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한 잔에 담긴 열아홉 소녀의 설움

주간함양 김윤아 2023. 10. 1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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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에 숨겨 둔 인생레시피] 안동권씨 34대손 권미숙 여사

전통에는 역사가 숨어 있다. 그래서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음식은 그 가문의 역사가 되기도 한다. 어머니와 할머니, 윗대에서부터 전해 내려오는 고유한 음식은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문화유산이 되었다. 전통음식은 계승해야 할 중요한 문화유산이지만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전수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다. 집안의 전통음식, 옛 음식을 전수해 줄 함양의 숨은 손맛을 찾아 그들의 요리 이야기와 인생 레시피를 들어본다. <편집자말>

[주간함양 김윤아]

 권미숙 여사
ⓒ 주간함양
 
안동 권씨 34대손 권미숙씨는 경남 함양군 수동면 도북리에서 30년째 과수원 농사를 짓고 있다. 그가 함양에서 나고 자란 지는 70년이 되어 간다. 남편과 함께 10년 전 지은 가택에서 평범한 나날을 보내는 권미숙씨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젊은 시절, 흥에 젖은 막걸리의 추억

권미숙씨는 노랫소리가 들리기만 하면 따라 적을 정도로 흥이 많은 사람이었다. 라디오가 귀하던 시절, 라디오에서 이미자 노래가 흘러나오면 가사를 따로 적어두고는 몇 번씩 연습하곤 했다. 그렇게 외운 노래만 1천 곡이 넘는다. 그는 노래에 맞춰 젓가락을 두들기다 보면 상이 남아나질 않았다며 웃음을 보였다.

권씨의 유쾌한 성격을 엿볼 수 있는 추억 한편에는 막걸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면장을 나설 때마다 그의 집에 들러 막걸리를 얻어 마셨다. 그는 그맘때를 회상하며 "우리 집에 오면 안 취해 가는 사람이 없었다"는 우스갯소리를 덧붙였다.

열아홉 소녀의 설움

어머니를 향한 권미숙씨의 사랑은 각별하다. 어린 나이 어머니를 여읜 권씨는 아직도 어머니 생각만 하면 목이 멘다. 그가 열아홉 되던 해 어머니께서는 몸이 좋지 않아 고생하고 계셨다.

당시 남의 사람이 우리 골목에 들락거리면 어머니가 1년 더 산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권미숙 씨는 어린 나이에 결혼시키려는 아버지를 원망하다가도 어머니가 1년 더 산다는 데 어찌 결혼을 안 하겠냐며 시집을 갔다. 이후 딱 1년 지난 즈음 어머니를 보내드렸다.
 
ⓒ 주간함양
  
권미숙씨는 시댁 어른들께서 음식 하시는 것을 보고 들으며 요리를 배웠다. 특히 집안에 계시던 시할아버지와 시아버지가 술을 좋아하셨던 터라 시어머니께서 단지에 술을 자주 담그셨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시어머니 어깨너머로 배우게 된 것이 막걸리였다. 그의 막걸리에는 아무것도 모를 나이 시집온 열아홉 소녀의 남모를 설움이 담겼다.

그는 자신만의 방식을 활용해 막걸리를 담가 먹곤 했다. 특히 우슬뿌리, 돌복숭아나무, 능개나무, 감초 서너 개를 한 솥에 집어넣어 두 번 삶은 물로 술을 만들면 관절에도 좋아 자주 해 먹었다.

권미숙씨는 막걸리와 함께 먹을 때 유독 맛있는 음식이 박잎전이라고 했다. 박잎전은 박잎과 밀가루 반죽으로 부친 전이다. 다른 전보다 식감이 쫀득하고 고소해 술안주로 제격이다.

권씨는 여름철 수확한 박잎으로 전을 부쳐 먹을 생각에 지난 4월 집 앞 텃밭에 모종을 미리 심어두었다고 했다. 그는 "다른 사람은 호박잎으로 전을 부쳐 먹으면 맛있다고 하던데, 나는 박 이파리로 부쳐 먹는 게 제일 맛있다"며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 주간함양
 
함께 즐기는 삶

어린 나이에 시집와 어른들을 모시고 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권미숙씨는 스물넷 나이에 막내를 낳은 후, 부녀회장 직책을 맡을 정도로 다른 이들과 어울리길 좋아했다.

