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서 앞다퉈 도입... 난방비 폭탄 막을 수 있는 '이것'
녹색전환연구소는 2주간(9월 10일~25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후 급변하고 있는 유럽사회의 에너지·기후 관련 현장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지역과 마을 단위로 전환의 과정과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다양한 도시와 장소, 연구기관, 의회 등을 방문합니다. 이를 통해 실제로 유럽사회의 성과와 여전히 남은 과제와 한계에 대해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기자말>
[이대원]
독일은 에너지 전환에 있어 선두에 선 국가이다. 하지만 전력생산 부분에서의 괄목한 만한 성장과는 다르게 난방과 교통수송 분야에는 그 속도가 느리거나 사실상 정체된 것처럼 보인다. 2020년 독일의 재생에너지 전환 현황을 살펴보면, 전력생산의 경우 45.4%를 이미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지만, 건물 난방의 경우 15.2%, 교통수송은 7.3%로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 전 세계 최종 에너지 소비량 중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 |
ⓒ REN21 |
▲ 독일의 에너지 전환 상황을 쇠나우 |
ⓒ 녹색전환연구소 |
그렇다면,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난방 및 운송 분야의 경우 빠른 속도로 에너지 전환으로 가는 길이 없는 것일까?
지금까지의 녹색전환 논의는 대체로 석탄,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 중심의 전력생산을 태양광, 풍력, 바이오매스 등 신재생에너지로 바꾸는 것을 큰 틀로 하되, 난방은 그린리모델링을 통한 단열 및 에너지효율 향상, 교통수송 부분에서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배터리로 구동되는 전기차로 전환하는 것이 주요 감축수단으로 논의되어 왔다.
전기차로의 전환은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기업들의 저항과 시간끌기가 있었지만, 배터리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중국의 국가적 지원, 테슬라와 같은 기업의 선도적 진출로 최근 빠르게 방향을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건물 난방 분야는 어떨까? 그린리모델링을 통한 단열 및 에너지효율 향상 외 좀 더 효과적이고 직접적인 방안이 없을까?
최근 독일은 난방 부분의 2050 탄소중립을 위한 해법을 히트펌프에서 찾고 있다.
히트펌프란, 단순하게 설명해 외부의 열을 실내로 가져와 난방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설비다. 이름 그대로 열을 펌프로 끌어오는 것이다. 다만 외부의 열을 실내로 가져오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 에너지원을 무엇으로 하는가에 따라 가스 히트펌프, 전기 히트펌프로 나뉜다.
▲ 독일 프라이부르크 보봉마을의 지열을 이용한 히트펌프. 다가구 주택의 난방 설비로 활용되고 있다. |
ⓒ 녹색전환연구소 |
▲ 보봉과 다른 클라이마이노흐 지역의 공기열을 이용하는 단독주택의 히트펌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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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기에서 냉매 압축 시 필요한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사용할 경우, 나머지 히트펌프를 통한 난방에는 별도의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다. 전기를 통해 에너지를 이동시키는 히트펌프는 화석연료 난방 방식보다 2~5배 효율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례로 4인 가구, 200㎡ 다세대 주택을 기준으로 난방유는 히트펌프보다 연간 25배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독일 정부가 2030년까지 600만 대의 히트펌프를 보급하고, 2050년까지 전체 난방시설의 50% 이상을 히트펌프로 전환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 이유다.
난방분야 에너지 전환을 확고하게 하기
독일 정부는 내년부터 새로 설치되는 난방 시스템의 경우 최소 65% 재생에너지로 가동해야 하고 이를 위해 히트펌프 교체와 지원비를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우선 히트펌프는 다소 고가의 설비이다. 건물의 규모, 용도, 위치 등에 따라 설치비용이 다르지만 작게는 5만 유로(6천 만원)에서 많게는 7만 유로(1억) 정도 든다고 한다.
