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났지만 사라졌다. 유령이 되어버린 아기들
[이준목 기자]
축복 받으며 세상에 태어났어야 할 아기들이, 어른들의 이기심으로 버려지거나 이용 당하고 있다. 13일 방송된 KBS 1TV 시사 르포 <추적 60분> '죽거나 팔리거나, 유령 아기 추적기' 편에서는 아동유기 및 학대, 영아 매매 브로커의 어두운 실상을 조명했다.
2023년 수원 영아 시신 냉장고 유기 사건은 전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올해 6월 수원에서 벌어진 한 아파트 냉장고에서 영아 시신 2구가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수원시청은 출산 기록은 있는데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현장조사에 나섰다. 친모는 처음엔 출산 사실을 부인하다가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아이를 다른 곳에 보냈다고 말을 바꿨다. 아동의 행적을 확인할 단서가 없었던 경찰은 친모의 자택을 압수수색했고 냉장고에서 봉투 안에 담겨있던 영아 시신들을 찾아냈다.
친모는 그제야 2018년과 2019년에 걸쳐 아이를 출산했고 본인이 친자식들을 살해하여 5년간이나 냉장고에 유기했다고 자백했다. 이미 세 아이를 키우고 있던 그녀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고 남겨질 자식들이 걱정되어 자수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친부인 남편은 아내가 아이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사실을 알지못했다고 주장했고, 제작진의 인터뷰를 거부했다.
이 사건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줬고, 출생미신고 아동들의 유사사례에 대한 전국적 전수조사로까지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실제로 수원 사건과 비슷한 영아 살해 및 유기사건이 잇달아 드러났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2년까지 대한민국에서 출생하고도 미신고가 된 아동은 2267명에 이른다. 이중 살인이나 유기, 아동학대등 범죄혐의가 밝혀진 사건만 119건, 현재 수사 중인 사건은 85건에 이른다.
또한 전수조사결과 일부는 영아 매매의 거래대상으로 '유령아기'가 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3월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출산한 아기를 놔두고 산모 홀로 먼저 퇴원했다. 며칠 후 아이의 퇴원 날짜에 맞춰서 본인이 산모라고 주장하는 여성이 나타나 아이를 데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산모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던 병원 측 관계자들은 해당 여성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챘다.경찰은 수사 결과 이 여성은 산모에게 명의를 빌려준 브로커로 드러났다. 그녀는 이미 여러 차례 신생아 매매를 알선한 전력이 있었다.
제작진은 한 포털사이트에서 임신 중인 10대 가출 청소년으로 가장해 출산 이후를 고민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출산기록에 남지 않는 입양과 사례금을 제안하는 글들이 줄을 이었다. 브로커는 산모에게 병원비와 거주지까지 제안하며 유혹했고, 특정 병원으로 가라고 지정해주기도 했다. 제작진이 현장에서 접선하여 정체를 드러내자 해당 브로커는 아이가 불쌍해서 도와주려고 한 것 뿐이라며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제작진은 이번엔 10년 넘게 영아 매매를 해왔다는 전직 브로커를 만났다. 브로커는 아이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음지의 영아 매매시장이 크게 형성되어있으며, 신생아로 갈수록 2천만 원에서 최대 5천만 원까지 몸값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보통 출생 직후 한 달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신이 아이를 낳았다고 속이기가 쉽기 때문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가격이 내려간다고. 구매자가 1천만 원 이상의 단위를 제안하는 데 비하여, 나이가 어린 산모들은 몇백 만원 단위도 큰 금액이라고 생각하여 중간에 브로커가 가져가는 돈이 늘어나게 되는 구조다.
또한 일선 브로커들 뒤에는 '조직'들이 존재하고 경쟁체제가 형성되어있다. 이들은 보이스피싱조직처럼 영업팀과 수거책 등 역할을 세분화하고 통장계좌를 따로 개설하는등, 체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병원에서 떼야하는 출생신고서를 위조해주는 업체도 존재한다. 전직 브로커는 특정 지정병원에서는 출생기록을 바꿔서 입양을 원하는 구매자의 정보로 위조하여 산모의 기록을 세상에서 완전히 지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브로커들은 경찰에 적발되면 불행한 산모와 유기될 뻔한 아이를 구하는 일을 했고 불법을 저지르지 않았다며 도리어 당당한 태도를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아동 전문가는 "합법적인 기관으로 안내하는 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불법입양을 안내하거나 생활비를 대주겠다고 하는 것은 결코 선한 의도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입양특례법에 따르면 허가를 받지 않고 입양 알선시에는 3년 이하의 징역 혹은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또한 아동복지법 71조에는 아동 매매죄에 최고 10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미혼모나 어린 산모들은 브로커의 유혹을 받는 표적이 되기 쉽다.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싱글맘 손정연(가명) 씨는, 온라인과 모바일을 통하여 브로커에게 아이가 신생아인지 확인하고 경제적 지원을 제안받은 사실이 있었음을 고백했다.
