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남자 마음 돌리려는 여자, 그가 꺼낸 가장 아픈 기억
[조영준 기자]
▲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마이디어> 스틸컷 |
ⓒ 부산국제영화제 |
<마이디어>
한국 / 2023 / 25분
감독: 전도희, 김소희
출연: 전도희, 김민철, 박윤희
대학생 가을(전도희 분)은 청각 장애가 있다. 불편함이 아주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학과에서도 가장 우수한 학생으로 졸업을 앞두고 일을 정도로 자신의 삶을 책임지며 열심히 살아왔다. 종종 불편한 일도 겪는다. 소통의 문제보다는 배려를 가장한 차별이다. 다른 학생들과 함께 작업해야 하는 졸업 작품에 참여할 것인지 묻는 담당 교수의 모습과 같은 것. 혹시 부담스러울까 걱정이라는 그 말이 가을은 자신을 위한 것인지 다른 학생을 위한 것인지 의문스럽다.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어플 '마이디어'를 소개받게 되는 것은 가까운 친구 미진과 민규로부터다. 학교 선배인 성진이 만든 졸업작품이라는 이 어플은 당사자의 얼굴을 기반으로 AI를 형성해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가을은 핸드폰 속의 남성과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전도희, 김소희 감독의 공동 연출작인 영화 <마이디어>는 청각 장애를 가진 대학생 가을이 AI 애플리케이션을 만나 그와의 대화에 빠져들기 시작한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SF적인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인간의 보편적인 감성과 장애를 가진 인물의 심리를 짧은 시간 안에 잘 표현해내고 있다. 특히, 연출과 함께 주연인 가을 역을 맡아 높은 수준의 연기를 보여준 전도희 감독의 모습은 영화의 모든 설정을 아울러 조금의 의구심도 낳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보이지 않아도 괜찮아. 느낄 수 있어."
가을이 현실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한 '마이디어' 속 AI 남성과의 관계에 빠르게 빠져들기 시작하는 것은 일종의 호혜성 때문이다. 자신을 넘치게 배려하지도 않고, 원하지 않는 것을 도우려고 하지도 않는 대상. 자신이 원하는 때에 언제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고, 특별히 관계의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되는 상대가 바로 AI이다. 영화 <그녀>에 등장하는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관계라고 하면 조금은 쉬운 설명이 될 수 있을까.
다만 영화가 두 사람의 관계를 활용하는 것은 감정이 무르익는 로맨스의 정점이 아니라 처음 주어졌던 어플의 자막 기능을 제거하며 소통을 단절시키면서부터다. 현실 속에서 가을이 겪는 소통의 어려움과 감정적 단절을 깊이 마음을 기대고 있던 AI와의 관계에서도 발생시키며 그 어려움의 층위를 더한다. 심지어 상대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알 수 없지만, 자신은 상대가 전달하려는 의미를 알 수 있는 현실과 완전히 반대로, 자신이 상대가 하는 말의 뜻을 제대로 알아차릴 수 없는 상황에서의 단절은 가을에게 새로운 종류의 장애물이 된다.
영화의 모든 설정이 경계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들을 감정적으로 무력화시키거나 물리적으로 단절시키기 위함은 결코 아니다. 영화 마지막에서 등장하는 두 사람(가을과 AI)의 재회와 마지막 불꽃놀이 장면은 되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공감과 연결의 가능성에 대해 말한다. 두 사람의 모습을 현실의 문제로 다시 가져와 치환해 내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외부적 요인에 의해 관계에 어려움이 생기게 되더라도 마음을 놓지 않을 수만 있다면 서로를 느낄 수 있다는 것, 이 영화가 보여주는 드라마의 결실이다.
▲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덕희는 OO이 있다> 스틸컷 |
ⓒ 부산국제영화제 |
<덕희는 OO가 있다>
한국 / 2023 / 30분
감독: 염민정
출연: 전려은, 강길우
염민정 감독의 영화 <덕희는 OO이 있다>는 덕희(전려은 분)가 P(강길우 분)에게 보내는 서간체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신의 감정을 항상 솔직하게 말하고 다니는 덕희는 P를 향해 자신의 사랑을 끊임없이 고백하고, P는 그녀를 친구로서 챙겨주고자 하면서도 그 마음은 계속해서 밀어낸다. 그러니까,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되는 이 편지는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고자 하는 한 여성의 고백이자 사랑에 대한 성찰이다.
"너는 내 인생에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그래서 네가 불러주는 이름이 참 좋아."
이 작품이 기저에 안고 있는 것은 누군가를 홀로 사랑하기 시작한 이들이 마음에 대한 것이다. 사랑 중에서도 가장 위약하고 간절한 자리에 놓인 이 감정을 영화는 P의 사랑을 갈구하는 덕희의 마음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다. 어떤 이유로든 함께이고 싶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해서라도 마음을 돌리고 싶은 마음. 영화는 이 마음을 덕희의 솔직하면서도 직설적인 면을 통해 풋사랑의 어설픔을 투영해내고자 하고, 또 영화적 표현을 빌어 요동치는 심리를 시각화한다.
그런 그녀가 어린 시절 갑자기 가족을 떠나버린 아버지의 기억을 꺼내 자신의 결핍으로 인정하고자 하는 것은 이 영화의 가장 아픈 부분이다. 자신의 사랑이 상대를 오롯이 좋아하는 마음이 아니라 그가 줬던 안정감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이해하려는 것은 이 상황의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자신에게 씌우려는 모습처럼 느껴진다. 혹, 그 결핍이 실제로 아버지의 부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결핍을 마주하고 나면 원하는 모습의 사랑을 할 수 있게 되지 않겠냐는 그녀의 말이 어쩐지 공허하다.
덕희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지 않는 것이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곁을 맴돌고, 매일 먼저 만나자는 P의 모습을 영화 곳곳에 배치하는 것은 이 영화가 덕희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위로다. 아무것도 너의 잘못이 아닌 것처럼, 자신의 잘못도 아니라고 말하는 그녀의 말을 조용히 따르는 무언의 지지. 이 영화의 타이틀에 놓인 공백 속에는 매 순간 자신의 사랑을 분석하고 의심하고 재단하는 동안에 시시때때로 바뀌는 그의 감정이 놓여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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