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수신료 70원의 가치 ‘위대한 수업’

백상진 2023. 10. 16. 04: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백상진 뉴미디어팀장

세계적 석학 출연 통해 지식 폭 넓혀주는
EBS 프로그램 공영방송 존재에 대한 해답

EBS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 제작진 인터뷰는 어찌보면 당연한 질문에서 시작됐다. 근래 보기 드물게 “수신료가 아깝지 않다”는 극찬을 받는 공영방송 프로그램, 노벨상 수상자부터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세계적 석학들이 출연하는 섭외력의 비결을 확인해야 했다.

EBS의 수신료는 월 2500원의 2.8%, 70원에 불과하다. 수신료 징수 위탁사업자인 한국전력의 수수료(169원)보다도 적다. 그런데 2021년 시작된 ‘위대한 수업’ 시즌1 첫 출연자부터가 ‘소프트 파워’로 유명한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교수였다. 뒤를 이어 폴 크루그먼, 유발 하라리, 마이클 샌델…. 괜히 ‘미친 라인업’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니었다. 시즌2에서는 다양성을 테마로 조 말론과 제임스 캐머런 등 각 분야 권위자들이 출연하면서 지식의 폭을 넓혔다. 지난 8월 말부터 시작한 시즌3의 경우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주제와 함께 15편짜리 심층 강의도 예정돼 있다.

위대한 지식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겠다는 기획의도로 출발했지만 처음 섭외 과정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의 교육 전문 공영방송이라 소개해도 석학들이 선뜻 동참할 리 없었다. 그때 운명처럼 손을 내민 사람이 시즌1 출연자였던 비노드 아가왈 UC버클리대 교수였다. 책임프로듀서인 허성호 CP는 대학생 시절 아가왈 교수가 모교 방문교수로 3주간 한국에 왔을 때 배드민턴을 함께 치고, 한국의 유명 과자도 소개해준 인연이 있었다. 과거의 인연을 잊지 않고 프로그램의 성공을 위해 발벗고 나선 석학과의 만남은 드라마틱하기까지 하다. 여기에 EBS 제작진의 헌신적인 노력이 더해져 ‘위대한 수업’은 석학들의 커뮤니티 내에서도 섭외가 기다려지는 프로그램이 됐다.

온라인에서도 호평이 대다수다. 섭외 과정을 취재한 유튜브 영상의 다수 시청자는 2030세대인데 댓글에는 “공영방송 중 EBS만 열일한다” “수신료의 몇백 배 효율을 낸다”는 반응부터 유익하고 흥미로우며 자극적이지 않은 EBS 프로그램을 응원한다는 내용이 많다. 심지어 70원 수신료를 700원으로 대폭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2030세대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던 펭수의 충격적인 등장과 화제성 못지않은 EBS의 또 다른 역작이 바로 ‘위대한 수업’이다. 제작진으로서는 바로바로 답해야 하는 석학들의 이메일을 확인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는 힘든 제작 환경이지만, 일반 시청자들은 제작진의 수고 덕분에 위대한 저자들의 명품 지식을 무료로 접할 수 있다.

EBS는 사실 주력인 출판산업의 부진 속에 적자 신세다. 하지만 대표 콘텐츠로 자리매김한 펭수를 비롯해 과거부터 EBS의 고품질 다큐와 지식프로그램들은 꾸준히 사랑을 받아왔다. 지식채널e와 다큐프라임 등에서 인연을 맺은 석학 네트워크는 ‘위대한 수업’ 출연진 섭외를 할 때도 든든한 힘이 됐다고 한다. 10여년 전 국내에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이 불었을 때 샌델 교수의 하버드대 강의 영상을 번역해 소개한 것도 EBS였는데, 그는 ‘위대한 수업’ 시즌1에서 공정과 능력주의에 대한 주제로 강의하기도 했다.

좋은 콘텐츠라고 해서 시청률이 높고 시장에서 살아남으리란 보장은 없다. 하지만 공영방송은 고품질의 콘텐츠를 통해 정치적 레토릭이 아닌 대중의 지지 속에서 공영방송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수신료 70원에서 나오는 ‘위대한 수업’ 시리즈는 공영방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올바른 해답이 될 수 있다.

허 CP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역시 공영방송사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방송사가 EBS이고, 위대한 수업 프로그램이 아닌가 자부심을 갖게 됐습니다. 수신료가 아깝지 않다는 반응을 볼 때마다 보람을 느낍니다.” 출연진 섭외와 촬영 때문에 올해만 해외 출장을 15번 다녀왔다는 그의 도전을 응원한다.

백상진 뉴미디어팀장 sharky@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