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미의 더쿠미] ‘진격의 거인’, 자유라는 희망?…절망에, 또 절망을

권혜미 2023. 10. 1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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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눈을 반짝이면서 시청했던 ‘인생 만화’ 한 편쯤은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요?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세계관이지만, 만화 속 인물들과 스토리에 우리의 삶은 더 즐거워지거나 위로를 받기도 하죠. ‘더쿠미’는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누구나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장르의 만화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주>

“인류가 언젠가 이 공포에서 해방되는 날이 온다면 하고, 계속해서 목숨을 바쳐왔어.”

50m의 높은 벽을 뚫고 출몰한 식인 거인. 닥치는 대로 사람을 먹어치우는 거인들에 마을 주민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소년 에렌 예거는 엄마가 거인에게 먹히는 충격적인 모습을 보고 결심한다. 이 거인을 몰살하기 위해 자신의 심장까지 바치겠다고. 

2009년 일본 주간지 소년 매거진에서 처음 연재된 ‘진격의 거인’은 2021년 34권까지 총 12년간 연재됐다. 일본 만화 역사상 16번째로 발행 부수 1억 부를 돌파했으며, 애니메이션 및 실사 영화로도 제작되는 등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사진=유튜브 채널 '애니 플러스' 캡처
‘진격의 거인’은 거인을 향한 복수심에 조사병단에 들어간 에렌과 그의 친구 미카사, 아르민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인류가 거인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 3중으로 쌓은 방벽(월 마리아, 월 로제, 월 시나)이 100년 만에 나타난 초대형 거인에 의해 함락되고, 이를 막기 위해 거인과 조사병단과의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다. 에렌은 거인을 전멸시킨 뒤 벽 너머의 세상을 향해 나아갈 희망을 가진 채 힘겨운 전투에 뛰어든다. 신체 어디를 공격해도 재생되는 거인의 유일한 약점은 목의 뒷부분으로, 칼날에 이곳이 베인다면 거인은 엄청난 열기를 내뿜으며 죽는다.

‘진격의 거인’이 일반 소년 만화처럼 거인과 조사병단의 싸움으로만 이야기가 전개됐다면, 21세기 최고의 명작이라는 평가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꿈과 희망이 넘치는 다른 만화와 달리 ‘진격의 거인’은 회차를 거듭할수록 암울한 진실만 드러날 뿐이다. 에렌의 진짜 정체는 자신이 그토록 증오했던 거인의 혈족, 즉 에르디아인이자 거인 중에서도 가장 최강자인 ‘진격의 거인’이었고, 거인의 계승자가 된 뒤엔 수명이 13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사진=유튜브 채널 '애니 플러스' 캡처
에르디아인이 사는 파라디 섬에서 벗어나면 푸른 바다가 있는 낙원이 펼쳐질 것이란 에렌의 믿음도 철저히 깨진다. 파라디 섬 밖에 있는 국가 마레는, 오랫동안 에르디아와 전쟁을 벌이며 이들을 핍박해왔다. 초대형 거인이 등장해 벽을 부순 것도, 결과적으로 에렌의 엄마를 죽게 한 것도 모두 마레 때문. 하지만 마레에게도 깊은 사연이 있다. 과거 거인의 힘으로 초대강국이 된 에르디아 제국은 전 세계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영토를 빼앗으며 결코 용서받지 못할 짓을 저질렀다. 마레는 에르디아 제국에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국가였다.

결국 ‘거인’이라는 통제 불가능한 힘, 사람들의 탐욕,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으로 에르디아와 마레 사람들 모두 고통만 받고 있을 뿐이다. 실낱같은 희망을 찾기 위해 떠난 여정의 끝은 절망이었고, 무수한 사람들의 희생만 남기고 말았다. ‘진격의 거인’에는 악인도, 선인도 없으며 모두가 피해자일 뿐이라는 사실 하나만 명확해진다.

사진=유튜브 채널 '애니 플러스' 캡처
자유. 누군가에는 너무도 당연한 꿈이 좌절된 에렌은 결국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한다. 잠들어있던 수십만의 거인을 깨워 빠른 속도로 진격해 모든 걸 파괴하는, 일명 ‘땅울림’을 시작한 것이다. 인류 대학살을 저지르는 에렌이지만 그 누구도 감히 에렌에게 돌을 던지지 못한다. 에렌이 품었던 밝고 뜨거운 정의의 불씨가 어떻게 섬멸되는지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에렌의 고뇌와 투쟁 방식이 끔찍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결국 어린 시절 자신을 구해준 에렌을 보고 깨달음을 얻은 미카사의 대사가 곧 ‘진격의 거인’의 주제를 관통한다.

“그래. 이 세상은 매우 잔혹하다. 그리고, 무척 아름다워.”

권혜미 기자 emily00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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