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Q sign #21] 길을 잃고 산속으로

전병선 2023. 10. 1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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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인 목사

그가 내 인생에서 뿌리 뽑혀 나가고 20일이 지난 12월 1일, 밖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그때 불현듯 ‘길이 있고 신호등이 있고 차가 있고 운전 면허증이 있는데, 왜 운전을 하면 안 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30여 년을 살면서 하도 짓이겨져서, 나 스스로 ‘나는 운전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까지도 “엄마는 다 잘하지만 운전은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단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평생을 짓누르고 있던 바윗덩어리가 기적같이 떨어져 나가자 나는 날개를 퍼덕이게 되었고, 12월 1일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길로 차를 몰고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정확하게 한 달 뒤인 2008년 1월 1일부터 샌안토니오 온누리교회 파트타임 목사가 되었다. 지금은 손자 손녀를 양육하고 있는 중이라 사역을 할 상황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사양을 했지만 박한덕 목사님은 더욱 강력하게 도와 달라고, 주보에 이름을 올리겠다고 선포했다. 심상치 않은 상왕 전개에 “글쎄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일까요?”라고 엉거주춤하게 대답을 할 수밖에.

가까운 거리도 아니었다. 40여분 거리를 가야 했는데, 원래 운전을 하던 사람처럼 그 거리를 오며 가면서 사역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봐야 하니까, 말씀 QT는 집에서 인도했고 밤으로 화요 중보기도모임을 인도하게 되었다. 주말에는 딸과 사위가 있으니 성경통독 사역도 했다.

그 날 밤은, 한 성도님을 교회 근처에서 만나 식사를 같이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였다. 웬 뜬금없이 내가 늘 다니던 길 중간에 교통사고가 나서 노란 줄로 길을 차단하고 다른 쪽으로 돌아가라고 경찰이 다가와 말을 했다. 내가 아는 길은 그 길밖에 없지만 상황이 그러하니 도리가 없어서, 일단 오른쪽 길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다시 왼쪽 길로 돌아가면 되겠지 했는데…. 길은커녕 신호등도 보이지 않고 가로등조차 없는 산속 주택가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길들은 도시마다 다르다. 어떤 도시는 네모가 반듯하게 바둑판같이 생겨서 어디로 가든지 길이 나오게 되어 있는데, 그 동네는 아니었다. 집 현관에 불을 켜 놓지 않는 한, 집 주소조차 보이지 않는 주택가의 길이다. 어디로 나가야 할지 진실로 난감했다.

어두운 산속 주택가, 나무들이 왕창 서 있어서 더 깊은 산속만 같아 보였는데 도대체 어디라도 불빛이 보여야 뭘 하든지 하지. 그때만 해도 스마트폰이 없었다. 사방은 캄캄하고 밤은 깊어 가는데 전화가 있다 한들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어도 소용이 없는 게,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나도 모르는데. 어떤 방책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차 안에서 부르짖어 기도하기 시작했다.

“길이요 진리되신 주님, 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사오니 저에게 나갈 길로 인도하시고 불빛을 보게하여 주시옵소서!” 있는 대로 소리를 지르며 기도하는 중에, 차는 천천히 움직이며 빛을 찾게 되었고 그 빛을 향해서 가다가 보니, 언젠가 보았던 적이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적어도 반대 방향으로는 가지 말아야 하므로 극도로 조심을 하면서, 인도하심을 따라 큰길로 나오게 되었다.

산꼭대기에 있는 집에 도착해 보니 자정이 넘었고, 온몸에는 그야말로 진땀이 흘러서 끈적였다. “진땀”이 나는 경험, 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 운전자 노친네가,…! 아이들은 그 에미와 할미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지 못한 채,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그날 아침, 새벽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상하게도 자동차 앞창 유리에 안개가 서리기 시작했다. 에어컨을 틀어도 히터를 틀어도 창문을 열어도 그 안개는 짙어지기만 했다. 마귀가 나를 죽이려고 작심을 한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노친네가 어떻게 그 생각을 했는지, 고장 신호를 켜고 길 한복판에 차를 멈추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으니까 밖으로 나가서 앞창 유리를 닦았다. 가던 차들은 내 차를 비켜서 자기들의 길을 갔고 나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다시 차 안으로 들어와 심호흡하고 살살 움직여 보았다. 또다시 그런 현상이 되면 다시 차를 세울 요량을 하며 조심스레 집으로 돌아왔다.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네 목전에 숨으리라.”(호 13:14·고전 15:55, 56)

담임목사가 LA로 볼일(총회)을 보러 가고, 대신 새벽예배를 인도하러 새벽 4시에 집을 나섰다. 설교는 준비했지만 미리 가서 기도를 드리려고. 밖으로 나와보니, 그날따라 거센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소나기가 오든 눈이 내리든 나는 가서 새벽예배를 인도해야 하니까, 시동을 걸고 출발을 했다. 앞창의 와이퍼가 아무리 부지런하게 움직여도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산 꼭대기에서는 무사히 밑으로 내려왔는데, 이제 본 길로 접어들기 위해 좌회전을 하는데 바퀴가 미끄러지는가 싶더니 요란한 소리와 함께 주저앉고 말았다.

“끽, 끽” 소리가 나는 차를 움직일 수 있는 만큼 어찌어찌 움직여서 가까이에 있는 어떤 건물의 주차장으로 끌고 들어가 주차를 했다. 그래도 그때는 옛날 전화기라도 있어서, 아이들에게 전화했지만 아직 일어났을 리가 없으니 받지를 않았다. 새벽 5시가 얼추 되자, 매일 새벽예배에 참석하시는 안수집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한번에 연결이 되지는 않았지만 두어 번을 더 하고 연결이 되었다. 일단은 그 집사님의 차를 얻어 타고 가서 새벽예배를 인도할 수가 있었다.

오는 길은, 내 집에서 큐티 모임을 같이하는 공득희 집사님의 차를 타고 그 자리에 와서 보험회사에 연락하여 스페어타이어로 갈아 끼우고 디스카운트 타이어에 가서 4개의 바퀴를 모두 새 타이어로 갈아 버렸다. 네 바퀴가 이미 다 달아서 매끈매끈한 상태였으니, 이 정도로 끝난 게 얼마나 감사한지. 만일 내 딸이나 사위가 타고 가다가 무슨 사고가 났더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었다. “하나님, 좌우지간에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계속)

◇김승인 목사는 1947년에 태어나 서울 한성여고를 졸업하고 1982년 미국 이민 생활을 시작했다. LA 기술전문대학, Emily Griffith 기술전문대학을 나와 패션 샘플 디자인 등을 했다. 미국 베데스다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북미총회에서 안수받았다. 나성순복음교회에서 행정 비서를 했다. 신앙에세이를 통해 문서선교, 캘리포니아에 있는 복음방송국(KGBC)에서 방송 사역을 했다. 미주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논픽션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했다.
정리=

전병선 미션영상부장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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