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지만 못 받는다…팔 난민에 국경 걸어잠근 이집트 속내

서유진 2023. 10. 15.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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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대피령을 내리면서 이집트로 향하는 민간인 탈출 행렬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집트가 국경을 막아서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가 된 곳은 가자지구에서 이집트 시나이 반도로 들어가는 유일한 육로인 '라파 통로'다. 14일(현지시간) 미 국무부 측은 언론에 "가자지구의 미국민 등이 안전하게 떠날 수 있게 이집트 라파와 맞닿은 곳으로 이동하도록 권고했다"며 "이집트 국경을 잠시 개방하기로 이집트·이스라엘·카타르와 합의했다"고 밝혔다.

지난 12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라파 난민촌에서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이 부상당한 채 대피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이집트는 국경을 본격적으로 개방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까지 이집트 국경 문은 굳게 닫혀 있어 수만 명의 발이 묶였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결국 이집트로 넘어가지 못해 국경 인근 모든 아파트에 한 집당 20~30명 이상이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워낙 비좁아 잠드는 것조차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심지어 이집트가 가자지구 접경 지역의 군사 병력을 증강하고 임시로 시멘트 장벽까지 세우는 등 봉쇄를 강화했다는 증언까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미 국무부 관계자는 "(이집트 측의) 국경 개방 공지가 없을 수 있고, 제한된 시간에만 열릴 수 있다"고만 NYT에 말했다.

14일(현지시간) 가자 지구와 이집트 접경지대의 라파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가자를 떠나기 위해 허가를 받으려 기다리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반면 이집트 측은 "국경을 열었지만,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인해 도로 사정이 여의치 않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사메 슈크리 이집트 외무장관은 이날 CNN에 "라파 통행로는 공식적으로 열려 있다"며 "다만 공습으로 가자지구 쪽 도로를 이용할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하마스, 난민에 섞여 올라"…고물가도 발목


이집트에는 이미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다. 과거 이집트는 팔레스타인에 경제·군사적 지원도 많이 했다. "형제"라고 부를 정도로 가까운 사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다르다. 이집트 정부는 팔레스타인 난민의 대규모 유입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기구(UNRWA)에 따르면 지난 1주일간 가자지구에서 약 100만명이 피난민이 됐기 때문이다.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CNN과 인터뷰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어려움에) 공감한다"면서도 "이집트의 지원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미 이집트가 수단·시리아·예멘·리비아 출신 난민 900만 명을 수용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다.

이집트는 대량 난민 사태가 정치·안보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한다. 하마스 전투원들이 난민 사이에 끼어 이집트로 유입되거나, 이들 일부가 무기를 갖고 오면 시나이 반도 정세가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또 피난이 자칫 영구 이주로 이어져 아랍권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전망도 있어 이집트 정부가 난민 허용을 꺼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집트는 1940년대 수백만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을 수용했던 요르단과 시리아가 고통받았던 사례도 잘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14일 가자지구 라파에서 이스라엘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 옆에 앉아 있다. AP=연합뉴스

현재 이집트 경제 상황이 나쁜 것도 난민 허용에 악재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이집트의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38%에 달한다. 지난 4월 글로벌 신용평가사 S&P가 이집트의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stable)에서 부정적(negative)으로 하향 조정한 상태다. IMF의 재정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이집트의 국가채무는 올해 GDP의 92.9%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2018년 이후 5년 만에 최고치다.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가 예정된 상황에서 이집트 정부가 난민까지 허용하기에는 국민들 눈치가 보인다는 해석도 있다. WP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전부터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이미 상당한 국내 정치의 압력을 받고 있었다"고 전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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