정부가 설치비의 25~40%를 지원하고 있지만, 개인에게 그 비용이 상당히 부담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보수정당은 교체 목표 시기를 좀 더 길게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심지어 일부 환경단체까지 너무 과한 접근이라고 비판이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위 목표는 신규건물과 공공건물에만 적용하는 선으로 조정이 되었지만, 독일사회가 건물난방 부분의 전환이 탄소중립으로 가기 위한 경로임을 명확히 보여줬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또한 건물 소유자와 거주자가 다를 경우 소유자가 고가의 히트펌프를 도입할 유인이 아직은 적고, 도입한다 해도 이러한 투자가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어 세입자 보호 측면에서 난감한 부분이 있다. 가격뿐 아니라 가정용 히트펌프는 축열조가 필요해 가스 보일러보다 공감을 최소 3배 이상 더 차지한다. 이에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경우 설치공간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지역난방의 경우 대용량 히트펌프(Large Scale heat pump)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한다. 이미 북유럽 국가들 중 노르웨이(14%), 스웨덴(8%), 핀란드(4.2%)가 히트펌프로 지역난방까지 커버하고 있음을 볼 때 이는 충분히 가능하다.
답사 기간 만난 독일 민간 싱크탱크 에네르기 벤데의 얀나 호프(Janna Hoppe)연구원은 현재 독일 사회에 난방 에너지 전환의 장애물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독일뿐 아니라 유럽연합 전체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유례없는 에너지난을 겪으며 히트펌프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만큼, 이러한 장애물을 풀 열쇠를 찾아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에네르기벤데는 건물 난방 분야에서 히트펌프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일관되고 명확한 규제방향을 가지고 실질적인 규제방법을 설계하며 저소득층 지원계획을 수립하고, 전기요금의 적정선을 유지해야한다고 제시했다. 또한 히트펌프 설치에 있어 과도한 행정 절차를 간소화하고 설치 전문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이는 지역사회의 일자리 증대로 연결될 수 있다.
건물난방 분야는 차치하고, 전력 생산 부문에 있어서도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이 10% 밖에 안되는 우리나라의 경우 히트펌프는 너무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한국 정부의 가정난방 부분 에너지 전환 계획은 초보적인 수준이다. 가스보일러에 친환경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이것으로 교체할 경우 지원금을 주거나, 단열을 위한 부분적인 리모델링 정책이 주된 것들이다.
한국의 경우, 독일에서 마주한 하트펌프 관련 애로사항 외에 또 다른 난제가 있다. 먼저 열원과 관련하여 지열 및 수열은 재생에너지로 인정하지만 공기열은 재생에너지로 인정하지 않아,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또한 바닥난방 방식에 익숙하다보니, 공기열 방식의 난방이 낯설어 접근도 또한 낮다. 게다가 히트펌프 전력사용량이 추가될 경우, 전기요금 누진제로 인해 기본요금과 전력량 요금이 크게 오를 가능성이 있어 전기요금 부과 방식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또한 치솟는 난방비로 인해 휘청거리는 겨울을 몇 차례 겪었기 때문에 오히려 경제성 부문을 강조하고, 위와 같은 장애물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다면, 시민들의 수용도가 더 클 가능성이 있다. 가정용 히트펌프는 냉난방을 동시에 할 수 있으며 온수까지 사용할 수 있다. 또한 가스를 소비하지 않고 자연열원을 활용해 난방을 하기 때문에 최근 이슈된 가스비 변동에 따른 가격 폭탄으로부터 자유롭다.
2050 탄소중립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다. 세계는 전력 부문에서 나아가 건물난방 및 수송 부문에서도 과감한 전환을 시작하고 있다. 유럽연합뿐 아니라 최근 미국 뉴욕에서도 2027년부터 빌딩 건축을 승인 받으려면 가스나 석유 보일러 또는 난방기 대신 전기를 사용하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되었고 캘리포니아에서도 히트펌프를 의무화하기 위한 지원을 하고 있다. 영국은 '히트펌프 레디' 프로그램으로 2028년까지 60만 대의 신규 히트펌프 설치를 목표로 한다.
우리도 난방 부분의 탈탄소화를 위한 전략을 보다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히트펌프를 활성화하기 위한 사회적 대화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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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대원 녹색전환연구소 객원연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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