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 예능'이 육아 공포 키운다고? 잘못 짚었다

고은 2023. 10. 15.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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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실효성 없는 정책 내걸기보다 과도한 경쟁사회 속 생존본능 낮추는 게 먼저다

[고은 기자]

 
 <금쪽같은 내새끼>(채널A). 육아 솔루션을 내리고 있는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과 박사. 유튜브 캡처본
ⓒ 채널A
 
지난 5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이하 저고위) 간담회에서 <오은영의 금쪽같은 내 새끼>(채널A)가 출산과 육아에 부정적 인식을 심어준다는 주장이 나왔다. 결혼과 출산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꾸고 저출산 정책이 높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미디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논의하는 자리였다. 

유재은 국무조정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위원은 "특히 방송에서 결혼 생활, 육아 관찰 프로그램 등이 인기를 끌면서 청년 세대에 미치는 긍정적 또는 부정적 효과가 분명히 있다"고 말하면서 부정적인 면의 노출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련된 방식으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전파하기
 
 KCC 건설 스위첸 광고 ‘문명의 충돌 시즌2-신문명의 출현’. 10월 12일 기준 조회수 약 3600만 회에 달한다.
ⓒ KCC 스위첸
 
이날 간담회 전문가들은 가족 친화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중장기적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부부의 전쟁같은 육아 현장을 공감과 웃음을 불러오는 에피소드로 나열해 극찬받은 스위첸 광고, <문명의 충돌2: 신문명의 출현>이 좋은 예로 소개됐다. 광고 총괄을 담당한 김소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P)는 성공적 사례를 들어 저출산 대응 캠페인 방향성을 제시했다. 가족의 가치를 주입하는 게 아니라 얼마나 소중한지 보여주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라는 것이다. 

합계출산율 0.7명. 역대 최저 기록을 갈아치우는 상황에서 대통령 직속 기관은 해결책으로 '미디어 인식 개선'을 들고 왔다. 행복한 4인 정상가족을 충실히 재현하는 예능 및 광고를 통해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꾀하겠다는 생각이다. 과연 육아의 고됨을 상쇄하는 충만함을 극대화해 노출한다고 출생률이 올라갈까. 

물론 <오은영의 리포트: 결혼지옥>(MBC),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채널A)가 '비혼 장려 프로그램'이라는 농담이 친구들 사이에서 오간다. 타인의 위태로운 결혼 생활을 보는 것이 피로하고 전문가의 육아 코칭 그대로 육아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는 푸념도 곁들여진다.

그렇지만 이 모든 생각이 미디어 노출 하나로 이어진 건 아니다. 인구 반이 쏠린 서울에서 경쟁해 생존해야 하는 일상에서 결혼과 육아를 선택할 수 있는 경제력과 물리적 시간을 만들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저출생 원인 외면하는 정부에게 건네는 다큐멘터리

이처럼 미디어 노출 몇 번으로 인식 전환을 가져올 만큼 현장의 고민과 삶은 단순하지 않은데, 정부는 탁상공론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 것 같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니라 독을 메꾸는 방법을 정말 모른다면, 정책 개발에 참고할 만한 다큐멘터리를 하나 추천한다.   

EBS 다큐멘터리 <인구대기획: 초저출생 10부>는 '저출생 고령화'라는 인구 구조 변화 앞에서 한국 사회는 어떤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한다. 10대부터 70대까지 전국의 현장과 온라인에서 만난 500명의 투표인단이 참여해 '경제, 교육, 예산, 연금' 분야에서 모의 투표를 실시한다.

예를 들어 1) 출산 및 보육 지원의 확대 2) 노인 돌봄을 위한 예산 확대 중 우선되어야 할 정책이 무엇인지 묻는 방식이다. 2023년 현재 내가 속한 세대, 갖고 있는 가치관에 따라 1차 투표를 진행한 후, 2050년을 살아갈 미래세대를 고려한 2차 투표가 이어진다. 
 
 EBS 다큐멘터리 <인구대기획: 초저출생 10부> 중 한 장면. 전문가 및 현장 투표인단이 초저출생 사회를 벗어나기 위해 한국이 버려야 할 한 가지를 꼽았다.
ⓒ EBS
 
투표 전, 제작진은 전문가 및 현장 투표인단에게 질문을 하나 던진다. 초저출생 사회를 벗어나기 위해 한국이 버려야 할 한 가지를 꼽아보라 한다. 욕망, 불안, 비교, 불공정, 일중독 등이 언급됐고 이 단어들은 사실 '과도한 경쟁'의 다른 이름이다. 남보다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는 비교는 결국 인간을 계속 불안하게 만든다.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조영태 센터장은 인구학과 진화론 창시자인 맬서스와 다윈의 이론에서 해답을 찾은 바 있다. 인간은 '생존본능'과 '재생산본능'이 있고 생존본능이 강하게 작동하는 사람에게는 재생산본능이 기능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은 서울에 인프라, 주거, 일자리 등이 쏠린 지역불균형이 심하기 때문에 생존본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밀도 높은 도시를 해체해 생존 본능을 완화시키는 게 중요하다. 

살기 좋은 사회 만드는 게 먼저다

그럼에도 정부는 근시안적인 정책만 내놓는다. 2016년, 사람들을 큰 충격에 빠뜨렸던 '가임기 여성지도'는 정책을 만드는 사람과 아이를 낳고 키우는 사람의 삶이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는 '대한민국 출산지도' 홈페이지에 전국 243개 지자체별로 20-44세 여성의 인구수를 바탕으로 '가임기 여성 수' 지도를 공개했다.

지도에는 여성 수가 많은 지역일수록 더 진한 분홍색으로 표시했고 시도별로 한자리 수까지 가임기 여성 수를 적었다. 숫자로 환산된 여성들은 큰 모욕감을 느꼈고 "여성을 애 낳는 기계로 아느냐", "여성이 공적 자원이냐"고 거세게 비판했다. 

도대체 어떤 논의를 거쳐 탄생한 정책인지 추적한 결과 "지자체간 자율 경쟁"을 장려한다는 목적이 맨 위에 자리했다. 중앙정부가 아이를 많이 낳는 지자체에 돈을 지원하겠다는 건데, 정작 아이를 낳고 기르는 국민의 삶은 뒷전이었다. 

2023년, 과연 한국의 저출산 정책은 어디에 와있나. 아직도 아이를 낳으면 배우자 군면제를 검토해 본다거나 '오은영 예능'이 육아 공포를 조장한다는 말을 고민의 결과라고 가져오는 게 답답할 따름이다.

젊은 사람들이 결혼하고 출산하도록 유인하는 정책을 찍어내기보다 일단 아동, 청년, 노인 모두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주력했으면 한다. 아이를 낳아 경제적 어려움 없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키울 수 있다고 확신 주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는 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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