부녀회장을 하며 알게 된 적십자봉사회에서는 지금까지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요즘도 일주일에 이틀씩 적십자 단체에서 나갈 풍물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씨는 이외에도 의용소방대, 자연보호협의회, 주민자치회에서 꾸준히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다른 이들과 함께하며 소소한 재미를 찾아가는 게 그녀가 평탄하지만은 않던 인생을 살아온 방식일지 모른다.

"한때는 사랑했던 사람 한때는 죽고 못 살던 사람 지금은 남이 되어 곁에 없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도 나는, 사랑은 나를 두고 멀리 떠났지만 사랑을 남기고 간 것들은 수많은 별이 되어 밤을 설치네."

권미숙씨가 최근 배웠다며 선보인 노래 가사의 일부다. 그녀는 언제가 가장 즐겁냐는 질문에 노래교실에 가서 노래 부를 때가 가장 즐겁다고 답했다. 한때는 아오리 사과를 따서 밤으로 낮으로 작업해 공판장까지 갖다 놓아도 젊은 구석에 피곤한 줄 몰랐던 시절이 있었다.

일흔이 되어 가는 지금, 그 어린 소녀의 설움을 이해하게 된 탓일까. 지금은 돈이 많이 있어도 소용이 없는 것 같다며 자식 세 남매 건강하고 즐겁게 사는 것이 제일이라 말했다.

막걸리 레시피
    
<재료>
쌀 3되(4.8kg)
누룩 2되(3.2kg)
이스트 반 컵(종이컵 기준)
물 20L

<순서>
막걸리 제조 과정은 크게 재료 준비 과정, 재료 배합 과정, 발효 과정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 쌀 3되(4.8kg)가량을 물로 씻는다.
2. 쌀이 잠길 정도로 물을 붓고 하루 정도 불린다.
3. 솥에 밥수건을 깔고 불린 쌀을 찐다.
4. 고들고들한 고두밥이 완성되면 밥이 잘 펴지도록 깔아 식혀준다.
5. 고두밥, 누룩 2되(3.2kg), 이스트 반 컵, 물 20L를 준비한다.
6. 그릇에 준비한 고두밥, 누룩, 이스트를 넣고 재료가 잘게 부서질 수 있도록 치대준다.
7. 배합한 재료를 항아리에 옮겨 담는다.
8. 항아리에 물을 넣고 재료가 잘 섞일 수 있도록 손으로 풀어준다. 재료가 섞여 물이 뿌연 색이 될 때까지 저어준다.
9. 항아리는 25도 정도 되는 곳에서 4일간 발효시킨다.
*참고: 여름에는 햇빛이 안 드는 실외 서늘한 곳, 겨울에는 비슷한 온도의 실내에 두면 좋다. 이때 항아리는 천 등으로 따로 덮어두지 않고, 발효 과정 동안 막걸리를 젓거나 항아리가 움직이지 않도록 주의한다.
10. 4일 정도 지난 후 발효된 막걸리를 확인한다.
*참고: 막걸리가 뿌연 색을 띠고 콱 쏘는 냄새가 나면, 잘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때 막걸리 색은 누룩의 색에 따라 일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11. 발효시킨 막걸리를 소쿠리와 채를 덧대어 걸러준다.
12. 걸러낸 막걸리를 원하는 통에 옮겨 담는다.
13. 옮겨 담은 막걸리는 냉장고에 보관해 준다.

박잎전 레시피
   
<재료>
박잎 10~15장,
밀가루 2컵(종이컵 기준)
물 2컵(종이컵 기준),
조선간장 1스푼, 들기름 1/3컵(종이컵 기준)

<순서>
1. 준비한 박잎을 흐르는 물로 씻어준다.
2. 박잎의 물기가 빠질 수 있도록 채반에 받쳐 준비해 둔다.
3. 움푹한 그릇에 밀가루 2컵, 물 2컵, 조선간장 1스푼을 넣고 잘 저어준다.
4. 프라이팬을 살짝 달궈준 후 들기름을 둘러준다.
5. 준비한 박잎을 반으로 접어 반죽에 담갔다가 프라이팬에 올려준다.
6. 박잎이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뒤집어 가며 구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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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주간함양)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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