손씨는 한때나마 유혹에 흔들렸다는데 죄책감을 드러내며 "아이는 잘못이 없는데 내기 입양을 보내고 좌지우지할수 있다는게 잔인하게 느껴졌다."고 토로했다. 다행히 현재는 마음을 다잡고 아이를 잘 키우겠다고 결심한 손씨는 "돈많이 벌어서 죽을때까지 아이를 뒷바라지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러한 아동매매 범죄를 적발하기 유독 어려운 것은, 일반적인 피해자(영아)의 고소-고발이 애초에 불가능하고 산모와 브로커, 구매자 사이에서 철저히 음성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불법 입양을 희망하는 구매자들은 어떤 사람일까. 첫 번째는 개인적 사정으로 아이를 원하는 경우다. 신체적으로 아이를 갖기 힘든 사정이 있는 부부나, 결혼과 출산 대신 아이만 원하는 사람들이 구매자가 되는 경우가 있다. 반면 이미 아이가 있거나 다자녀를 키우고 있는 상황에도 그저 아이를 좋아해서 입양을 원하는 이들도 있었다.
지난 5월에는 충남 아산에서 아동 매매 사건이 드러났다. 친모가 브로커에 아이를 넘긴 직후 후회가 들어 뒤늦게 경찰에 신고한 것. 아이를 데려간 구매자는 놀랍게도 갓 스무살 성인이 된 미혼 여성이었고 본인은 신체적인 장애로 아이를 갖기 어려운 상태여서 아이를 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구매자는 아동매매죄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더 심각한 두 번째 사유는, 아이 자체를 원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이해타산이나 만족을 위하여 아이를 이용하려는 경우다. 2013년에는 신생아를 불법입양하여 보험사기를 저지른 일가족이 검거됐다. 2011년에는 인터넷으로 입양한 아이를 상습폭행하여 뇌사 상태에 이르게 한 양부모의 사건이 적발되기도 했다.
아동 전문가 공혜정 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이게 바로 불법입양의 문제다. 구매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불법으로 개인 입양을 하는 경우에는 그 어떤 검증 과정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무슨 목적과 동기로 아이를 입양하려는지, 만일 아이를 데려가서 출생신고를 안 하면 우리는 이 아이가 세상에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처벌보다 중요한 것은 거래의 대상이 된 '아이는 어떻게 크고 있나'는 문제다.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목숨을 잃거나 보호자를 잃고 아동보호시설을 전전해야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국회는 2023년 아이가 출생하면 병원을 통하여 지자체가 곧바로 통보하는 '출생통보제', 위기상황에 놓인 임산부의 익명 출산을 지원하는 '보호출산제' 법안을 잇달아 통과시키며 개선에 나섰다.
다만 보호출산제는 미혼모에 대한 편견을 강조하여 아동 유기를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로 여성계에서는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제도 내에서 구체적인 상담과 지원 과정을 통하여 임산부의 양육 포기를 얼마나 방지할 수 있는가에 제도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진단한다.
미혼모 한지영(가명)씨도 싱글맘으로 당초 아이 입양을 고민하다가 상담 이후 바꾼 사례다. 한씨는 현재 아동-산모 지원단체인 '베이비박스'로부터 자립지원을 받고 있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겠다는 결심이 들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현재 유령아기에 대한 전수조사는 병원에서 출생했으나 신고되지 않은 아이들에게만 한정되어있다. 병원에 아닌 곳에서 음성적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부모가 직접 신고하지 않는 이상,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로 알려지지못한채 진짜 유령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죽고나서야만 뒤늦게 그 존재를 알리게 된 안타까운 영아들의 숫자는 최근 10년간 최소 32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가뜩이나 출산율이 날로 떨어지는 초저출생 시대, 태어난 아이들부터 제대로 지켜야한다는 호소를 우리 사회가 귀담아들어야 할 이유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