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in전쟁사]맥없이 뚫린 이스라엘의 '국경장벽'…수비가 더 어려운 이유
고대부터 수차례 뚫렸던 중국 만리장성
첨단 기술 발전해도 중요한 건 '군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무장정파, 하마스(Hamas)가 이스라엘의 국경장벽을 무너뜨리고 접경지역을 침공해 민간인을 학살한 소식이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대규모 지상군 작전을 통해 하마스를 뿌리 뽑겠다고 나서면서 엄청난 숫자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는데요.
특히 이스라엘 정부가 지난 2021년, 11억달러(약 1조5000억원)의 막대한 예산을 들여 가자지구와 접경지역 전체에 설치한 국경장벽이 손쉽게 뚫린 정황이 드러나면서 안보 우려 또한 커지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정보력을 자랑하던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Mossad)는 물론 이스라엘군도 정보력과 안보 능력에 큰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그동안 이스라엘 정부는 국경장벽을 감시카메라, 적외선 감지기 및 자동발사 기관총 등 첨단 무인시스템으로 무장한 '스마트장벽'이라고 홍보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전투에서 이 스마트장벽이 하마스 부대원들이 끌고 온 민간 불도저에 허무하게 무너지는 모습들이 공개되면서 이스라엘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죠.
전 세계 군사전문가들은 이스라엘군이 국경 지역 안보를 국경장벽에 지나치게 의존해왔다며 아무리 무인시스템이 발전해도 안보의 핵심은 군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죠. 이에 따라 스마트장벽 체계를 국경에 도입하려고 준비 중인 다른 나라들의 안보 전략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번 시간에는 이스라엘의 이 스마트장벽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역사 속에서 강대한 방어선의 상징이었지만 생각보다 손쉽게 무너졌던 여러 장벽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뉴스(News) : 설치 2년 만에 무너진 이스라엘의 '스마트장벽'먼저 뉴스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1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현지 매체인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이스라엘 방위군(IDF) 지난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침공할 당시 전체 65km에 이르는 국경장벽 지대 중 29곳이 하마스에 의해 무너졌으며, 이를 통해 하마스 무장 조직원들이 기습공격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장벽은 지난 2021년 12월, 이스라엘 정부가 완공을 발표한 이후 불과 2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너진 것이라 더욱 큰 충격을 주었죠. '아이언 월(Iron Wall)'이라 불리는 이 국경장벽은 가자지구와의 접경지역 전체를 휘감고 있는 장벽으로 3년 6개월간 11억달러 이상의 자금이 투입돼 설치됐고, 수많은 감시용 카메라와 레이더, 자동발사 기관총과 함께 땅굴을 감지할 수 있는 센서까지 매설됐습니다. 완공 발표 당시에는 하마스 침공을 완벽하게 방어할 수 있는 스마트장벽이라고 이스라엘 정부가 대대적으로 홍보했죠.
그런데 지난 7일, 하마스는 이 장벽이 불도저에 의해 손쉽게 허물어지는 모습을 공개했습니다. 하마스 군은 먼저 국경장벽 일대 통신망을 마비시킨 뒤, 주요 29개 지점에서 불도저, 폭탄, 로켓포 등으로 장벽을 허물거나 행글라이더를 타고 장벽을 그대로 뛰어넘는 수법으로 이를 무력화시켰다고 IDF는 밝혔습니다.
◆역사(History)1 : 명성보다 자주 뚫렸던 중국의 만리장성역사적으로 이러한 국경장벽이란 개념은 고대 중국의 만리장성에서 출발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있는 만리장성은 보통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황제로 알려진 진시황(秦始皇)에 의해 건립됐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춘추전국시대부터 수 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는데요.
