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들러리 서는 느낌"…여권서도 꼬집은 보궐 참패 진단

김기정 2023. 10. 1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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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여당이 용산 대통령실의 여의도 출장소가 돼 버렸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로 총체적 위기 상황에 빠진 국민의힘에 대한 15일 여권 관계자의 진단이다. 대통령실의 뜻에 따라 당이 휘청거리는 상황을 빗댄 말로, 그는 이를 바로 잡는 것이 국민의힘 쇄신의 선결 조건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국민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선 상하수직적 당정관계를 수평적으로 복원하는 게 가장 큰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뿐만 아니라 여당의 무비판적 용산 추종 성향이 현재 여권의 위기를 초래한 근본적인 이유로 꼽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10ㆍ11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의 김태우 전 구청장 재공천 과정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지난 8월 윤석열 대통령이 광복절 특사를 통해 김 전 구청장을 사면ㆍ복권한 뒤에도 국민의힘 지도부는 비공개석상에서 수차례 “무공천” 방침을 밝혔지만, 결국 김 전 구청장은 재공천됐다. 당 안팎에서 “용산의 뜻이 여당을 눌렀다”는 분석이 파다했고, 반대로 야당에선 "김 후보를 낼 때 이미 선거는 끝났다"는 안도감이 표출됐다.


'이념 논쟁' 끌려다닌 여당


8월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연합뉴스
이념 논쟁도 마찬가지다. 지난 8월 25일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북한을 대상으로 전쟁 억제를 하고 전시에 이기기 위해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곳에서 공산주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냐’는 문제가 제기됐다”며 육군사관학교에 있던 항일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 흉상의 이전 계획을 언급했다.

이에 당시 국민의힘에선 “이념 논쟁이 당에 도움될 게 없다”, “국방부 장관이 실언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한동안 국민의힘의 공식 반응도 없었다. 하지만 사흘 뒤인 같은 달 28일 당 의원 연찬회에 참석한 윤 대통령이 “제일 중요한 것은 이념”이라며 ‘이념 논쟁’에 가속을 붙이자 그제야 국민의힘은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다.

특히 당시 신원식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문재인 정권은 2018년 3월 1일 대대적인 선전과 함께 소련군 복장을 한 홍범도 흉상을 생도들이 매일 볼 수 있는 장소에 설치했다”, “6ㆍ25 전쟁은 소련의 지원으로 북한이 일으켰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소련 공산당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며 공세의 선봉에 섰다. 이후 그는 국방부 장관에 임명됐다.


"당정협의서도 들러리 전락"…'개 식용 금지'도 혼선


김건희 여사가 7월 7일 서울 용산어린이정원에서 영장류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Jane Goodall) 박사와 어린이 환경·생태 교육관 예정지로 향하고 있다. 이날 두 사람은 '개 식용 문화 종식'과 관련한 대화도 나눴다. 왼쪽은 윤석열 대통령 부부 반려견 새롬이. 뉴스1
대통령실과 정부ㆍ여당 간의 당정 협의에서 국민의힘이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대통령실과 정부 간 정책 협의를 모두 끝낸 뒤 외부에 공표하기 전 여당과 조율하는 모양새만 취한다는 주장이다. 당정 협의 참석 경험이 있는 당 관계자는 “만나기도 전에 이미 정부에서 결과를 담은 언론 브리핑 자료를 만들어 온다”며 “기작성한 자료가 토씨 하나 안 바뀌고 그대로 나가는 경우가 다반사라, 여당이 들러리를 서는 느낌”이라고 꼬집었다.

여야가 법제화에 합의한 ‘개 식용 금지’을 둘러싼 여당 내 혼선도 있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개 식용 금지란 불씨를 지핀 것은 김건희 여사였다. 김 여사는 지난 4월 “개 식용을 정부 임기 내에 종식하도록 노력하겠다. 그것이 저의 본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드라이브를 걸었다.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등 여야 의원 44명이 지난 8월 24일 ‘개 식용 종식을 위한 초당적 의원모임’을 발족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달 초 국민의힘 지도부 일각에서 “개 식용 금지를 반대하는 여론이 더 많다”며 법제화에 난색을 보였다는 보도가 나왔다. 실제로 당시 당 내엔 "국민들에게 민감한 정책은 당에서 차분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정책도 용산의 의중에 따라 흔들린다면 당이 왜 필요한가”란 문제의식이 있었다. 그러자 박대출 정책위의장이 페이스북을 통해 “개 식용 금지법을 추진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없다”며 급하게 진화에 나섰다.


서병수 "대통령실 뒤치다꺼리만 골몰하지 않았는가"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뉴욕에서 진행되는 제78차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 참석을 위해 9월 18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을 통해 출국하기 전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뉴스1
비윤계 중진인 서병수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 심부름꾼이어야 할 당이 대통령실 뒤치다꺼리만 골몰하지 않았는지 되새겨보면 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기현 대표를 향해 “정부가 민심과 엇나갈 땐 야당보다 더 단호하게 바로잡겠다는 결기가 없다면 물러나라”라며 “집권당이 국정운영의 동반자로서 어떤 역할을 어찌하느냐에 국민의 삶과 나라의 앞날이 걸려 있다”고 덧붙였다.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지만 여권 내부엔 친윤이냐 비윤이냐에 관계 없이 서 의원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익명을 원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김기현 대표나 한덕수 총리, 용산 대통령실의 고위 참모들이 윤 대통령에게 민심을 정확히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했는데, 그동안 이런 기능이 마비됐던 것 아니냐”며 “앞으론 대통령에게 가감 없는 여론이 전달돼야 한다”고 했다.

반면 장예찬 최고위원은 “조금만 불리하다 싶으면 대통령부터 걸고넘어지는 못된 버릇은 버려야 한다”며 “대통령 덕분에 정권교체를 하고 지방선거 승리를 했다면, 어려운 상황일 때 용산 탓하며 흔들기 전에 우리의 역할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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