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패배 시 정계은퇴 책임" 김기현 유지론 힘 실린 까닭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국민의힘이 15일 김기현 대표 체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17.15%포인트 차 대패로 ‘총선 위기론’이 현실화됐음에도 ‘대안 부재론’에 힘이 실린 까닭이다.
일요일인 이날 오후 국회에서 4시간 20분 동안 개최된 긴급 의원총회는 긴장감 속에서 진행됐다. 전날 이철규 사무총장과 박대출 정책위의장, 강대식 지명직 최고위원을 비롯해 박성민 전략기획부총장, 배현진 조직부총장, 강민국·유상범 수석대변인, 박수영 여의도연구원장 등 임명직 당직자 8명이 전격 사퇴했음에도 “패전의 책임은 장수가 지는 것”(홍준표 대구시장)이라며 김 대표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강했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4시 전날 일괄 사퇴를 발표한 임명직 당직자들과 함께 회의장에 도착한 김 대표는 “대표 사퇴론에 대해 어떻게 보느냐”와 같은 취재진의 질문에 묵묵부답한 채 굳은 표정으로 회의장 안으로 들어갔다.
막상 비공개 의총이 시작하자 김기현 대표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먼저 나왔다. 이용(비례대표, 초선) 의원은 주말 사이 나온 김 대표 사퇴 요구를 거론하며 “내부 총질을 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이채익(울산 남갑, 3선), 송석준(경기 이천, 재선) 의원 등 친윤계 참석자도 “책임을 따지는 것보다는 당의 분열을 막고 단합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김 대표를 두둔했다고 한다.
초반에 그런 분위기가 이어지자 대통령실의 불통과 독주를 비판하고, 김기현 대표 체제의 무기력을 지적하는 반박도 나왔다.
비윤계로 분류되는 허은아(비례대표, 초선) 의원은 “이쯤 되면 다같이 용산 가서 도끼 상소라도 올렸어야 한다.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 ‘총선 참패하면 정권 흔들린다’고 호소했어야 한다”며 “김기현 대표의 사퇴를 요구할 생각이 없다. 바꿔야 할 것은 당대표가 아니라 우리의 비겁함”이라고 강조했다.
비주류인 김웅(서울 송파갑, 초선) 의원은 “주방장이 연포탕을 끓이려고 하는데 사장이 나서서 갑자기 복어 알이랑 복어 피까지 넣으라 해서 사람이 죽었다”며 “그런데 복어를 넣으라고 한 사장이나 그걸 그대로 따랐던 주방장은 그대로고, 식당 보조만 자른 격”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기현 대표, 낙선한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 후보를 각각 복어집 사장과 주방장, 복어에 비유한 셈이다. 김 의원은 그러고는 “내년에는 아마 이 식당 문 닫을 것”이라고도 했다. 김 의원은 단합을 강조하는 주장엔 “(우리 당) 모두가 대통령 말을 들었다. 단합이 잘 돼도 너무 잘 돼서 문제고, 그래서 강서구청장 선거에서도 진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일찍부터 ‘수도권 위기론’을 주장한 윤상현(인천 동·미추홀을, 4선) 의원은 “지금 우리 당에 필요한 것은 단합과 분열이 아니다. 우리의 화두는 변화와 혁신이 돼야 한다”고 반박하며 “자영업자, 중도층, 20~50대가 모두 떠나고 등을 돌리고 60~70대 지지자만 남았다.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이 엄중한 상황 인식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의원은 그러면서 “비상대책위원회에 준하는 혁신위원회를 조기 발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의견이 분출했지만 “김 대표에게 명시적으로 사퇴를 요구한 의원은 한 명도 없었다”고 복수의 참석자는 전했다. 페이스북으로 미리 사퇴를 요구했던 최재형(서울 종로, 초선) 의원과 서병수(부산 진갑, 5선) 의원도 김 대표 사퇴를 직접 꺼내지는 않았다고 한다.
김기현 대표는 의총이 끝날 무렵 15분여간 마무리 발언을 하며 “총선에서 지면 모두 공멸한다. 총선에 정치생명을 걸겠다. 총선에 패배하면 정계은퇴로 책임을 지겠다”고 약속했다. 김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 때 (여당 인사들이) 공개적으로 대통령을 공격해서 결국 보수 정권이 무너지지 않았느냐”며 “언론에 드러내지 않고 대통령실과 긴밀히 소통하며 할 말을 하고 있다”고 의원들을 설득했다. 그러면서 “김행 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사퇴도 내가 건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복수의 참석자가 전했다.
결국 의총에선 ‘김기현 사퇴론’보단 ‘김기현 체제 유지론’이 더 힘을 얻었다. “김기현 대표가 물러나면 누가 당을 이끌 것이냐. 김기현 대표 이후의 대안이 무엇이냐”는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의원이 많았기 때문이다. 친윤계와 비윤계 모두에 “비대위 체제가 불러올 혼선이 더 위험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특히 비윤계 내부엔 “용산이 하향식 비대위원장을 내려 꽂을 경우 김 대표 보다 더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고 한다. 결국 총선까지 당의 안정을 바라는 친윤계, 또 비대위 출범 시 대통령실의 입김이 더욱 강해질 것을 우려하는 비윤계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셈이다.
김밥까지 회의장에 보급되며 26명 의원이 발언한 뒤인 오후 8시 30분 즈음 의총이 끝나자 윤재옥 원내대표는 “김기현 대표를 중심으로 선거에 나타난 민심을 받들어 변화와 쇄신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기로 했다”며 “정책 정당으로 일신해 경제·민생 회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의총에서 재신임을 받은 김 대표는 “(당직) 인선은 통합형, 그리고 수도권, 충청권을 중심으로 전진 배치된 형태로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영남 출신의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 위주였던 ‘김기현 1기’와 달리 ‘김기현 2기’에선 수도권·비윤계 인사가 강화될 전망이다. 의원총회 추인이 필요한 정책위의장에는 수도권 3선 중진인 유의동(경기 평택을) 의원이 유력시되고, 총선 공천 실무를 담당할 사무총장에는 직전까지 정책위장을 맡았던 부산·경남 3선 중진인 박대출(경남 진주갑) 의원 등이 거론된다. 수석대변인엔 박정하(강원 원주갑, 초선) 의원이 유력하다. 김 대표는 기존 당직 인선을 마무리한 뒤 인재영입위원회와 혁신기구 등을 띄울 예정이다.
김다영·김기정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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