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다이어리]이·팔 오랜 증오에…뉴욕도 둘로 나뉘었다

뉴욕=조슬기나 2023. 10. 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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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미국 일상 속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무력충돌이 이어지던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컬럼비아대학의 캠퍼스 출입이 통제됐다. 날이 좋을 때면 동네 주민들이 유모차를 끌고 산책경로로 삼기도 했던 사우스론 등은 외부인 출입이 모두 금지됐고, 시내 곳곳으로 연결되는 입구는 단 4곳을 제외하고 모두 폐쇄됐다. 그나마 열린 4곳마저도 시큐리티 복장의 직원들이 삼엄한 표정으로 학생증을 일일이 확인하고서야 입장을 허락하고 있었다. 대학원생 실비아 르아씨는 "이렇게 게이트들을 다 막는 건 처음 봤다"고 말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컬럼비아대학 잔디밭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각각 지지하는 학생들이 동시에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번 출입 통제는 한 이스라엘 학생이 전날 도서관 앞에서 증오범죄 성격이 뚜렷한 폭행을 당한 이후 결정됐다. 이날 오후 캠퍼스 내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학생들이 각각 동시에 시위를 개최하기로 한 것도 배경이 됐다. 컬럼비아대학측은 출입 통제 공지에서 "우리 대학은 항상 자유로운 표현, 열린 대화로 다양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포용적인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면서도 자칫 이날 동시 시위로 양측 간 물리적 충돌이 빚어질 가능성을 우려했다. 더욱이 다음날인 13일은 이른바 ‘지하드의 날’(day of Jihad)로 예고돼 전 세계적으로 대규모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예상되는 상태였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각각 지지하는 학생들은 이날 오후 컬럼비아대 광장과 도서관 사이 잔디밭에서 나란히 시위에 나섰다. 눈에 띄는 물리적 충돌은 없었지만, 양측이 서로를 향해 구호를 내지르면서 분위기는 다소 험악했다. 정문 밖에는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뉴욕경찰(NYPD)이 대기하고 있었다. 시위 장면을 지켜본 대학 포닥 민디 킴(가명)씨는 "햇살 좋은 날엔 전 세계에서 온 학생들이 한데 어울려 앉아 책을 읽고 밥을 먹고 수다를 떠는 곳"이라며 "지구 반대편의 대립이 젊은 학생들까지도 분열로 모는 이 상황에 마음이 좋지 않다. 희생된 민간인들을 떠올리면 착잡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미 국적의 컬럼비아대 학생은 "양측의 오랜 역사, 갈등만큼이나 민감한 문제"라며 "노코멘트하겠다"고 말했다.

대규모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예고된 13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 인근 도로에 뉴욕경찰(NYPD)이 집중적으로 배치돼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직후인 지난 8일 타임스스퀘어에서는 양측 지지자들의 물리적 충돌이 일부 확인된 바 있다.

‘인종의 용광로’로 불릴 만큼 다인종이 거주하는 뉴욕에서는 하마스의 기습 공격 이후 양측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엇갈리며 연일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지난 8일 타임스스퀘어에서 양측 지지자들의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 이후 폭력, 증오범죄 등에 대한 우려도 부쩍 커진 상황이다. 이미 유대인과 아랍인이 다수 거주하는 브루클린 남부 등 일대에서는 양측을 겨냥한 사건들도 확인된다.

12일 밤 맨해튼에 위치한 유엔본부 건물, 어퍼웨스트사이드 빌딩 벽에는 누군가에 의해 ‘하마스는 IS다’, ‘100명 이상의 사람들이 하마스에 의해 인질로 잡혀 있다’는 문구를 담은 영상이 투사됐다. 민간인까지 공격하고 인질로 삼은 하마스를 테러리스트로 규정, 규탄한 것이다. 앞서 캐시 호컬 뉴욕주지사는 팔레스타인 지지세력들을 "혐오스럽고 도덕적으로 불쾌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팔레스타인계 미국인들은 이번 사태로 희생당한 이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면서도 미 행정부와 의회가 역사적 맥락, 배경을 무시하고 이스라엘 편만 들고 있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러한 목소리에 주목하며 "그들의 눈에 우리는 결코 피해자가 아니고 항상 가해자"라는 한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작가의 말을 인용했다.

양측의 오랜 갈등, 오랜 증오만큼이나 실제 역사는 훨씬 더 복잡하다. 80년 가까운 이·팔 분쟁의 원죄에서 사실 서구열강이야말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사피언스’ 등의 저서로 잘 알려진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이번 사태 직후 칼럼을 통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1948년 이후 가장 큰 위험의 순간에 직면해 있다’고 밝혔다. 그는 더 이상의 확대를 막기 위해 평화를 원하는 외부 세력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잔혹 행위를 규탄하고, 헤즈볼라와 이란의 개입은 저지하고, 가자지구를 비무장화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이러한 조치가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평가했다.

또다시 피의 증오가 쌓이면서 평화는 더욱 멀어지고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하마스든, 이스라엘이든 민간인을 죽인 것에 대해서는 결코 변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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