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 터졌다"…'보행기 행진' 코로나 영웅 가족 논란, 무슨 일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보행기 행진' 도전으로 전 세계를 감동 시킨 영국의 100세 참전용사 톰 무어의 유산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그가 암 환자 등을 위해 세운 재단의 자금을 딸 한나 무어(52)와 사위 콜린 잉그램(66)이 유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다. 14일(현지시간) 텔레그래프는 "수백만 달러가 새 암 센터 등을 위해 사용될 수 있었지만, 사적인 사업에 낭비되는 비극이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BBC 등에 따르면, 2020년 4월 코로나19 확산으로 영국에서 첫 봉쇄가 시행됐을 때 톰 무어는 '집 마당 100회 돌기'에 도전했다. 100번째 생일을 앞두고 국민보건서비스(NHS)를 위한 성금 모으기 챌린지에 나선 것이다. 고령인 데다 과거 암 투병을 해 거동이 불편했던 그는 보행기구에 의지해 25m 거리를 걷기 시작했고, 20일 만에 성공했다. 언론·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소식이 퍼지면서 전 세계에서 3280만 파운드(약 540억원)가 모였다. 기부금은 NHS와 영국의 240여개 복지단체에 전달됐다.
2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이었던 그는 '캡틴 무어'로 불리며 영웅으로 떠올랐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그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했고, 그가 출간한 자서전 『내일은 분명히 더 좋은 날(Tomorrow Will Be A Good Day)』 등은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그와 가족들은 자선단체 '캡틴 톰 재단'을 세웠다. 2021년 그가 코로나19에 감염돼 폐렴 등 합병증으로 사망했을 때 수많은 이들이 추모했다.
하지만 최근 톰 무어의 가족이 비판의 중심에 섰다. 그가 유산으로 남긴 재단의 돈을 딸 부부가 빼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BBC는 "자서전 수익금 80만 파운드(약 13억원) 상당이 한나와 콜린의 회사로 흘러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톰은 책 서문에 "회고록을 써달라는 제안을 받으면서 재단을 위해 더 많이 모금할 기회도 얻었다"며 "호스피스를 지원하고 사별에 직면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어 영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초 톰이 책 수익금을 재단에 기부하려 했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이다.
한나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책 수익금 대부분을 회사 자금으로 쓴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재단에 기부하기로 아버지와 합의한 적이 없다"며 "오히려 아버지 요청에 따라 돈을 별개 회사에 보관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텔레그래프는 "자선 단체와 부부의 개인 사업 간의 이익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은 재단의 미래가 위태롭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 7월 한나는 베드퍼드셔주 당국으로부터 건물 철거 통지도 받았다. 그는 2021년 재단과 자선 사업을 위해 '캡틴 톰 빌딩'을 짓겠다며 건축 허가를 신청했다. 하지만 얼마 뒤 수영장 등을 포함한 저택을 짓겠다고 계획 변경서를 냈다가 이를 거부당했다.
영국 자선위원회가 조사에 착수하며 재단은 현재 모금을 중단한 상태다. 자선위원회 대변인은 "재단에 재정적 손실을 초래하거나 위법행위가 있었는지 등을 살필 것"이라고 전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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