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조 건축물 킬러' 흰개미 습격에 비상…美·日 대처방법 보니

김민욱 2023. 10. 1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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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경남 창원시의 한 주택에서 발견된 외래 흰개미. 악성 종으로 불리는 마른나무흰개미과(科) 인사 가스 테를 미스 마이너종(種)이다. 사진 환경부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서 지난달 5일부터 ‘외래 흰개미’가 잇따라 발견됐다. 나무를 닥치는 대로 갉아먹는 마른나무흰개미과(科) 인사이스테르미스 마이너종(種)이다. 미국 캘리포니아가 원산지인 이런 종류의 흰개미가 국내에서 서식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었다.


기후 변화에 외래 '악성 종' 출현


진해구 주택을 중심으로 각각 50m, 90m 떨어진 다른 주택 외부 목제 창틀 등에선 69, 54마리 규모의 흰개미 집단(군체)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이 악성 외래 종이 이미 10년 전 국내로 유입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목조 건축물·문화재 킬러’로 불리는 흰개미 습격에 비상이다. 15일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흰개미는 익충이자 해충이다. 자연계에선 토양 내 순환을 돕는 역할을 한다. 주로 셀룰로스가 함유된 죽은 나무나 낙엽·부엽토 등을 먹은 뒤 분해해 다시 자연으로 되돌린다.
지난 5월 서울 강남구 주택에서 발견된 외래 흰개미에 범정부 합동 역학조사를 벌이고 있는 모습. 사진 농림축산식품부=연합뉴스


전국 목조 건축문화재 상당수 피해


하지만 목조 건물이나 문화재에는 위협적인 존재다. 국립문화재연구원에서 진행한 ‘국가지정 목조건축 문화재 흰개미 피해 조사’ 결과 2016~2019년 피해만 324건에 달했다. 흰개미 전문가인 박현철 부산대 생명자원과학대학장은 “전국 국보·보물 목조 건축문화재 상당수가 흰개미 피해를 보았다”고 밝혔다.
민간에선 마루청을 받치는 나무인 멍에나 대들보를 흰개미가 갉아먹는 사례가 전해진다. 심하면 건물이 무너질 수 있다. 한옥 건물이 상대적으로 많은 서울 종로구는 흰개미 피해를 진단하고 예방하는 ‘목조주택 건강검진’사업을 하고 있다.
흰개미가 구멍을 뚫은 서울 종로구 계동의 한 한옥 기둥 자료사진. 중앙포토


까다로운 흰개미와의 전쟁


흰개미는 방제가 까다롭다고 한다. 주로 목재나 땅 속에 서식해 눈에 잘 띄지 않아서다. 더욱이 기후 변화로 기온이 오르면서 과거엔 서식이 어려웠던 악성 외래종 흰개미까지 등장하고 있다. 김소희 기후변화센터 사무총장은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계 변화로 돌발해충이 증가하는 추세”라며 “한 예로 배·콩·인삼 같은 농작물을 가리지 않고 공격하는 갈색날개매미충 월동난(알)은 117개 시·군 3560ha에서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외국에서는 흰개미 방제 성공 사례가 있다. 이상빈 미국 플로리다대 박사 등이 쓴 ‘국내외 흰개미 방제기술 발달과정과 목조건축 문화재 흰개미 피해 저감을 위한 방안’(2021) 논문에는 미 뉴올리언스 주 루이 암스트롱 공원의 대만지중흰개미 방제방법이 소개돼 있다. 1998년~2014년까지 16년 동안 5단계로 나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공원면적은 12만9502㎡으로 서울 광화문광장(4만300㎡)보다 3배 이상 넓다.


美 공원 선 이렇게 잡았다


1단계 모니터링을 통해 13개 흰개미 군체를 확인했는데, 군체를 제거하면 인접한 곳에 있던 또 다른 군체가 영역을 확장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3단계 때 살충제 일종인 ‘곤충생장 조절제’를 이용해 모든 군체를 없앴다. 하지만 한동안 약제를 쓰지 않았더니 새로운 흰개미 군체가 발견됐다. 이에 생리활성 억제물질인 ‘고내구성 군체 제거제’를 이용했더니 효과가 나타났다. 루이 암스트롱 공원 방제사례는 지난 11일 열린 한국흰개미대책협회 정기세미나에서도 소개됐다.

생리활성 억제제를 활용한 방제는 바퀴벌레 덫과 작동원리가 비슷하다. 덫에 흰개미가 좋아하는 나뭇잎 등을 생리활성 억제제와 섞은 뒤 놓아둔다. 이걸 먹은 흰개미가 서식지로 돌아가 죽으면, 이 사체를 뜯어먹은 다른 흰매기가 연쇄적으로 죽는 원리다. 흰개미는 이름은 개미나 바퀴벌레와 함께 ‘바퀴목’에 속한다. 흰개미는 바퀴벌레처럼 동족 사체를 단백질원으로 섭취한다.

박현철 교수는 “생리활성 억제물질은 곤충 성장에 필수적인 탈피를 못 하게 한다”며 “허물을 못 벗은 일개미 등은 본능적으로 여왕 근처에서 죽는데, 죽은 흰개미를 먹은 다른 흰개미가 또 죽으면서 연쇄 반응이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일개미 개체 수가 줄면 여왕개미도 결국 죽게 된다”며 “효과가 큰 4세대 생리활성 억제물질은 라이센스 문제로 국내 수입이 안되는데 국내 문화재 보호를 위해 당국이 이를 풀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11일 열린 한국흰개미대책협회 정기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한국흰개미대책협회


日, 목조건물 지을 때 예방 조처한다


목조건물이 많은 일본도 흰개미 피해가 심각하다. 이에 일본은 건축기준법 시행령에 방제방법을 적시했다. 지면으로부터 높이 1m까지 목재 부분에 방부제나 약품 등으로 흰개미 예방 조처를 해야 한다. 필요한 비용은 주택금융지원기구를 통해 저금리로 빌려준다. 공공건축 공사 땐 표준사양서에 흰개미 예방·방제에 적합한 약품을 사용토록 했다.

고남철 한국흰개미대책협회장은 “흰개미는 일반 ‘개미’처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 안 된다”라며 “목재 피해만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셀 수 없이 많은 흰개미가 뿜어내는 메탄은 심각한 환경문제까지 일으킨다”고 말했다.

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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