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당동 가보셨나요?

구정하 2023. 10. 1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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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시장 ‘힙+신당동’ 별칭… 어묵·주류 ‘이포어묵’ 유명
트렌디한 카페+전통 시장 분위기… 경동시장, 광장시장 등
스타벅스 경동1960점. 영화관의 계단식 좌석 모양을 유지했다. 스타벅스코리아 제공


지난 11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인삼가게와 쌀가게 사이에서 한 중년 여성이 동행을 향해 “왜 이렇게 헤매는 거야”라고 말을 건넸다. 그의 딸로 보이는 20대 여성은 “여기가 극장이었는데 카페로 바꿨대. 요즘 핫한 데야”라고 답하며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갔다. 이들이 향한 곳은 ‘스타벅스 경동1960점’. 스타벅스코리아가 1960년대에 지어진 뒤 폐극장이 됐던 경동극장을 리모델링해 지난해 12월 문을 열었다.

‘전통시장’과 ‘트렌드’.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두 단어지만 전통시장은 요즘 가장 트렌디한 장소 중 하나다. 20~30대들이 삼삼오오 노포에서 먹거리를 즐기고, 여기저기서 인증샷을 찍는다. 젊은이들이 모이니 가로수길이나 성수동에 있을 법한 세련된 카페들도 속속 들어선다. ‘시장은 가격이 투명하지 않다’는 인식 때문에 물건을 파는 상점을 찾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시장통에 활기가 돌고 있는 것 하나는 분명하다.

젊은이엔 색다름, 기성세대엔 향수
스타벅스 경동1960점의 입구는 카페라고 상상하기에 어려운 모습이었다. 경동시장 사거리에서 비릿한 생선 냄새와 쿰쿰한 한약 냄새가 풍기는 노점들 사이를 걷다 보면 ‘2층 홍삼·수삼·건삼 도매’라고 쓰인 오래된 계단이 나타난다. 3층까지 이어지는 계단 끝에 거대한 규모의 스타벅스 매장이 자리 잡고 있다. 중년 이상이 많았던 시장 거리와 달리 카페 안에는 앳된 얼굴을 한 손님들이 의자에 기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시장과 카페의 공존은 적잖이 낯선 풍경이었다.

‘스타벅스 경동196점’ 바로 옆의 ‘LG 금성전파사 새로고침센터’도 힙한 곳이다. LG전자가 레트로 콘셉트로 만든 이색 체험 공간이다. 1958년 설립된 금성사가 선보였던 흑백TV·냉장고·세탁기 등을 전시해 기성세대는 향수를 느끼고, 젊은 세대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꾸몄다. 평일 오후인데도 10명의 방문객이 신기한 듯 센터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다.

서울 중구의 서울중앙시장도 ‘힙당동(힙+신당동)’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떠오르는 힙플레이스다. 어묵과 주류를 함께 파는 ‘이포어묵’이 가수 성시경씨의 유튜브 채널에 나오면서 유명해졌다. 3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이 이포어묵을 찾는다. 이곳에서 일하는 50대 김모씨는 “우리 가게가 인터넷 여기저기에 많이 뜨는 모양”이라며 “‘유튜브를 보고 왔다’고 말하는 손님들이 많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시장에서 만난 학생 김모(27)씨는 “요즘 SNS에서 유명한 식당이나 카페는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져서 싫증이 나는 게 사실”이라며 “오늘 와보니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전통시장이 오히려 색다르고 재밌어서 앞으로도 시장들을 찾아다녀볼까 싶다”고 말했다.

같은 날 서울 종로구의 광장시장은 20~30대와 외국인들로 붐볐다. 광장시장은 육회와 빈대떡 등 길거리 음식을 무기로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가죽자켓이나 부츠로 멋을 낸 모습이었다. 미국에서 온 영화감독 써머 양(33)씨는 “한국의 전통적인 거리를 보고 싶어서 광장시장을 찾았다. 특유의 분위기가 멋져서 같이 온 친구에게 ‘여기서 영화를 찍으라’고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며 웃었다.

광장시장에는 요즘 인기 있다는 카페들의 분점도 여럿 들어섰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어니언’, 제주시의 ‘아베베베이커리’, 충남 예산의 ‘사과당’ 등이 이곳에 매장을 냈다. 이들은 시장 내 다른 가게들과 이질감 없이 어우러지는 특색있는 외관 디자인과 이름난 빵맛으로 손님을 끌어모으고 있다. 평일에도 자리가 만석이라 운이 좋아야만 앉아서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시장 상인들은 최근 젊은 방문객이 늘었다고 입을 모았다. 4년 전부터 광장시장에서 빈대떡을 팔고있는 강모(60)씨는 “코로나19가 유행할 무렵 손님이 줄긴 했지만, 나이가 어린 손님들이 꾸준히 눈에 띄게 늘고 있는 추세”라며 “오후 6시 이전에는 외국인이 많은데, 퇴근 시간 이후인 6시부터는 20~30대 손님들이 본격적으로 들이닥친다”고 말했다.

먹거리 확장 한계… 서비스 등 개선 필요
하지만 북적거리는 시장통은 음식이 아닌 물건을 파는 상인들에겐 동떨어진 세상이다. 젊은 손님으로 만석인 강씨의 빈대떡집 바로 옆에 위치한 유모(41)씨의 홍삼 가게는 조용했다. 손님이 없어 유씨는 가게 안쪽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유씨는 “길거리에는 젊은 사람들이 늘어나는 게 보이지만 우리 가게 매출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며 “시장에 오는 사람들은 다 음식을 먹으러 오는 거지, 물건 파는 가게에는 발도 들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통시장 안에 있는 가게. 구정하 기자


전통시장이 소위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지 오래지만, ‘시장 가격은 불투명하다’는 인식이 여전히 남아있다. 직장인 이모(29)씨는 “올여름 휴가 때 강원도에 있는 시장에 놀러 갔는데 똑같은 반건조오징어 제품을 한 가게에서는 10만원에, 다른 가게에서는 2만5000원에 팔고 있더라”며 “더 싸게 물건을 파는 곳조차 못 믿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장도 손님들을 상점으로 끌어들이기보다는 특색있는 먹거리를 내세우며 활로를 찾고 있다. 김영백 경동시장상인연합회장은 “재래시장을 제대로 경험해본 적 없는 젊은이들에게는 식당이나 카페가 진입장벽이 낮다”며 “오는 28일부터는 건물 옥상을 활용해 ‘푸드트럭 야시장’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동시장은 스타벅스코리아에 스타벅스 경동1960점을 열자고 먼저 제안했다.

서울 용산구 용산용문시장은 이달 ‘용금맥 축제’를 열고 있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시장 내 점포에서 안주나 먹거리를 구매하면 맥주 무료교환권을 나눠주고 노상 테이블에서 먹을 수 있도록 하는 행사다. 충남 예산군의 예산시장은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와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메뉴를 개발해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이전에는 하루 20~30명이 방문하는 게 보통이었는데, 지난 1월 프로젝트를 시작한 뒤로 주말이면 1만~1만5000명이 방문한다.

노후화된 시설을 고치는 것도 숙제 중 하나다. 스타벅스는 경동시장 내 주차장 출입구를 도색하고, 시장 공용 시설의 노후화된 간판을 새로 설치하는 등 공용 시설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구정하 기자 g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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