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론 분열 속, 동맹간 정보전 금 간 이스라엘…"한국도 아찔"

이근평, 정영교 2023. 10. 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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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정보기관으로 꼽히는 이스라엘의 모사드가 예측조차 하지 못한 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에 뚫린 건 한국으로선 강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괴뢰 타도'를 국시로 내건 북한 위협을 마주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내부 정쟁, 동맹과의 갈등으로 스스로 안보의 빈틈을 허용했다는 점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지적이다.

지난 7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무장대원들이 크파르 아자 키부츠에서 인질로 잡은 이스라엘 민간인을 가자 지구로 옮기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스라엘의 국론 분열이 정점에 달한 건 지난 3월 사법개혁을 둘러싼 시위에서였다. 3개월째 이어져온 반정부 시위 와중에 사법 개혁에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요아트 갈란트 국방장관을 전격 해임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스라엘 150여 지역에서 최대 20만여 명의 국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하마스가 공격의 틈만 노리던 시기에 이스라엘에선 국방 수장의 공백 사태로 안보 위기가 빚어진 것이다. 갈란트 장관은 "네타냐후 총리의 사법개혁이 우리 사회의 균열을 증가시키고 군대의 혼란을 야기해 이스라엘 안보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외쳤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안보의 정쟁화는 한국 사회에서도 결코 낯선 풍경이 아니다. 국회에선 야당 주도로 지난해 9월 대통령 순방 외교를 문제 삼아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처리했고, 최근에는 해병대 채 상병 순직과 항명 사태, 홍범도 흉상 이전 논란 등을 둘러싸고 국방부 장관이 탄핵될 위기를 맞았던 적이 있다.

군 관계자는 "정부·여당과 야당에서 국방 수장 공백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며 "북한 핵·미사일 고도화는 물론 국지도발 가능성이 거론되는 엄중한 안보 상황에서 그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아찔할 뻔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11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열린 ‘사법부 무력화’ 저항 시위 참여자들이 이스라엘 국기를 펼쳐 들고 있다. 시위자들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사법 개혁안이 독재로 이어질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시위 주최 측은 이날 이스라엘 95개 지역에서 이스라엘 역대 최대 규모인 약 50만 명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로이터, 연합뉴스

수많은 국민의 희생으로 이어진 이스라엘의 실패는 안보 이익을 공유하는 동맹과의 균열이 어떤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2015년 체결된 미국과 이란의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놓고 이스라엘은 수년간 미국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해왔다.

트럼프 행정부가 파기했던 합의를 바이든 행정부에서 복원하려 하자 이스라엘은 2021년 이란 정찰선 등을 공격하면서 행동에 나섰다. 나프탈리 베네트 전 이스라엘 총리는 중동의 폭력사태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미국을 압박하기도 했다.

이 무렵부터 미·이스라엘 간 정보 공유가 줄어들었다는 게 외신의 분석이다. 이스라엘은 미국으로부터 광범위한 도·감청 정보 및 위성 정찰 정보를, 미국은 이스라엘로부터 휴민트(HUMINT) 정보를 각각 주고 받아왔는데 이 같은 공유가 양국 갈등 때문에 활발히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미 언론 NBC는 미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미국은 하마스 움직임을 추적하지 않았다"며 "이스라엘이 공격 임박 사실을 알았다 하더라도 이를 미국과 공유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차히 하네그비 이스라엘 국가안보보좌관도 지난 13일(현지시간) "정보를 평가하는 모든 사람들의 실수"라고 정보 실패를 인정했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지난 7일(현지시간) 로켓 7000발을 쏘고 육·해·공 전투원을 투입해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했다. 이스라엘군은 즉각 보복공격을 결행해 가자지구 하마스 관련 시설을 공습했다. 사진은 이스라엘군 폭격으로 가자시티 고층건물이 화염에 휩싸인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아무리 조약으로 맺어진 동맹이라 해도 정보·첩보 공유의 양과 질은 관계의 부침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냉정한 현실을 한국으로선 다시 새길 수밖에 없다. 역대 한국 정부가 모두 한·미 동맹을 외교의 근간에 둔다고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동맹을 당연시하며 다른 외교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처럼 활용하거나 후순위에 둔 사례들도 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은 하마스라는 외부의 적을 대비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도 모자를 판에 내부의 위험 요소에 신음했고, 하마스의 기만술이 성공할 틈새를 스스로 내보였다. 이스라엘의 실패가 한국 사회에도 적잖은 울림을 지닌다는 지적이 군과 정보당국 안팎에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은 "정보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라며 "일치단결하는 사회 분위기가 분열로 이어지면서 정보기관이 정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외부에서 어떤 시그널이 와도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정보 실패를 불러왔다"고 평가했다.

이스라엘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연말 예정된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를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국정원 개혁 필요성에는 대다수 국민이 공감하지만, 대공수사권 폐지는 충분한 공론화도 없이 2020년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반대 의견은 무시한 채 과반 의석을 이용해 밀어붙인 결과였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이 시작된 지 닷새째인 11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남부 스데로트에서 하마스 공격으로 폐허가 된 경찰서 건물의 모습. 연합뉴스

국내 정치적 요인을 우선 반영해 대북 정보 수집 능력을 스스로 제한하는 모양새가 이제와 내부 요인으로 실패한 이스라엘의 사례를 연상케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찰의 간첩 수사 역량에 의문을 표하는 시각이 많은 데다 작은 정보를 퍼즐처럼 맞춰야 큰그림이 완성되는 정보전에서 기관 간 협업이 완전히 이뤄질지에 대한 걱정도 있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대공수사권 이관을 앞두고 경찰 내 관련 수사 인원이 적합한 역량을 갖출 수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단기간 성과 내기식 '짧은 호흡'에 익숙한 경찰의 수사 패턴이 통상 수년씩 걸리는 간첩 수사에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있다. 관련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경찰은 대공 수사권 이관에 대비해 채용한 전문 인력에조차 단기적이고 구체적인 성과를 요구하고 있다. 성과가 미진할 경우 이들도 지구대로 전출시킬 수 있다고 압박하고 있다"고 전했다.

남성욱 원장은 "대공수사권을 둘러싼 국내 정치의 분열이 각종 첩보를 집결·분석·가공해 정보로 만드는 과정에서 정보 실패를 가져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영교·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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