독일의 저명한 중국학자였던 카를 비트포겐(Karl Wittfogel)은 1957년 '동양적 전제주의(Oriental Despotism)' 라는 책에서 만리장성은 중국 농경문화를 구성케 한 일명 '수력사회(hydraulic society)'의 산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수력사회란 거대한 강을 낀 반건조 지역에서 태생한 중국 문명이 치수 사업을 통해 구축된 막강한 관료제로 인해 전제 왕조 체제로 발전했다는 이론입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만리장성이 위치한 구간들은 모두 연 강수량 400㎜ 미만 지역으로 관개수로를 이용한 농업의 한계선에 지어졌으며, 이것은 고대 중국의 치수 농업 문화가 미칠 수 없는 구간이었다는 것이죠. 만리장성 이북은 유목민족이 사는 곳이며, 그들의 주기적 침략을 막기 위해 쌓은 것이 만리장성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명성과 달리 만리장성은 여러 차례 뚫렸는데요. 중국의 5호 16국 시대가 시작된 4세기 초 이후 여러 차례 북방 유목민족의 침략이 발생할 때마다 생각보다 손쉽게 뚫렸습니다. 이후 9세기 당나라, 12세기 송나라 때도 유목 민족들에게 만리장성은 돌파됐죠. 17세기 명·청 교체기에는 만리장성 방어선에 모든 병력을 집중시켰다가 역으로 후방의 농민반란을 막지 못해 명나라가 멸망하면서 청나라군이 손쉽게 만리장성 안으로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만리장성이 마지막으로 국경장벽으로 기능한 1932년 장성전투에서도 만리장성은 손쉽게 뚫리는데요. 일본군에 의해 여러 관문이 무너져내리면서 일제의 대륙침략 길이 열리게 됐고, 이후 일제의 침공을 막고자 중국군이 황하 제방을 터뜨리면서 수천만 명이 목숨을 잃는 사태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만리장성이 이처럼 제대로 적군을 막지 못했던 이유는 방어선이 너무 길고 후방 방어선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계속 산맥이 연이어 존재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만리장성 구간 아래부터 황하 이북까지 드넓은 평원지대가 펼쳐지는 중국 지형 특성상 방어가 불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베이징 북쪽에 위치한 만리장성 구간만 뚫리면 순식간에 화북지역이 적의 손에 넘어가곤 했다는 것이죠.
◆역사(History)2 : 공수부대 공격 예상 못했던 벨기에의 '작은 마지노선'이러한 국경장벽이 어이없게 뚫린 경우는 현대전에서도 발생했는데요. 1940년 벨기에가 독일과의 국경지대에 설치한 8km 길이의 방어선인 에반에마엘(Eben Emael) 요새 방어선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 방어선은 프랑스가 2차대전 이전 벨기에와의 국경지대에 마지노선을 연장 설치하는 것에 벨기에가 반대하는 대신 벨기에와 독일 국경지대에 세워진 방어선이었습니다. 두꺼운 외벽과 각종 대포와 기관총, 지하 40m까지 이어진 대피 시설을 갖춘 매우 튼튼한 요새였죠. 육상공격으로는 아무리 파상공세를 해도 쉽게 뚫리지 않을 것이라 벨기에 정부도 자신했고, 아무리 독일의 기갑부대가 강력해도 최소 1일 이상은 버틸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실전에서 너무 어이없이 함락됐는데요. 독일군 공수부대가 하늘에서 내려와 주요 포탑과 벙커를 박살 내는 동안 병사들은 요새 안에서 수비만 하다가 순식간에 요새가 무력화되고 함락됩니다. 전장의 패러다임이 바뀐 것을 고려하지 않고 육상 방어에만 몰두하다가 허를 찔린 것이죠.
요새와 방어장벽 자체는 매우 튼튼했지만, 각 방어장벽 구간에 설치된 벙커마다 유기적으로 움직이기도 어려웠고, 주 요새에서 병사들이 밖으로 나갈 출입구도 적어 공수부대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적군 전투기와 폭격기를 막을만한 공성포도 제대로 설치되지 못했다고 하죠.
전후에는 지나치게 튼튼한 요새에만 의존한 것도 문제였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원래 최소 1200여명의 병력이 주둔해야 했지만, 개전 당시 요새와 방어선에 투입된 병력은 절반 수준인 650명 정도라 더 쉽게 무너졌다는 것이죠.
◆시사점(Implication) :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군인'결국 거대한 방어장벽은 역사 속에서도 튼튼할 것이라는 기대감과 명성과 비교해 너무 손쉽게 무너졌던 셈인데요.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첨단 무기로 방어선을 편다고 해도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병력, 즉 군인이라는 점을 상기시킨 사례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군도 이번에 하마스의 침공을 허용한 중대한 실책을 인정하면서 그동안 첨단장비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던 정보, 안보 기관들의 전략을 대대적으로 개편할 것임을 시사했는데요.
특히 이스라엘의 스마트장벽이 이처럼 허무하게 뚫리면서 국경 지역에 해당 시스템을 도입하려던 나라들도 크게 당황하고 있죠. 휴전선 철책선에 스마트장벽 시스템을 도입하려던 우리나라 역시 전략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 세계 모든 군대도 이번 스마트장벽 붕괴를 거울로 삼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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