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와 대피? 갈 곳은 가자 거리뿐…여긴 가장 큰 야외 감옥"
" '펑'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병원 앞에 세운 구급차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죠. 폭격에 다친 이들을 태우고 있었는데, 형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이어지는 폭격에 수술하고 있던 의료진이 서둘러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게 바로 재앙이 아닌가요? "
‘세상에서 가장 큰 야외 감옥’ 가자지구에서 인도주의란 사명감 하나로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MSF)' 활동가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 상황에 절규했다.
앞서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이스라엘군은 일주일 넘게 하마스가 숨어있는 가자지구에 폭탄 6000발 이상을 퍼부었다. 폭탄이 터지는 소리,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 사람들이 울부짓는 소리 등 아비규환 현장 한복판에 있는 MSF 활동가들은 "이 엄청난 고통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가자지구에 있는 MSF 활동가들을 지난 11~12일 서면을 통해 인터뷰했다. 참혹한 가자지구 상황을 전하기 위해 한 줄의 소식이라도 전해주던 이들의 연락은 지난 13일 끊겼다. 이스라엘 국방부가 가자시티 등 가자지구 북부에 있는 팔레스타인 주민 110만명에게 남부 지역으로 대피하라고 통보하는 등 상황이 긴박해졌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주선했던 MSF 한국사무소 관계자는 "환자와 인력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MSF는 가자지구에서 약 300명의 활동가들과 함께 진료소를 운영하고 알 아우다 병원 등 3개의 병원을 지원하고 있다. MSF에 따르면 지난 2007년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한 이후 16년째 사방이 봉쇄되면서 의료시설이 이미 매우 열악한 상태였는데, 이스라엘 정부에서 식량·물·전기 등을 끊으면서 불능 상태로 치닫고 있다.
양측 분쟁이 일어난지 9일째인 15일 현재 가자지구 사망자는 2329명, 부상자는 9714명이다. 이스라엘 지상군까지 곧 투입될 예정이라 사상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의료 코디네이터인 다윈 디아즈는 "마취제와 진통제가 고갈되고 있다"며 "응급용으로 비축해두었던 2개월치 물자를 알 아우다 병원에 보냈는데, 3일 만에 3주치를 썼다"고 전했다. 이어 "공습으로 의료시설과 물자 파괴가 너무 심해서 그 늘어나는 피해 규모를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팔레스타인 현장을 총괄하는 레오 칸은 "여력이 닿는데까지 수술하려고 하지만, 물자도 전기도 고갈되고 있다"며 "어제 집 바로 옆에 폭탄이 떨어져 전신에 화상을 입은 13세 소년이 왔는데 치료가 어려워 마음이 힘들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전력이 끊기면 병원은 영안실로 변할 위험이 크다고 우려했다. 병원의 신생아 인큐베이터, 신장 투석기 등을 중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가자시티 의료진과 미처 대피를 못 한 주민들은 알 쿠두스 병원에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병원도 이스라엘군으로부터 모두 비우라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에 안전하진 않다.
의료진도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가자지구 현장을 책임지는 마티아스 켄네스는 "파편에 다치고 화상을 입은 사람들이 계속 밀려와 하루에 50명 이상을 밤낮으로 치료하고 있다"며 "병원은 과부화 상태고 우리도 지쳐있다"고 전했다.
생존을 위협 받는 사람들에게 의료 지원을 하겠다는 사명감으로 가자지구에 왔지만, 이제 활동가들의 생존도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됐다. 켄네스는 "이스라엘군 전투기가 구역별로 거기 전체를 파괴하고 있다. 숨을 곳도, 숨 돌릴 시간도 없다"면서 "가자지구에 있는 활동가 일부는 가족을 잃었다. 매일 병원 등 일터로 나갈 때마다 가족을 다시 볼 수 있을지 확신할 수가 없다"고 했다.
디아즈는 "양측 분쟁이 일어났던 2014년(50일 전쟁), 2021년(11일 전쟁)에 가자지구에서 수천명이 사망했는데, 이번엔 벌써 그 숫자를 넘어섰다"면서 "당시와 고통을 비교하는 건 매우 어렵지만, 지금의 고통은 정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고 털어놨다.
칸은 "가자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공포에 질렸다"면서 "이미 여러번 전쟁을 겪으면서 강인해진 사람들인데도, 이번은 다르다고 한다. 언제 어떻게 이 상황이 종료될지 몰라 굉장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민간인은 적이 아니다"며 계속 대피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 대피 문자가 와도 가자지구에 있는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 칸은 "한밤중에 대피 문자를 받으며 아이들을 깨워서 아무것도 못 챙기고 집을 떠난다. 그런데 사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한다. 그저 폭탄들이 떨어지는 바깥에 나와있을 뿐"이라고 했다.
디아즈는 가자지구를 동서남북이 모두 막힌 '야외 감옥'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스라엘 영토와 맞닿은 북쪽은 폐쇄됐고, 이집트로 나갈 수 있는 남쪽과 이스라엘군이 진을 치고 있는 동쪽은 계속 폭격해 갈 수가 없다. 그리고 서쪽은 지중해"라면서 "우리가 대피할 곳은 없다"고 했다.
MSF는 무차별 유혈사태를 즉각 중단하고 필수 인도주의적 물품을 공급하고, 안전한 통로를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사방이 막힌, 220만명이 있는 가자지구에 무차별 폭격을 가하고 지상군을 투입하는 건, '집단 형벌'"이라면서 "부디 더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지 말라"고 당부했다.
■ 가자지구는...
「 가자지구는 이스라엘과 지중해 사이에 위치하며, 남쪽으론 이집트와 짧게 국경을 맞대고 있다. 직사각형으로 생긴 좁은 지역으로 면적은 약 365㎢. 세종시(465㎢)보다 조금 작다. 약 220만명이 거주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 중 하나로 꼽힌다. 그중 약 170만명이 1948년 1차 중동전쟁 때 발생한 팔레스타인 난민과 그 자손이다.
원래 이집트가 점령했지만 1967년 3차 중동전쟁 때 이스라엘 수중에 들어갔다. 지난 2005년 '중동 평화 로드맵'에 따라 이스라엘군과 유대인 정착촌을 철수시켰다. 그런데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대승을 거두고 이듬해부터 가자지구를 지배하고 있다.
이후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안보상의 이유로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사람과 물품 이동을 제한해 왔다. 이로 인해 하마스는 로켓포를 쏘고, 이스라엘은 공습 등으로 맞서면서 분쟁이 이어졌다.
그동안 가자지구는 인도적 위기가 고조됐다. 이스라엘로부터 전기·물·식량·연료 등을 제한적으로 공급받으면서 혹독한 생활을 하고 있다. 매일 정전이 발생해 촛불로 생활하고, 대다수가 깨끗한 물을 사용하지 못한다. 약 80%가 국제 원조에 의존하고 있다. 농·어업은 이스라엘의 제한으로 자급자족이 어렵다. 의료용품과 장비 부족으로 치료도 제대로 받을 수 없다.
이스라엘 공격으로 건물은 수시로 파손되지만, 시멘트·철근 유통도 제한되면서 심각한 주택난에 시달리고 있다. 한 팔레스타인 남성은 30㎡(9평) 침실에서 26명 식구와 지낸다고 했다.
합계 출산율은 3명이 넘어 인구증가율이 높다. 인구 60%가 25세 미만이다. 실업률은 45%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특히 중등학교 졸업장이나 대학 학위를 소지한 19~29세 청년실업률은 약 70%에 달한다.
」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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