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의무공시, 2025년 시행 현실적으로 어려워"
의무화 일정 연기, 제도 안착 위한 지원책, 전사적 ESG 관리체계 수립 필요
국내 ESG 공시 의무화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당장 2025년 시행안이 검토 중이지만, 모호한 공시 개념과 인증기관 부재 등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더 많은 준비과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15일 ‘ESG 공시 의무화 조기시행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ESG 공시의 조기시행이 어려운 5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ESG 공시 제도의 성공적 안착을 위한 제안 3가지 방안을 제안했다.
국내에서 검토 중인 ‘2025년부터 ESG 공시 의무화 단계적 시행안’과 관련해 한경협은 ESG 공시 의무화가 2025년에 시행되기 어려운 5가지 이유를 제시하면서, 의무공시 도입 일정을 연기하고 충분한 준비기간을 줘야 한다고 밝혔다.
한경협 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은 ESG 공시 관련 애로사항으로 ‘모호한 공시 개념과 명확한 기준 부재’를 가장 많이 꼽았다.
실제 기업들은 2023년 10월 현재 ESG 공시에 대한 정확한 가이드라인과 세부기준이 없어 막막해 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업에 대한 과거 성과를 공시하는 재무제표와 달리, ESG 공시는 기후변화 시나리오별 영향을 보고하는 미래지향적 성격을 갖는다.
이는 대부분 기업에 새로운 제도로, 제도 정착을 위해서는 정확한 기준 마련이 필수다. 현재는 국내 기준은 물론 국내 ESG공시 기준의 참고가 될 ‘IFRS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 최종 번역본도 아직 나오기 전이어서 기업들은 공시 준비에 혼란을 느끼고 있다.
기후변화 등 시나리오에 따른 ESG 리스크 영향 측정에 대한 통일된 기준이나 모델이 없어, 외부 전문업체별 리스크 분석 모델이 달라, 기업이 설명할 수 없는 부정확한 데이터를 공시하게 될 우려 또한 제기된다.
공시기준이 당장 확정된다 해도 2025년 공시를 준비하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2025년 공시 시행 시, 2024년 데이터를 취합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적어도 1년 전에는 세부 공시 기준 발표가 필요하다. 이에 더해 실무적 시스템을 갖추고 검증하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세부기준 확정 후 최소 2년 이상은 소요되기에 2025년 시행은 준비하기에 물리적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 IFRS 기준처럼 연결기준으로 공시를 해야할 경우, 별도 기준으로 집계할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또한 해외 사업장이 ESG 인프라가 취약한 지역에 많이 위치할 경우, 연결 기준 데이터 수집이 어렵고 데이터 신뢰성 확보도 어렵다. 한국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ESG 인프라가 취약한 지역에 진출한 비중이 높아, 연결기준 공시 준비에 더욱 어려움이 큰 상황이다.
공시를 위한 기업 내부 전문 인력도 부족하다. 신뢰성 있는 ESG 공시를 위해서는 전문성을 가진 인력이 필요하나, 아직 기업의 ESG 관련 인력이 적고, ESG 전담부서 구성원의 업무 경력기간이 짧아 전문성이 높지 않다.
또한 전담부서뿐 아니라 재무‧환경‧IR 등 유관 부서의 협업이 필요하지만, 대기업조차 전사적 준비를 최근에 시작한 상황이고, 중소기업 및 협력사 등의 ESG 관련 인식은 더 낮은 수준이다.
ESG 공시를 의무화할 경우, 제3자 인증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데 제3자 인증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고 전문성 있는 기관 및 인력도 부족한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기후공시를 위해 탄소배출량 검증을 수행할 수 있는 전문 검증업체가 15개, 검증 자격증 보유자는 약 300명 수준에 불과해, 단시간 내 전문성을 갖춘 기관과 인력 확충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ESG 공시 의무화 시 기업이 준비해야 할 사항이 크게 늘어나는 만큼, 기업이 겪을 수 있는 법률적 리스크 역시 증가할 전망이다. 공시 의무화 시, 사후적으로 발생한 ESG 이슈로 기업이 손해를 입었을 경우, 사전에 뤄진 ESG 관련 정보가 부실공시였다는 이유로 책임을 묻는 소송 부담이 있다.
또한, 공시 범위가 기업 스스로 제어하기 힘든 사업장 밖의 영역(협력사 등)과 미래 예측에 따른 영향 등 광범위해, 충분한 준비 없이 공시할 경우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법률 리스크가 현저히 커진다. 또한 준비기간이 충분하지 않은 공시는 잦은 정정공시를 야기해 데이터 신뢰성 저하로 이어지는 등 기업 부담이 가중된다.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는 제조업 비중이 주요국 대비 현저히 높고, 탄소다배출 업종(철강, 석유화학, 정유, 시멘트) 비중이 높아 성급한 ESG 공시에 따른 부담이 EU 국가 등에 비해 크다
한국은 탄소배출량이 높은 산업구조인 반면, 신재생에너지 조달 여건은 주요국 대비 열악해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산을 위한 시간 확보가 필요하다. 2022년 기준 한국의 전력 생산량 중 신재생에너지 비율은 8.1%로, 40개국 중 35위에 불과하고, 경쟁국 대비 1/5~1/3 수준에 불과하다.
한경협은 보고서를 통해 ESG 공시 제도의 성공적 안착을 위한 3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우선 공시 신뢰성을 높이고 시장 혼란을 줄이기 위해, ESG 공시 의무화 일정을 연기하고 기업 등 이해관계자들에 충분한 준비기간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쟁국인 미국, 일본도 ESG 공시 의무화에 신중한 입장으로, 선제적으로 국제기준을 도입하는 것보다 주요 국가들의 시행시기를 고려한 후 국내 상황에 맞춰 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두 번째로, 공시 제도 안착을 위한 지원 정책의 일환으로 의무화 전, 기업의 자율적 공시를 독려하고, 의무화 시행 이후에도 시범 시행 및 면책 기간을 부여할 것을 제안했다. 자율공시와 면책기간을 통해 시행착오를 정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또한 충분한 국내 검증인력과 기관을 마련하여 검증의 전문성과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기업 차원에서는 자사의 중요 ESG 리스크를 선별·공시할 수 있도록 전사적 지속가능성 실사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OECD 실사지침 등을 참고해 전사적 실사체계를 만들고 ESG 리스크가 관리되도록 회사 장기전략목표에 이를 반영하고 행동강령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기업의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에 ESG 관련 항목(데이터 수집, ESG 실사가 법적 요구 수준에 부합하는 지 여부 평가)을 포함시킬 것을 제안했다.
이상윤 한경협 CSR본부장은 “지속가능경영 확산을 위해 ESG공시 확대 추진 방향은 공감하나, 제도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 국내 여건에 맞는 ESG 공시제도 도입 전략이 필요하다”며 “시행착오를 줄이고 내실있는 제도 도입을 위해서는 주요국 동향은 면밀히 살피면서 서두르지 말고, 충분히 준비할 시간을 갖고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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