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동의 최초의 질문] “노화를 막을 방법은 없나” 미래를 열 질문 10가지

2023. 10. 16.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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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혁신적 기술의 탄생 원리는 단순하다. 새로운 길을 열어보겠다는 의지를 담은 도전적 최초의 질문이 그 시작이다. 첫 번째 해답은 부실하기 마련이다. 피드백을 받아가면서 버전을 끊임없이 높여나가는 치열한 스케일업(scale-up) 과정을 버텨내는 것이 그 다음 일이다. 도전적인 ‘최초의 질문’과 ‘스케일업’. 안타깝게도 이 두 가지는 그간 추격형으로 성장한 한국 사회에는 익숙하지 않은 일들이다. 수출 주력 품목이 20년째 불변이고, 기업의 순위마저 변하지 않고 있는 것만 봐도 분명하다. 혁신의 물결이 잦아든 조용한 연못에 누군가 파문을 일으키기 위한 돌을 과감하게 던져야 할 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초의 질문을 던지는 일이 그 출발일 텐데, “어렵겠지만, 저 길로 가보는 게 어떠냐”고 손을 드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 1회 충전에 10년 가는 배터리 등
서울대 ‘10대 그랜드 과제’ 도출
과학과 공학의 융합이 필수적
정체된 한국 경제에 자극 기대

융합은 최초의 질문 탄생하는 모판

지난 6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국내 최대 양자 기술 관련 국제행사 ‘퀀텀 코리아 2023’에서 내빈들이 초전도 기반 50큐비트 양자컴퓨터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이 그 최초의 질문을 던지는 일에 나섰다. 지난해 여름이 시작이었다. 10개의 과학기술 분야에 걸쳐 1개씩 총 10개의 도전적 질문을 도출하기로 했다. 융합적 질문을 찾기 위해 분야마다 의도적으로 다른 전공의 전문가 2명씩을 초대하였다. 단 한가지 목적을 분명하게 놓고 몇 시간에 걸친 토의를 이어갔다. ‘10년 내 해법을 구하기 쉽지 않겠지만, 만약 희미한 해결의 실마리가 구해진다면,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관련 산업의 글로벌 패러다임을 바꿀 것으로 기대되는 질문을 도출하자.’

치열한 토의과정을 거쳐 10개의 질문을 도출한 후 지난 9월 여러 날에 걸쳐 공개 포럼을 개최하였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소식을 접한 기업 관계자들까지 참여했다. 토론의 열기는 뜨거웠다. 이렇게 1년의 시간을 거쳐 도출된 10개의 질문을 ‘그랜드 퀘스트’(Grand Quest)라 이름지었다. 각 질문이 왜 중요한지, 왜 해법을 찾기 어려운지 등 상세한 내용은 책자로 알려질 계획인데, 여기서 그 제목만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양자큐비트의 조작가능성과 계산의 신뢰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면서, 한국의 강점인 반도체 집적회로 기술로 양자컴퓨팅 플랫폼을 만들 수 있을까? ②암호화된 상태의 데이터로 인공지능을 학습시킨 뒤, 암호화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궁극의 암호체계를 만들 수 있을까? ③수소생산을 위해 인체 내 효소처럼 활성과 선택성, 그리고 안정성이 뛰어난 금속촉매를 만들 수 있을까? ④인간이 납득할 수 있는 인과관계를 추론하고 설명할 수 있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을까? ⑤인간의 뇌와 같이 환경과 상호작용하고, 인지구조를 형성하면서 스스로 성장해 나가는 새로운 인공지능 패러다임을 구현할 수 있을까? ⑥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것을 넘어 항체를 설계하고 생명체의 적응 면역계 자체를 전면적으로 이해하는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을까? ⑦노화세포가 인체 각 조직에 노화를 전파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제어할 수 있을까? ⑧초미세 초저전력이면서 아날로그 방식의 계산도 수행할 수 있는 차세대 반도체를 만들 수 있을까? ⑨변화된 환경을 인지하고, 이에 맞추어 행동을 적응시켜 나갈 수 있는 로봇을 만들 수 있을까? ⑩한번 충전에 1만㎞, 10년 가는 배터리를 만들 수 있을까?

이 질문들을 접한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쉽지 않을 것이라 말하는 것을 보면서 도전적 질문이라는 애초의 취지에 부합하는 질문임을 확신했다. 총괄기획자로서 그랜드 퀘스트를 제안하고 전 과정을 주관하는 일은 또 다른 의미에서 엄청난 도전이었다. 그러나 좋은 질문이 탄생하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수확이었다. 무엇보다 탁월한 질문들은 과학과 공학, 학문과 산업 등 분야간의 접점에서 탄생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수학과 컴퓨터공학이 만날 때 암호화된 인공지능의 구현 가능성을 묻는 질문이 시작된다. 나노과학과 전기화학의 전문가가 만나 새로운 패러다임의 촉매를 상상하고, 로봇공학과 인공지능의 접점에서 환경적응적 로봇의 가능성이 탄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융합은 도전적 최초의 질문이 탄생하는 결정적 모판이다.

또 다른 교훈은 도전적 질문 다음에 이어지는 스케일업 과정을 산업계가 담당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질문이라도 사그라지고 말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 산업계가 선진국의 모델을 벤치마킹하거나 도입해서 개선하는 기존의 관성에서 시급히 벗어나야 하는 이유다.

불안한 미래와 현실에 좌절하는 청년

그랜드 퀘스트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오늘 한국의 환경이 도전적 질문을 제기하고 키워나갈 수 있는 여건이 되는지 깊이 우려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기술혁신에 대해 국가적으로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꾸준히 투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기술선진국이라 불리는 모든 나라들이 기초과학을 포함해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리면서도, 단기적으로 성과를 평가하겠다고 독촉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안타깝게도 오늘 한국의 정책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그랜드 퀘스트 포럼의 마지막 날 손을 들었던 한 대학원생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그랜드 퀘스트를 보면서 가슴이 뛴다는 것을 느끼지만, 이공계 대학원생들은 불안한 미래와 척박한 현실에 좌절하고 있다. 청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있는가?”. 미안함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이들이 신나게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가 없다. 모든 일을 제치고 국가적으로 중지(衆智)를 모아야 할 때다. 이번에 제시된 질문들은 나비의 날갯짓이다. 과학기술계와 산업계의 각 분야에서 그랜드 퀘스트들이 쏟아지기를 기대하면서, 거대한 혁신의 태풍이 불어오는 가슴 뛰는 상상을 한다.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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