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사진과 기억

2023. 10. 16.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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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미국 뉴욕 근교의 몬탁을 여행하는 중이다.

기록된 사진 속 풍경이 눈으로 보는 것만 못하다는 아쉬움은 기억 전체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불안에 비하면 가벼운 것이었다.

마치 '이터널 선샤인'에서 주인공 조엘이 연인이었던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기 위한 시술을 받듯이, 기억을 유지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기록한 내용이 누군가 일부러 그런 것처럼 모두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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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오 시인


며칠 전부터 미국 뉴욕 근교의 몬탁을 여행하는 중이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촬영지로 알려진 곳인데 실제로 와보니 더욱 아름다웠다. 가을 하늘에서 구름이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높은 파도가 이는 바다와 면한 넓은 숲이 있었다. 숙소는 숲속에 위치해 있고 근처를 걸으면 야생동물들이 보였다. 아침에는 사슴을 보았는데 우리의 발소리를 들은 사슴이 빠르게 우리로부터 멀어져 갔다. 사슴의 뒷모습을 보며 신기해하는 것이 할 일의 전부인 것처럼 지냈다.

어제는 처음으로 시내에 나가 보았다. 너무 낡아서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꺼낸 것처럼 보이는 가게들이 바다와 호수 근처에 즐비했다. 오래된 건물들이 빚어내는 마을의 독특함에 감탄하며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시내에서 십분 걸어 나가면 해변에 이르렀다. 이곳의 해질녘은 특히 아름다웠다. 바다 위로 펼쳐진 색의 스펙트럼은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었다. 매 순간을 놓치기가 아쉬워 눈으로 보고 렌즈로 보며 기억하고 기록하려 애썼다. 기억력이 나쁜 나는 기록하지 않으면 많은 것들을 순식간에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카메라로 풍경을 담고 동행의 모습을 담았다. 기록된 사진 속 풍경이 눈으로 보는 것만 못하다는 아쉬움은 기억 전체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불안에 비하면 가벼운 것이었다.

해가 진 뒤 숙소로 돌아와 카메라를 열어보니 무슨 이유에선지 사진이 모두 날아가고 없었다. 남아 있는 것은 십초짜리 비디오 한 개뿐이었다. 마치 ‘이터널 선샤인’에서 주인공 조엘이 연인이었던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기 위한 시술을 받듯이, 기억을 유지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기록한 내용이 누군가 일부러 그런 것처럼 모두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동행은 좌절하는 나를 격려하며 말했다. 이곳의 풍경은 몸 어딘가에 기입돼 있을 것이라고. 흐릿해지더라도 있었던 일은 있었던 일이라고. 영원할 것 같은 삶 역시 서서히 사라져 가는 것이기에, 서서히 지워지는 기억을 감각하는 일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김선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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