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유대인 디아스포라, 미완의 여정

2023. 10. 16.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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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미성(연세대 교수·영어영문학과)

지구상에서 가장 오랜 갈등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유대인을 포함한 인류 이산의
역사는 종교 탄압, 전쟁·가난
같은 정치사회적 불안에 기인

세계는 평화로운 해결책 도출
바라지만 종교적 차이·경제적
이유로 문제 타결 쉽지 않아

양측 책임자들의 직접적 만남
통해 물꼬 트게 되길… 이산의
완성은 이웃과의 평화적 공존

지난 2주 사이 두 얼굴의 아시아를 보았다. 선의의 경쟁과 화합을 다짐하는 스포츠제전 아시안게임 폐막식을 하루 앞두고 서아시아 지역에서 전쟁이 발발했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사전 경고 없이 이스라엘을 공격했고 이스라엘의 보복 폭격으로 전면전으로 확장하는 양상이다. 바람 잘 날 없는 지구상에서 이·팔 분쟁은 가장 오랜 갈등이다. 그 역사는 기원전 8세기경 유대인들의 이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인류의 역사는 이산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씨앗이나 사람들이 여러 곳으로 흩뿌려진다는 뜻의 ‘이산’을 의미하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역사가 없는 민족은 없기 때문이다. 초창기 디아스포라는 종교 탄압이 주된 원인이었다. 로마인들의 탄압을 피해 이주했던 유대인들과 오스만제국의 집단학살로 시작된 아르메니아인들의 이산이 대표적이다. 1630년대 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한 청교도 역시 유럽의 종교 탄압이 주요 원인이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근대시기 이산의 역사는 전쟁과 가난 같은 정치·사회적 불안이 주원인이었다. 1850년대 아일랜드인들의 북미 대륙 이주는 기근 때문이었고, 1차 세계대전은 유대인을 포함한 많은 유럽인들이 미국으로 건너가는 계기가 됐다.

자본을 가진 유대인들은 1900년대 초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초석을 다졌다. 초창기 영화 스튜디오였던 파라마운트, 20세기폭스, MGM, 워너브러더스, 유니버설, 컬럼비아, RKO는 유대인들이 설립했다. 오늘날도 미국 영화산업은 그들의 자본과 재능으로 운영되고 있다. 2차대전 히틀러의 유대인 집단학살은 더 많은 유대인과 유럽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는 상황을 야기했다. 과학자 아인슈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 청바지를 만든 리바이 스트라우스, 작곡가 어빙 벌린과 스티븐 손다임, 화가 마크 로스코 등 11만명 넘는 유대인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성공적인 지식인, 예술인이 됐다. 미국이 유대인들의 비공식 본향이란 말이 과장이 아닌 셈이다.

미국과 가치동맹을 맺고 있는 한국, 특히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이·팔 분쟁에서 이스라엘을 응원하는 편이다. 민간인 학살을 서슴지 않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응징돼야 할 대상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평화적 해결책을 도출하는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모두 조상이 몇 천년 거주했던 그 지역을 고국 땅이라 믿기에 세계는 이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길 바란다. 이·팔 분쟁은 종교적 차이가 원인인 듯하지만 사실은 경제적 이유가 크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9m 높이의 시멘트 담장으로 둘러싸인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로 강제 이주해야 했다. 이스라엘 시민권은 고사하고 어느 나라 소속도 아닌 난민 신분이다. 워싱턴DC 두 배 정도 크기의 지역 밖을 평생 나가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어야 하는 운명이다.

이스라엘 주변 영토 가운데 가장 척박한 이 지역엔 농사도 지을 수 없고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기간산업 자체가 전무하다. 베들레헴이 지구 안에 있어 성지순례 방문객을 상대로 기념품을 파는 정도가 수입의 전부다. 생활에 필요한 전기와 물, 출입 허가 모두 이스라엘이 통제하고 있어 분쟁 때마다 이스라엘 정부는 전기와 물부터 끊는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들을 압박해 서서히 존재를 없앨 계획인 듯하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출생률이 높아 인구가 줄지도 않는다. 이스라엘 주변의 접경지역에 빈땅이 지천으로 널려 있지만 팔레스타인 난민들에게는 이주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첨단 IT산업을 육성하며 21세기를 살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 비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은 마치 우리나라의 1960, 7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아이들과 젊은이들은 세계 흐름에서 완전히 소외돼 마치 영화 ‘트루먼쇼’의 주인공처럼 가자지구 밖을 나가본 경험도 없다. 평생 난민수용소에서 미래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극단주의자들은 폭력적 저항만이 세상에 자신들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 믿는다. 대다수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어차피 전쟁이 나면 자신들이 가장 먼저 희생될 것을 안다. 중동 평화 과정의 초석이 됐던 1993년 오슬로협정은 양측 총리와 의장이 직접 만났기에 가능했다. 미국이 시도한 지난 30년간의 중재는 다분히 미국 이익에 입각한 불안정한 것이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산의 완성은 이웃과의 평화적 공존이다.

우미성(연세대 교수·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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