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도 '정치인 현수막' 철거... 마포구청의 숨은 '열일'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박현광 기자]
▲ 난전 중인 마포갑 나란히 걸린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의 현수막. |
ⓒ 곽우신 |
다들 추석은 잘 보내셨나요? 추석 연휴의 여운이 가시지 않네요. 왜 이렇게 늦은 추석 인사냐고요? 그 기간 시민을 위해 '열일'한 지자체를 소개하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9월 28일부터 10월 3일까지 엿새간의 추석 연휴는 말 그대로 '황금연휴'였습니다. 이 기간, 마포구청 공무원들은 시민들의 통행을 방해하는 정치인의 '명절 현수막'을 철거했습니다. 시민 누구도 민원을 제기하지 않았는데 솔선수범한 겁니다.
하지만 모든 현수막을 제거한 건 아닙니다. 마포갑 지역에선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시대전환 당대표를 겸하는 조정훈 의원의 현수막은 남겨뒀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각에선 마치 6개월 뒤 치러질 2024년 총선 때 마포갑에선 양자대결이 펼쳐진다는 인상을 주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제기됐죠. 이는 국민의힘 소속 박강수 마포구청장이 무언의 지시를 받아 최근 국민의힘과 연대를 선언한 조 의원을 밀어주려고 한 것 아니냐는 '음모론'으로 확장하기도 했습니다.
'터무니없는 음모론'은 어떻게 나온 걸까요?
▲ 마포갑 지역 나란히 걸려있던 이은희 전 청와대 제2부속실장과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의 현수막 가운데 이 전 실장의 현수막만 철거됐다. |
ⓒ 박현광 |
더불어민주당에선 마포갑 현역인 노웅래 의원을 포함해 이은희 전 청와대 제2부속실장, 김빈 전 청와대 행정관, 오성규 전 서울시장 비서실장, 홍성문 마포갑 당협부위원장 등 5명, 국민의힘에선 최승재 의원(비례대표)과 이용호 의원(전북 남원시임실군순창군) 등 2명 그리고 시대원환 당대표인 조정훈 의원(비례대표)까지. 총 8명의 마포갑을 노리는 내년도 총선 예비후보군이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마포구청은 무분별한 현수막 게재로 시민 통행에 방해가 될 것을 우려해 연휴 시작 전날인 9월 27일 자체적으로 철거 계획을 세웠다는 입장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시민의 민원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마포구청의 현수막 담당 공무원은 지난 11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별도의 시민 민원은 없었지만 시민들의 통행에 방해될 것을 우려해 9월 27일 자체적으로 철거 계획을 세웠다"고 밝혔습니다. 시민을 위해 추석도 내던지고 없던 일도 만들어 하는 공무원이라니!
취재 결과, 마포구청은 말 그대로 불철주야 일했습니다. 예비후보군 8명 가운데 6명의 현수막을 떼버렸습니다. 마포구청이 떼면 다시 현수막을 붙이는 일도 있었는데, 마포구청은 그것을 또다시 철거하는 정성까지 보였죠.
이에 마포갑 지역에 사는 한 주민은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연휴에 지켜봤는데 A의원이 현수막을 걸면 구청에서 와서 뗐어요. 그럼 딱 그 자리에 조정훈 의원 현수막이 걸렸다니까. 28일 밤에도 떼서 A의원이 다시 거니까 (추석 당일인) 29일 아침에도 떼고. 내가 참 이상하다 그랬어요. 모종의 뭔가가 있지 않고선..."
▲ 박강수 마포구청장이 마포갑 지역에 설치한 현수막. 10월 1일 촬영된 사진이다. |
ⓒ 박현광 |
마포구청의 집행에 문제가 있었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아무리 현역 국회의원이라고 해도 현재로선 해당 지역구 당협위원장이 아니라면 '정당 현수막'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022년 6월 옥외광고물법이 개정된 뒤 배포된 행정안전부의 '정당 현수막 설치·관리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정당명과 함께 당대표, 당협위원장(지역위원장)의 직과 성명을 포함한 현수막'은 정당 현수막으로 볼 수 있지만 '당협위원장이 아닌 지방의원, 지자체장의 현수막'은 정당 현수막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결과적으로 당협위원장을 겸하는 노 의원과 시대전환 당 대표인 조 의원 현수막만 '정당 현수막'으로 분류돼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겁니다. '정당 현수막'은 지자체 허가 없이 설치할 수 있죠.
그래서 나머지 예비후보군들은 불만이 커졌습니다. 일종의 어리광 아니냐고요? 꼭 그렇진 않습니다.
우선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겁니다. 명절에 정치인의 현수막은 관례적으로 허용돼 왔습니다. 실제 같은 기간 대부분 지자체는 '정당 현수막'에 해당하지 않는 현수막을 철거하지 않았죠. 게다가 마포을 지역의 경우 지난 12일까지 정당 현수막이 아닌 정치인의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마포갑만 집중 철거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만합니다.
시점도 이상합니다. 앞서 언급한 행안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마포구청장 현수막 또한 '정당 현수막'이 아니기 때문에 설치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박 마포구청장은 현수막을 걸었죠. 그래서 마포구청 공무원들이 이를 떼어내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마포구청 홍보 담당자는 지난 11일 통화에서 "마포구청장은 9월 26일에 현수막을 달았고, 마포구청이 현수막 철거 계획을 세운 건 9월 27일"이라며 "철거 계획을 세우고 마포구청장이 현수막을 단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 10월 12일 마포을 지역인 상암동 인근에 걸려 있던 현수막. 이는 행정안전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정당현수막으로 볼 수 없다. |
ⓒ 박현광 |
좀 이상하지 않나요? 마포구청장이 현수막을 단 다음날 마포구청 실무진이 시민의 민원도 없이 갑자기 자체적으로 철거 계획을 세운 뒤 마포구청장의 현수막을 떼어냈다는 것 말입니다. 구청장에겐 따로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혹시 구청장이 따로 지시한 걸까요? 하지만 박 구청장은 지난 1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내가 실무진이 결정한 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답했습니다.
이상한 점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마포구청은 10월 1일부터 10월 3일까지는 현수막을 철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가장 집중도가 높은 추석 전날과 당일이 지난 뒤엔 '열일'을 하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마포구민이라면, 추석 당일이 지난 연휴 기간엔, 끈질기게 다시 설치한 예비후보군의 현수막을 볼 수 있었을 겁니다. 참, 박 구청장의 현수막이 10월 1일날 다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왜 마포구청은 선택적 열일을 한 걸까요? 마포구청 홍보 담당자의 답은 이렇습니다. "철거하시는 분들도 쉬셔야 할 것 아녜요." 근데 '상식적으로' 연휴 기간에 일을 해야 한다면 추석 당일엔 쉬고 나머지 연휴 기간에 일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여기에 대한 답으로 "일하시는 분들이 뭐가 나은지 선택한 거예요"라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마포구청 공무원들은 무엇이 더 시민을 위한 것인지를 고려한 것이지 개인의 휴식 따위를 고려한 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우리 마포구청이 애민 정신으로 추석 당일에도 일했던 것뿐인 듯합니다. 앞으로 시민들께서 우리 마포구청 많이 응원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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