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적인 제사, 꼭 해야할까요?

정지현 2023. 10. 1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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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의 선언으로 시작된 고민.... 시대와 현실에 맞게 바꾸는 것, 전통 보존 방법일 수도

[정지현 기자]

▲ 차례상 9월 추석에 준비한 우리집 제사상입니다
ⓒ 정지현
 
"내년부터는 명절 제사는 없으니 그렇게들 알아라."

지난달 장인어른 사십구재가 끝났다. 장인을 모신 묘지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장모님은 자신의 다짐을 자식들에게 통보했다. 장인에게 시집와 오십여 년을 지냈던 명절 제사였다. 장인 생전 긴 세월 동안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생각해 보면 장모님의 통보는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하지만 사전에 어떤 얘기도 없이 갑작스러운 통보에 자식들도, 자리를 함께 한 처이모님도 어리둥절하긴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장모님을 응원하고, 지지한다. 일흔을 넘기고도 몇 년이 지난 연세에 지금에라도 그만하시겠다는 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다.

며칠 전 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아버지 혼자가 된 후로 사흘이 멀다 하고 전화를 드린다. 원체 자기 관리가 철저한 분이라 건강은 크게 걱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연세가 있으니 안부 전화가 습관처럼 됐다. 평소와 같이 '식사하셨냐', '아픈 데는 없으시냐' 일상적인 질문들이 오갔다.

그렇게 얘기하던 중에 조만간 큰 집 행사에 아버지 사촌 형제들이 모인다는 얘길 들었다. 큰집 행사가 무엇이냐 물었더니 작년까지만 해도 사촌 간 기제사를 모여서 함께 지냈는데 올해부터는 제사 없이 선산만 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바뀐 건 큰 어머니의 은퇴 선언 때문이라고 하셨다. 큰 어머니도 시집와서 긴 시간 제사를 지냈다. 하지만 이젠 연세도 있으시고 힘도 드시니 제사 없이 조상들께 인사 지내는 걸로 간소화하자는 의도였다. 전적으로 동의했는지, 마지못해 동의했는지는 모르지만 올해부터 큰 집 제사는 사라졌다. 

아버지도 큰 어머니의 결정이 당연하다는 눈치셨고, 큰 집 제사가 없어진 걸 이해한다고 말하셨다.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내내 내 머릿속에는 그간 고민했던 생각을 바삐 정리 중이었다. 정리된 생각은 큰집 제사건에 아버지 동의와 이해가 떨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터져 나왔다.

 "아버지 저희 처가도 내년 한 해만 더 조부모 제사를 지내고, 내후년부터는 장인어른 제삿날에 함께 지낸다고 하시더라고요. 저희 집도 엄마 제사 때 할아버지, 할머니 같이 모셔도 되지 않을까요?"
 "......"

아주 잠깐이지만 아버진 말씀이 없으셨다. 전화기 너머로 당황하신 아버지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너무 '훅'하고 들어간 게 아닌가 걱정이 됐다. 제사 준비를 하며 매번 생각했었던 일이다. 제사 한번 할 때마다 비용도 문제지만 음식과 제사준비로 애쓰는 아내도 늘 측은했다. 물론 나도 힘들고 고생스럽긴 마찬가지다.

 "하~, 제사 모시는 게 이젠 힘드나 보네. 내가 그러자고 하긴 그렇고 네 삼촌하고 상의해 보마."
 "그럼요. 안 모신다는 게 아니고 어머니 제사 때 함께 모신다는 거니 작은 아버지 하고 잘 상의해 보세요."

제사 존중하지만...

전화기 너먼데도 불편한 기색이 느껴질 정도다. 아마도 아버진 서운한 마음이 컸을 테다. 하지만 난 나대로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일 년에 제사라고 해봐야 명절제사, 기제사 포함 네 번이지만 한 번 제사상을 차리는데 드는 비용은 40만 원 이상이다. 여기에 아내, 나, 아들까지 온 가족이 투입되는 노동 시간까지 고려하면 ROI, 투자 수익률이 나오지 않는다. 물가는 오르는데 제사상은 그대로다. 당연히 차림상 정성은 한가득이지만 분기별 한 번꼴로 고생은 우리 몫이다. 이런 고생은 어쩔 수 없다고 하기에는 알면서 바꾸지 않는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몇 년 전 '코코'라는 영화를 봤다. 코코는 멕시코 배경의 디즈니가 기획한 애니메이션이다. 영화는 주인공 미구엘이 '죽은 자들의 세상'에 들어가게 되고, 죽었던 가족을 만나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모험을 그린 영화다. 영화 속 배경이 된 '죽은 자의 날'에 의미가 너무 와닿았다. 현실에 가족들이 죽은 가족을 생각하고 기억해야 죽은 자의 날에 현실의 세계로 망자들이 함께 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이 조상을 집으로 모시는 우리의 제사 문화와 닮아 보였다. 실제 죽은 자의 날은 멕시코 민족 축제다. 이 날의 의미는 세상을 떠난 가족들을 생각하고, 추모하는 의미 있는 날이다.

난 우리의 전통인 제사 문화를 존중한다. 물론 꽤 오랜 시간 제사를 지냈고, 지금은 한 집안의 장손으로서 제사를 직접 모시고 있다. 과거 부모님들이 지낼 때만 해도 생각지 못했던 일들도 실제 제사를 모시며 알게 되는 일이 많다. 형식에 맞춘 풍성한 제사상을 차리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늦은 시간 지내야 하는 특성상 다음날 일상에서 피곤함은 많은 사람들에 이해와 양해가 필요하다.

제사를 기피하려는 의미만은 아니다. 사랑했던 가족을 생각하는데 많은 비용의 제사상과 많은 준비시간이 필요한 것에 부담이 클 뿐이다. 제사일이 돌아올 때마다 사랑했던 가족을 생각하고, 기억하는 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형식적인 상차림보다는 내가 사랑했던 가족을 생각하는 하루라는 의미를 찾아가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전통과 문화도 시대와 현실에 맞게 바꾸어 가는 것도 더 오랜 기간 전통을 보존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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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개인 브런치에도 함께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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