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M선 만원도 못뽑는 장애인…"차별 맞다" 눈물의 항소 결말
법원에서 한정후견심판을 받은 정신지체 장애인이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등 비대면 거래를 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것은 “장애인 차별”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16일 정신지체장애인 18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장애인차별행위중지 및 손해배상청구에 대해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최근 확정했다고 밝혔다.
만 원 찾는데도 통장·인감…“과도한 규제”
원고 18명은 2018년 가정법원에서 한정후견심판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의 후견 조건 중에는 30일간 합쳐 300만원 넘는 예금을 인출하거나 이체하려면 법원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100만원~300만원 거래를 하려면 후견인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있다. 후견을 받는 사람이 혼자서 거래할 수 있는 금액은 30일간 합쳐 100만원 미만으로 제한돼있다.
그러나 당시 우체국 규정은 이것보다 더 빡빡했다. 거래액이 100만원~300만원인 경우 한정후견인이 꼭 동행해 창구에서 거래해야 하고, 한정후견인의 동의서를 들고 혼자 창구를 방문하는 것만으로는 거래를 허용하지 않았다. 또 30일간 100만원 미만의 금액을 이체하거나 인출하려고 해도, 통장‧인감을 가지고 은행창구에 직접 가야만 하고 ATM으로는 만 원도 뽑을 수 없도록 했다. 비대면으로 실시간 이체가 이뤄지는 체크카드도 사용할 수 없었다.
원고들은 “우체국의 규정은 한정후견심판에서 제한한 범위를 초과해 정당한 이유 없이 권리를 제한해,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정사업본부는 “질병이나 고령 등 모든 이유로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는 규정”이기 때문에 차별이 아니라고 맞섰다. “설령 차별행위가 맞더라도, 금융거래 보호를 위해 피한정후견인의 동의 의사를 명확하게 확인할 가중된 주의의무가 있어서” 만든 규정이라는 이유도 댔다.
3심 모두 “차별 맞다”…규정은 1심 선고 뒤 수정
1심은 “차별행위는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없고,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허용되지만 그 정도도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며 “장애인이 아닌 사람과 동등하지 않은 수준의 편익을 제공하는 규정이고, ‘동의’가 필요한 100만원 이상 거래에 후견인이 꼭 ‘동행’하게 한 것도 한정후견심판으로 제한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밝혔다.
1심 법원은 6개월 이내에 ‘100만원 미만 비대면 거래 금지’ ‘100만원 이상 거래 동행 요구’ 를 중단하고 시스템을 개선하라고 명령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이를 받아들여, 1심 판결 이후인 2020년 6월 부터 피한정후견인이 100만원 미만 거래에서는 현금자동지급기나 ATM기, 체크카드를 이용한 거래를 할 수 있고, 100만원 이상은 한정후견인의 동의서를 지참하면 창구 단독거래가 가능하게 됐다. 그러면서 원고 1인당 5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도 했다.
원고들은 소송을 계속했다. 법무법인 원곡 최정규 변호사는 “우정사업본부 측에서 규정을 개선하면서도 ‘차별행위는 아니었다’는 주장을 유지했기 때문에 ‘차별행위가 맞다’는 걸 확인받고 싶었다”며 “모든 시중 금융기관이 장애인 차별행위를 하지 않도록, 금융위나 금감위 등 국가기관이 ‘후견 종류별 금융업무 가능범위’에 관한 매뉴얼을 만들게 해달라는 요구도 계속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2심은 “차별행위가 맞다”고 판단하면서도 위자료를 1인당 20만원으로 더 줄였다. 거래한도액 산정에 다른 기관의 거래금액도 포함하는지 명확하지 않아 우정사업본부가 기존과 같은 제한규정을 둔 것이고, 예금거래 방식은 원칙적으로 금융기관이 자율적으로 정할 사안이라는 점 등이 반영됐다. 또 1심 판결 이후 우정사업본부의 차별행위가 상당부분 개선된 점도 감안한 결정이었다. 대법원도 “피한정후견인을 보호하기 위하여 어떤 조치나 제한이 필요한지는 가정법원이 판단하는 것이지, 상태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우정사업본부가 임의로 제한할 근거를 찾을 수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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