. 이 논리가 검찰 특수활동비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법원은 특수활동비는 용도가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는 예산항목이라고 보았다. 즉 "특수활동비는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 활동 등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건 수사 , 정보 수집 , 각종 조사활동 등을 위해 타 비목으로는 원활한 업무수행이 곤란한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편성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 특수활동비는 특수활동 실제 수행자에게 필요시기에 따라 지급하여야 하는 등 특수활동비의 사용은 해당 기관의 목적 범위 내에서 엄격히 사용되어야 한다"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타 비목으로는 원활한 업무수행이 곤란한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최소한의 범위내에서", "실제수행자에게"같은 표현들이다. 그만큼 특수활동비는 아무렇게나 쓸 수없다는 것이다. 특수활동비는 현금지급이라는 예외를 인정하는 돈인 만큼, 이런 제한을 엄격하게 두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이렇게 정해진 용도에서 벗어나는 것은 업무상 횡령과 국고손실죄가 성립한다고 본 것이다. 즉 특수활동비를 그 용도와 사용목적에서 벗어나 위법하게 사용한 것 자체로 업무상 횡령죄의 구성요건인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하였고, 설사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업무상횡령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특수활동비를 용도와 사용목적에서 벗어나 사용하는 것은 위탁의 취지 및 위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위탁자인 국가에게 손해를 가하는 것이므로 국고손실죄도 성립한다는 것이다(서울고등법원 2021. 1. 14. 선고 2019노2678 판결. 대법원에서 확정됨).
▲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검찰 깃발. |
ⓒ 연합뉴스 |
위와 같은 법리는 국정원 특활비 뿐만 아니라 검찰 특활비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드러난 검찰 특활비 오·용 사례 중 업무상 횡령이나 국고손실죄에 해당되는 것들은 어디까지일까?
우선 공기청정기 렌탈비와 기념사진비용(광주지검 장흥지청), 휴대폰 요금(춘천지검), 국정감사 격려금(인천지검 부천지청)으로 사용된 것은 업무상 횡령이 성립될 수 있다. 이 경우들은 기밀이 요구되는 수사활동에 쓴 것으로 도저히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비교적 소액이더라도 '업무상 횡령'에 해당하는 것이 맞다.
일부 일선검찰청에서 '회식비'나 '경조사비'로 썼다는 진술도 나오는데, 이것 역시 업무상 횡령에 해당한다. '회식'이나 '경조사'가 '기밀이 요구되는 수사활동'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수사를 하지 않는 비수사부서에 지급된 특활비도 업무상 횡령으로 볼 수 있다. 수사를 직접 맡고 있지 않은 부서(공판, 집행, 총무 등 업무)가 '기밀이 요구되는 수사'에 참여하면서 그에 소요되는 돈을 썼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금액이 큰 건들도 있다. 2017년 9월~12월 사이에 대검찰청에서 집행된 특수활동비 2억원 가량에 대한 영수증이 없는 상태이다. 지검, 지청에도 영수증이 없거나 집행내역 장부와 안 맞는 경우들이 있다. 이런 부분은 사용용도가 해명되지 않는다면 업무상 횡령 뿐만아니라 국고손실죄에 해당할 수 있다. 수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명절떡값', '연말에 몰아쓰기'도 업무상 횡령과 국고손실죄에 해당할 수 있다. 명절이나 연말을 앞두고 그냥 돈을 나눠가진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명절과 연말에 기밀수사가 몰린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또한 특수활동비는 '기밀이 요구되는 수사'에 직접 사용하게 되어 있는데, 여러 부서에게 골고루 나눠준 것은 특수활동비의 용도에 맞는 지출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명절이나 연말도 아닌데 일상적으로 일정금액을 부서에 나눠준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도 업무상 횡령이 될 수 있다.
일부 일선검찰청에서 드러난 '퇴임(이임)전 특활비 몰아쓰기'도 업무상 횡령과 국고손실죄에 해당할 수 있다. 퇴임(이임)하면서 자신이 관리하고 있던 특활비를 선심쓰듯이 부하검사와 직원들에게 나눠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특별검사 도입 불가피
이렇게 세금 오·남용 사례들을 나열하다 보니, 한숨이 나온다. 검찰은 특수활동비 자료를 공개하면서, 집행명목이나 수령인성명을 가리고 공개했다. 그래서 극히 제한된 정보에만 접근할 수 있었는데도, 이 정도의 오·남용 사례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 사례들도 '빙산의 일각의 일각'에 불과한 것이다. 전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면, 어마어마한 오·남용사례들이 적발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사례들만 봐도, 특수활동비를 '특수활동'에 쓴 것이 아니라, 마구잡이로 써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검찰총장을 포함한 고위 검사들은 이렇게 돈을 엉터리로 쓰면서도, 자료가 공개될 수 있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3년 5개월의 행정소송을 통해서 문제가 드러났다.
그런데 검찰이라고 해서 수사도 받지 않는다면. '법 앞의 평등'이라는 헌법원칙이 완전히 깨지게 된다. 전직 국정원장들은 실형을 살았는데, 특수활동비를 엉터리로 쓴 검사들은 무사하다면, 어떻게 법치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
시민단체들과 언론이 소송과 검증을 통해서 이 정도의 진상을 밝혀냈다면, 이제는 국회가 나서서 특별검사를 도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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