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죽음이 난무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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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난무한다.
그런데 전쟁과 분쟁으로 인한 수많은 죽음은 안타깝지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죽음이 난무했다고 적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죽음이 새삼스레 많아진 것은 아니란 얘기다.
비슷한 아픔을 겪었던 동행자들에게 그의 죽음은 자칫 잘못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더욱 세심하게 다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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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난무한다.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습으로 시작된 양측의 전쟁 속에 사망자는 일주일 만에 3500명을 넘어섰다. 부상자는 만명을 훌쩍 넘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도 가시화된 상황에서 더 많은 죽음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런데 전쟁과 분쟁으로 인한 수많은 죽음은 안타깝지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에티오피아는 2년간 내전으로 최대 50만명이 사망했다. 수단도 지난 4월 군벌 간 내전이 벌어진 이래 수천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2월 말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돼 600일가량 계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수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죽음이 난무했다고 적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죽음이 새삼스레 많아진 것은 아니란 얘기다. ‘난무하다’의 사전적 의미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다시 찾았다. ‘엉킨 듯이 어지럽게 춤을 추다, 함부로 나서서 마구 날뛰다.’
그러고 보니 지난 한 주간 우리에게 던져진 죽음의 형상은 어지럽게 뒤엉키고, 마구잡이로 날뛰고 있었다. 불탄 아이의 모습, 유린된 여성의 시신을 싣고 거리를 활보하는 장면 등이 여과 없이 사진과 영상에 담겨 엄청난 속도로 퍼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끔찍한 현장이 SNS를 통해 공유됐지만, 그때는 전쟁 참상을 세계에 알리고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메시지가 공존했다. 그러나 지금 공유되는 죽음의 장면들은 끔찍함과 잔인함을 경쟁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상대를 악마화하거나 두렵게 하겠다는 목적만 있어 보인다. 그런 장면을 마구잡이로 접하다 보면 죽음의 무게를 깨닫기보단 잔인함 자체를 소비하고 있게 되기 쉽다. 트라우마를 겪거나 아니면 무뎌지거나.
지난해 10월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벌어진 초유의 참사 때도 우리는 ‘죽음의 난무’를 목격한 바 있다. 서울 한복판 골목에서 사람들이 밀리고 깔리고 쓰러지는 모습, 심정지된 사람들이 길바닥에 줄줄이 늘어 뉘어진 장면 등이 모자이크 하나 없이 삽시간에 퍼졌다.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만큼 확산은 빨랐고, 어린 청소년들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마구잡이로 접했다.
죽음을 함부로 다루는 현상은 또 있다. 학교폭력 피해자였던 표예림씨의 죽음도 한 예다. 그는 지난 10일 스토킹과 협박 등으로 인한 괴로움을 호소한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러자 가해자로 지목된 유튜버가 자신은 잘못이 없다는 입장문을 곧장 냈다. 오히려 숨진 표씨가 자신의 잘못에 압박감을 느껴 생을 끝냈다는 취지였다. 그러자 또 다른 유튜브 채널에서 그를 비난하고 나섰다. 한 생명이 안타깝게 떠난 소식이 알려짐과 동시에 그 죽음을 둘러싼 공개적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더욱이 표씨는 학교폭력 피해자들과 함께 연대해 활동해오던 인물이다. 비슷한 아픔을 겪었던 동행자들에게 그의 죽음은 자칫 잘못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더욱 세심하게 다뤄져야 한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진의가 무엇이건 간에 죽음조차 각자의 이유를 위해 소비하는 것 같다는 불편감을 지울 수 없었다.
충격적 사건을 공유하려는 건 사회적 동물인 인간 고유의 속성에 가깝다. 더구나 역사상 가장 자유롭고 빠른 플랫폼을 가진 지금, 가장 자극적 소식인 죽음이 난무하는 것 자체를 막기란 쉽지 않다. 유엔이 경고하듯 SNS가 자체 검열을 강화하면 과연 해결될까. 적어도 어린 자녀의 인스타그램과 틱톡 앱을 삭제하자는 목소리에 오히려 공감이 된다. 공급을 차단하기 쉽지 않다면 할 수 있는 건 잘 걸러내는 것뿐이다. 최소한 확산의 길목에서 공유 버튼을 누르기 직전, 이를 통해 알리려는 게 무엇인지, 나 역시 그저 죽음을 소비하는 데 동참하는 건 아닌지 잠깐의 ‘멈춤’이 절실한 때다.
조민영 온라인뉴스부 차장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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