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앞에서 부부싸움 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김은미 2023. 10. 1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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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롭게 풀어가는 모습 보여줘야... 화해의 손길 먼저 내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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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미 기자]

 아이
ⓒ 픽사베이
 
부부는 서로의 얼굴과 얼굴을 바싹 붙이고 쉴새 없이 말과 말을 주고받았다. 부부 사이에 짧은 머리를 한 예닐곱 살 된 남자아이와 그보다 두어 살 어릴 것 같은 여자아이가 엄마와 아빠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정류장 앞에서였다.

어스름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저녁, 사람마다 바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바바리코트를 입은 남성은 전화를 받으며 걸었고, 장바구니를 든 젊은 여인의 걸음이 가빠졌다. 가만히 올려다본 아파트 창의 노란 불빛들이 따뜻한 온기를 뿜어냈다. 부엌에서 보글보글 찌개가 끓고 있기를 기대하게 되는 긴장 풀리고 배고픈 시간이었다.

그때 버스가 쓱 그들 옆을 흐르듯 지나쳐 멈췄고 문이 열리고 나는 거리에 섰다. 여전히 부부는 서로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때야 비로소 알았다. 부부가 말다툼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지나가는 사람도 자신들을 넋 놓고 바라보는 자식들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된소리 발음이 섞인 말들을 거칠게 내뱉고 있었다.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었다. 모른 척 지나쳤지만 내내 불편한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

거리에서 부부가 다투는 것을 목격하는 일은 일반적이지는 않다. 대게는 좀 흥분해도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생각에 다툼을 그치게 마련이까.  집으로 오는 동안 계속 마음이 불편했던 건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그들의 태도가 못마땅해서가 아니었다. 아이들 때문이었다. 내게도 싸우는 부모가 있었다.

찬바람이 온몸을 파고들어 부르르 떨며 눈을 떴을 때 멀리서 희미하나마 떠드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사방이 어둠뿐인데 우리 집 마당에 전깃불은 밝게 빛났다. 마당에서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게 보였고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엄마를 때리다 물건들을 마당으로 내던지고 있었다. 다시 눈을 감았다. 언니 등에 업혀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깨어났다를 반복했고 어서 부모의 싸움이 그치고 집에 들어가 편히 잘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부모님이 다툴 때 심장이 빨리 뛰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어릴 때 부모님은 이혼하셨고 더는 부모의 다툼을 목격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도 누군가 다투는 모습을 보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곤 했고 더는 걸을 수 없을 만큼 힘들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미국 심리학회에서는 자녀가 보는 앞에서 부부싸움 하는 것을 아동학대의 하나로 간주한다. 부부싸움이 신체적, 정서적, 성적 학대와 동일 수준의 아동학대라는 것이다. 부부싸움은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정서불안과 더불어 학습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우리의 뇌는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지속적인 스트레스에 노출될 경우 기억력 사고력 추리 등 고등 정신 능력을 관장하는 전두엽 부위와 학습과 기억, 감정 행동과 일부 운동을 조절하는 해마가 잘 발달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부부가 아이 앞에서 큰 소리로 싸우는 것뿐만이 아니다. 함께 살지만 서로 말을 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오은영 리포트 <결혼 지옥>에서 '5년째 음소거부부'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었다. 이들 부부가 밥을 먹다가 아이 영어학원 문제로 다투는 장면이 나온다. 부부가 식탁 앞에서 내내 말다툼을 벌이던 것을 보다 못한 아이가 싸우지 말라고 하자 엄마가 아이에게 당당하게 말한다. "싸우는 거 아니야. 대화야."라고.

그들의 다툼이 크게 거친 느낌은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처럼 말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비록 그들이 아이들 앞에서 싸우는 모습에 인상이 찡그려져 그만했으면 했지만, 나도 아이들 앞에서 남편과 다투다가 "싸우는 거 아니야. 대화야." 라 말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을 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은영 박사는 말한다.

"아이들이 볼 때 부부가 분명히 싸우고 있는데 싸움을 대화라고 말하면 혼란스러워집니다. 또한, 오히려 대화를 힘든 것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아차 싶었다. 오 박사의 솔루션은 이랬다. 자녀들 앞에서 다투다가 자녀들이 "싸우지 마" 라 한다면 "우리가 너무 많이 싸우지. 앞으론 조심할 게"라고 해야 한다고.

모든 부모는 자녀가 잘 자라기를 희망한다. 공부도 잘하고 건강하고 높은 자존감으로 성취와 성공,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그렇다면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부부가 서로 친밀할수록 아이의 자존감은 높아진다고 한다. 부부가 서로를 대하는 방식으로 아이는 자신의 가치를 매기기 때문이다.

다툼을 지혜롭게 풀어가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줘라. 다투지 않고 살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다투었더라도 화해하며 맞춰가는 것이 중요하다. 하루 해가 지기 전 잘잘못의 유무를 떠나 전화나 문자로라도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자.

부부뿐 아니라 아이에게도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아이 앞에서 다투지 않는 것인 최선이지만, 피할 수 없었다면 아이에게도 사과하자. 저녁 식탁에 사과라도 한쪽 깎아 놓아 쑥스러운 마음을 달래며 스트레스를 준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전하자.

엎지른 물을 끌어모아 담을 수는 없지만, 물을 다시 떠 올 수는 있다. 이전보다 덜 싸우고 더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자녀도 노력하고 성장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실수와 실패, 아픔과 고통을 이겨내는 모습을 목격한 아이는 누구보다 강하게 자랄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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